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라는 공간의 특별함’

《인천, 소설을 낳다》 김진초 외 5인. 케이포북스

by 여행하는나무

“인천의 특산물은 꽃게, 새우젓, 강화도 인삼 등이 있어요.”

인천 초등학교 교실, 내 고장 바로 알기를 위한 “향토 애호 교육” 시간이다. 인천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인천의 산, 인천의 축제 등을 소개하면서 학생들이 인천을 잘 알고 사랑하도록 이끄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인천이 낯선 나도 학생들과 함께 배우는 시간이 되어 좋았다. 하지만, 광주에서 4년 근무하고 결혼 이후 인천의 학교로 옮긴 나는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까지 인천 사랑을 강조하고 중요한 교육 내용의 하나로 가르치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광주는 대부분 토박이들인지라 지역에 대한 소속감이나 애착심이 당연하게 기본 장착되어 별다른 교육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천은 좀 다르다는 것을 살면서 알게 됐다. 인천 토박이보다는 전라도, 충청도 등 타 지역 농촌에서 삶의 터전을 옮겨와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은 부유 식물처럼 마음이 떠 있어 인천을 잠시 거쳐가는 중간지대로 생각하기도 한다. 내면에 정체성과 소속감의 불확실성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인천은 용광로처럼 복합적인 요소들이 섞여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고, 발전적인 시너지를 뿜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천, 소설을 낳다』는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인천이라는 공간의 특별함’을 재발견하도록 기획된 테마소설집이다. 6명의 여성작가들의 작품 9편이 실려있다. 양진채 · 김진초 · 이목연 · 정이수 · 신미송 · 구자인혜 작가는 인천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시선과 감성으로 그 장소와 관련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인천항 8 부두, 동인천 신포동, 부평 미군부대, 효성동 2번 종점, 송도 신도시, 강화도 천은사, 자월도, 경서동 쓰레기 매립장 등의 장소는 단순한 배경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핵심이 되거나 사건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양진채 작가 외에는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름이 없을 만큼 잘 알지 못하는 작가들이지만, 이 소설집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어 기쁘다. 인천이라는 지역의 특수성과 정체성,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을 문학적이고 개성 있는 문체로 보여주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 익숙한 장소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먼 소설 속의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이웃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혹은 현재 진행 중인 나의 이야기의 일부분이기도 하다는 걸.

김진초 작가의 <너의 중력>은 중심 없이 부유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중력(그래비티), 전생, 성 정체성, 자작나무 등을 엮어 감각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말솜씨가 유려한데, 글까지 잘 쓰는 만능 이야기꾼 같다. 절제된 문장과 투명한 감성이 돋보인다. 인생의 부조리와 고통을 온몸으로 겪으며 조금씩 받아들이고 껴안으며 변화하는 내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에서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묘사된 신포동을 배경으로 허공을 떠도는 듯한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중력 아래에 있어야만, 비로소 ‘머물 수 있는 존재’가 되고, 그 중력을 찾는 여정은, 곧 자신을 향한 조용한 탐색일지도 모른다. 인생이 펼쳐놓은 카오스를 통해 코스모스를 알아가는 자기 탐색의 기록이 슬프고 짠하게 다가온다.

지금 나는 누구의 중력 안에 있는지, 내 중력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게 되묻게 된다.

정이수 작가의 <2번 종점>은 친숙한 곳이라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낯익은 이름과 익숙한 거리가 소설 속에 나와서 반가웠다. 2번 종점이 있는 효성동은 인천에 올라와 신혼 전셋집을 얻어 살았던 곳이다. 계양산의 한 자락, 중구봉 아랫동네이다. 공기가 맑고 집값이 싼 편이라 주머니 가벼운 소시민들이 옹기종이 모여 살았다. 인천 2번 버스는 효성동에서 청천동, 산곡동, 부평을 거쳐 석바위, 주안을 지나며 동인천 역의 배다리, 8 부두에서 월미공원까지 인천을 크게 가로지르며 구도심 구석구석을 운행한다.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차고지 없이 종점에서 종점으로 오가는 버스처럼 뿌리를 든든히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공간과 인물, 도시와 감정이 겹쳐져서 하나의 감각을 만든다. 개발 붐을 타고 졸부가 된 사람도, 사업의 부침을 겪으며 술로 위안 삼는 사람들도, 흔들거리고 위태롭게 느껴진다. 낯선 곳,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분투하던 젊은 나의 모습도 보인다. 신혼시절이나 아이들 어릴 적 소소한 추억이 떠올라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고마운 이웃들이 있어 조금씩 마음의 닻을 내릴 수 있었던 시간들이 거기에 있다.



나도 인천에 마음까지 내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30년 넘게 인천살이를 하고 있는 지금은 어느 곳보다 인천을 잘 알고, 인천이 갖고 있는 장점을 제법 누리고 있다. 공항이 가까워 비행기 타기도 편하고, 바다와 섬이 있어 특별한 여행을 많이 할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한가? 어떨 때는 인천 토박이보다도 더 인천을 많이 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것은 인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인천에 있는 섬들을 거의 대부분 다녀봤기 때문일 것이다.

두 발로 걷기 여행을 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인천에도 걷기 좋은 길이 무척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근대의 역사가 많이 남아있는 동인천과 자유공원길, 인천역에서 월미도와 월미공원을 둘러보는 길, 승기천을 따라 송도 신도시까지 걷는 길, 계양산 둘레길에서 원적산, 호봉산으로 이어지는 길, 선학역에서 문학산을 넘어 학익동까지 오는 길 등 인천에도 특색 있는 둘레길이 14코스나 갖추어져 있었다. 계양산에서 인천대공원을 거쳐 소래산까지 인천 산 종주를 하기도 했다. 아침 6시에 출발해서 빡센 일정으로 크고 작은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저녁때에야 소래산에서 마무리하는 것이다. 길은 길로 이어져 있고 어느 길이나 고유의 멋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늘 차를 운전하며 빠르게 지나기에 자세히 볼 수 없었을 뿐이지 그 길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고, 천천히 걸어야 자세히 보인다는 걸 직접 실감한다. 오롯이 두 발로 뚜벅뚜벅 걸으면서 동네 구석구석 살피며 자세히 보게 되면서 내가 사는 곳, 내가 살아갈 인천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되었다.

내가 두 발로 걸으며 만난 인천은 거리를 두고 바라본 외형적인 공간이었다면, 이 소설집을 통해 만난 인천은 더 실제적이고 내밀한 삶의 공간으로 가까이 다가가도록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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