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똑똑해지면 더 행복해질까요?

대니얼 키스. [앨저넌에게 꽃을]

by 여행하는나무


대니얼 키스. [앨저넌에게 꽃을]

(Flowers for Algernon). 구자언 옮김. 황금부엉이


지금보다 더 똑똑해지고 싶은 당신,

두뇌를 조금 고쳐서 똑똑해진다면 수술을 받겠습니까?


혹시,

네, 라고 잠깐이라도 생각하셨다면

지적 장애인이 지능 향상 수술을 통해 천재가 되었다가 다시 퇴행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대니얼 키스의 <앨저넌에게 꽃을>(Flowers for Algernon), 1959년 발표된 SF소설입니다. 대니얼 키스는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적인 소재를 즐겨 다루는 작가로 평가받으며, 인간의 지능, 존엄성, 정체성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앨저넌에게 꽃을>은 발표되자마자 초베스트셀러가 되어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받았다니, 구미가 당기지 않나요?

두뇌이미지, 픽사베이 제공

이 소설은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서른두 살의 지적 장애인 찰리 고든의 '경과 보고서' 형식으로 쓰여 있어,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듭니다. 빵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찰리는 남들처럼 똑똑해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죠. 그의 간절함과 순수함 때문인지, 앨저넌이라는 쥐에게 성공적으로 적용된 지능 향상 수술을 받게 됩니다. 수술 후, 찰리의 지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성장합니다. 세상이 온통 다르게 보이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진짜 모습과 숨겨진 의도까지 꿰뚫어 보게 되죠. 예전엔 그저 "친구"라고 생각했던 동료들이 사실은 자신을 비웃고 조롱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찰리는 지능이라는 칼날이 때로는 예리한 상처를 남길 수 있음을 처음으로 인식합니다.


지능이 높아지고 똑똑해진 찰리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울까요?


IQ가 68에서 185 이상으로 오른 찰리는 이해력 및 언어 능력이 폭발적으로 향상되고, 복잡한 이론들을 이해하며, 심지어 자신에게 수술을 진행한 박사들마저 뛰어넘는 천재적인 지능을 발휘합니다. 우리는 찰리의 시선을 통해 지능이 높아지면서 얻는 짜릿한 성취감과 세상의 숨겨진 규칙을 이해하는 희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나도 한 번쯤 그 경지에 이르러보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찰리는 수술 후 머리뿐 아니라 감정과 인간관계에도 깊은 변화를 경험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똑똑해지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서 출발했지만, 지능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깊은 외로움과 소외를 체험하는 역설적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 사랑했던 앨리스 키니언 선생님마저도 더 이상 찰리의 지적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서, 지능의 상승이 반드시 행복과 동일하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지적으로는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감정적으로는 아직 미성숙한 찰리는 점차 과거를 이해하게 되면서 자신의 처지와 주변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어린 시절 억압되고 잊혔던 기억들이 되살아나며, 그 진실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안겨주지요. 자신을 정상으로 만들려다 실패하자 딸 노마에게만 애정을 쏟은 어머니 로즈의 강압적인 태도, 그런 어머니에게 지쳐 집을 떠난 방관자 아버지 매트,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오빠를 부정했던 여동생 등 가족과의 관계와 버림받은 마음은 찰리에게 깊은 상처와 외로움을 줍니다. 어렵게 찾아간 어머니는 치매로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여동생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참으로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과연 지능이 뭐길래 한 가족의 유대와 연결을 깨트리고 관계를 파괴할까요?

실험용 생쥐. 픽사베이 제공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비극적으로 전개됩니다. 찰리의 지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쥐 앨저넌에게 이상 증세가 나타납니다. 그의 지능은 퇴행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죠. 앨저넌의 죽음은 찰리에게 자신의 미래를 예고하는 섬뜩한 전조가 됩니다. 그가 발견한 "앨저넌-고든 효과"는 인위적으로 향상된 지능은 그 향상된 양에 비례하는 속도로 저하된다는 것입니다. 지능 향상 수술의 효과가 일시적이며, 결국 지능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거나 그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는 냉혹한 진실. 짧은 시간에 지식의 최고점까지 올랐다가 바닥으로 순식간에 곤두박질당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3월 3일과 11월 21일까지 약 9개월간의 ‘경과 보고서’는 짧은 시간에 인생 전체를 축약해서 경험한 인생그래프를 보여줍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찰리의 언어와 글쓰기 스타일의 변화입니다. 처음에는 맞춤법과 문법이 엉망인 문장이 이어지다가, 점점 문장이 복잡하고 깊어집니다. 이야기의 끝부분에서 다시 어눌한 문체로 돌아가는 장면에서는, 눈으로 읽는 문장이 아니라 찰리의 마음 그 자체가 퇴행해 가는 듯한 먹먹함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단순히 ‘지능’이라는 능력의 문제를 넘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똑똑하다는 것은 과연 행복한 일일까요?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IQ일까요, 아니면 공감 능력, 기억, 상처, 그리고 추억일까요? 찰리가 앨저넌이라는 실험용 생쥐와 교감하며 보여주는 연민과 애정은, 그가 단순히 지능적으로 뛰어난 존재를 넘어서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퇴행하는 중에도 사랑하는 앨리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스스로 이별을 선택하는 장면을 보면 찰리의 성숙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천재가 된 찰리는 말합니다.

“여기 당신들의 대학에서는 지능과 교육과 지식을 모두 승배 하죠. 하지만 당신들이 모두 놓친 한 가지 사실을 이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능과 교육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지능(IQ)과 정서(EQ) 사이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를 깊이 탐구한 이 소설은 인간의 존엄성이 과연 지능에만 달려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윤리적, 심리적 영향을 냉철하게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똑똑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다면, 그 이면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과 사회적 현실, 그리고 '지능과 인간다움'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 소설을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추신.

혹시 기해가 있으면 덧마당에 있는 앨저년의 무덤에 꽃을 좀 놓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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