오후에 하원한 딸내미 유치원 가방을 열어 보았는데 평소처럼 만들기나 그리기 활동을 한 자료들이 아닌 산호 모양의 장난감이 하나 들어있었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았더니, 친구랑 같이 장난으로 선생님 몰래 유치원에 있는 장난감을 하나씩 가방에 넣어보았다고 한다.
......
급 현기증......
동요하지 말아야지 마음을 추스르며 정황을 더 캐보았는데,
친구가 먼저 그러자고 했다고는 하나 그게 뭐 중요한가 싶고, 무심코라기보다 '선생님 몰래' 한 행위라는 데에 방점이 딱 찍혀서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을 조절하기 힘들었다.
무심한 척, 집안일을 하는 척,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 보니 어린아이가 남의 물건을 몰래 가져오는 이유는 굉장히 다양하다고 한다. 단순히 친구의 물건이 부럽거나 가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장난으로, 혹은 어른이나 친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혹은 물건의 소유를 구분하지 못해서 그러기도 한단다.
이번 경우는 친구와 함께 비밀리에 어떤 행동을 하는 그 자체가 재미있었던 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이니 소유 개념이 분명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
언성을 높이진 않았지만 내 것이 아닌 물건을 몰래 가져오는 건 도둑질이고, 유치원 물건들을 정리하시는 선생님은 분명히 그걸 알게 되실 텐데 선생님이 엄청 실망하실 거다 말해 주었다.
'도둑'이나 '범인'이라는 말이 나쁜 의미라는 것은 <엉덩이 탐정>이나 <바다탐험대 옥토넛> 같은 유아 프로그램을 즐겨보며 충분히 알고 있어서, 상황이 제법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한 딸아이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1) 이걸 지금 도로 유치원에 들고 가서 엄마랑 같이 사과할까?
2) 사과의 편지를 같이 써서 내일 선생님께 살짝 전달드리며 장난감을 돌려드릴까?
아이에게 선택하게 했더니 혼자서 선생님을 마주하기는 부끄러웠는지 1번을 택했다.
엄청 떨린다고 자긴 멀찍이 서 있겠다고 그러더니만, 그래도 선생님 얼굴 보고 인사도 다 하고(오히려 귀여워해 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