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종이』 조정래
조정래 [황금 종이 1,2], 해냄출판사
조정래의 장편소설 『황금 종이』는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거대한 질서, 아니 혼란의 근원인 ‘돈’을 정면으로 응시한 작품이다. 작가는 말한다. “돈은 인간의 실존이자 부조리다.” 돈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삶의 전제이며, 동시에 수많은 갈등과 고통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인간 사회의 3대 악은 정치, 종교, 그리고 돈이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 가지는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만든 문명의 필수 요소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결합하면, 도리어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블랙홀로 변모한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못 메운다”는 말처럼, 욕망의 끝은 없다.
『황금 종이』는 이러한 인간 욕망의 총체라 할 수 있는 ‘돈’을 중심에 두고, 수많은 삶의 파편들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엮어낸다. 유산 분쟁, 월세 폭등, 노인의 생존 고투, 도박 중독, 가상화폐 투기, 청년들의 취업난, ‘N포세대’의 무력감 등 돈 앞에서 흔들리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소설이라는 외피를 입고 있지만, 논픽션 다큐멘터리 르포물이라고 해도 전혀 과장된 게 아니다. 마치 실제로 우리가 겪을 법한 일들처럼 소설 속 사건들과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생생하고 실제적이다. 작가 특유의 치밀한 조사와 현실 고증을 바탕으로 썼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분량은 두툼하지만 기본 맥락이나 진행 과정이 비슷한 점이 많아서 가볍게 술술 넘겨가며 읽을 수 있었다.
작가는 “모든 종교의 신들은 죽었고, 생살여탈권을 가진 돈만이 살아 있는 신”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인간이 만든 돈은 신이 되었다. 돈은 우상이며 절대자 신이 되어 인간 노예들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우리는 매일 돈 앞에 무릎 꿇고, 돈을 위해 삶을 설계하며, 때로는 돈 때문에 서로를 파괴한다. 돈은 이제 도구가 아닌 존재가 되었고, 신이 되어 인간을 지배한다.
“세계 범죄의 90 퍼센트 이상이 돈 때문에 발생하고, 살인 또한 90 퍼센트 이상이 돈 때문에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매일 사회면을 장식하는 온갖 범죄들의 원인을 파헤쳐 들어가면 대부분 돈과 관련이 있다.
돈이 주인이고 권력이 된 시대에 돈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은 결국 우리 현재 의식의 반영일 것이다. 현재 의식은 내면의 깊은 무의식적 관념이 반영되었을 터이다.
작품 속 다양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비극적 현실은 단지 허구에 머물지 않는다. 읽는 내내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돈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나는 돈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아니 자유로울 수나 있을까?
나의 무의식은 어떤 돈 관념으로 물들어 있는가?
어릴 적, 나는 가난을 너무 일찍 배웠다.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얼굴과 돈에 전전긍긍하는 삶은, 어린 내게 ‘돈’이라는 존재를 두려운 그림자로 각인시켰다. 막막한 현실은 꿈꾸는 법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내 안에는 음울함과 억울함, 열등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돈은 내게 언제나 불편하고 낯선 존재였다.
조정래 작가도 그런 마음을 품었나 보다.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묻는 작가의 인터뷰에서 “가난했던 대학 시절부터 돈을 고민했고, 삶이 힘들 때마다 수없이 그 의미를 되묻곤 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오랜 시간에 걸친 그 사유 끝에 『황금 종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나왔다. 이 소설은 돈이 삶을 어떻게 지배하고, 어떻게 부조리를 낳는지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독자들에게 삶의 방향을 묻는다.
작가는 희망의 가능성도 놓치지 않는다. 운동권 출신 인권변호사 이태하와 대안 농업을 꿈꾸는 청년 한지섭을 통해, 원칙을 지키며 돈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삶을 제시한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인물이 얼마나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지금 정치의 중심에 선 386세대들 중 일부는 권력과 돈 앞에서 초심을 잃었고, 정의를 외치던 그 시절의 가치는 위선으로 변질되었다. 청렴과 정직은 이제 더 큰 가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 종이』는 묻는다.
우리가 의식, 무의식 중에 날마다 생각하고 걱정하는 돈은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고, 우리의 삶에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돈은 생명을 죽이는 독이 될 것인가, 생명을 살리는 약이 될 것인가?
이 물음은 단지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매일 직면하는 질문이다.
이 책은 단순한 풍자나 고발을 넘어, 돈이라는 이름의 신 앞에서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묻는 일종의 철학적 탐구로 이끈다. 소설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제시다. 그 답은 결국, 각 개인이, 또, 우리 사회가 함께 찾아야 과제가 될 것이다.
“소설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제시라고. 아마 작가는 독자들에게 문제를 제시하고, 그 답은 역사에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