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하는나무 Sep 18. 2022

나는 어쩌다 구멍이 되었을까요?

구멍


# 그림책 에세이

# 『구멍』 / 열매그림책 / 향 출판사

구멍 그림책 표지


많은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을 보면 만화로 된 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만화책 1권에 그림책이나 동화책 1권을 빌려오도록 권장하기도 한다. 줄글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빌려오는 아이들은 꾸준한 독서 습관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억지로 강제할 수는 없지만 책을 즐겨 읽는 어린이, 책과 함께 마음이 자라는 어린이를 꿈꾸는 교사의 기대만큼 책읽기를 즐겨하지 않는 아이들을 볼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다양한 상황에서 그림책을 활용한 수업을 하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독서 동아리 시간이다. 3학년 아이들에게 이 시간은 좀 특별하다. 7개반에서 3~4명이 와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활동하기 때문이다. 오늘 첫 활동은 그림책 제목 알아맞히기 반별 대항 퀴즈로 시작한다. 그림책 표지와 초성을 주고, 그림책 제목을 맞추는 것이다. 각 반의 명예를 걸고 한다는 생각에 시간이 지날수록 참여 열기가 높아진다. 제목을 모르는 책이라면 추측해서 알아맞히면 된다고 하니 기발한 제목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자신이 읽은 책이 문제로 나오면 기쁨의 환호를 지르기도 하고, 친구의 기발한 발표에 감탄을 하기도 한다. 먼저 생각한 친구의 힌트를 듣고 모두가 정답을 찾기도 한다.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면서 반별로 알아맞춘 점수를 계산하니 비슷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그래도 우리 반이 조금 높다고 즐거워한다. 


두 번째 활동은 그림책 읽고 북아트 혹은 표현활동이다. 

“이 책에서 제목을 찾아보세요.”


바다인지, 어둠이 깔린 밤인지 알 수 없는 짙은 남색에 하얀 동그라미만 보이는 표지를 실물화상기로 보여준다. 아무리 찾아봐도 표지에 흔히 볼 수 있는 제목이나 작가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도 의아해 하며 제목을 찾아본다. 표지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점, 동그라미, 원 등을 말한다. 


“표지의 짙은 푸른 색은 무엇일까요?”

밤, 바다, 우주, 하늘, 깜깜하다 등등 다양한 답이 쏟아져 나온다.


마음에 궁금증을 품고 표지를 넘기니 동그라미 같은 것이 뻥 뚫려있다. 그리고 제목이 나온다. 열매 작가의 『구멍』이다. 


표지의 짙은 푸른 색이 하단에 나타나며 구멍이 보인다. 그림도 단순하고 글도 단순하여 어렵지 않게 아이들이 집중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 “나는 문어”의 라임이 생각난다고 한다. 



나는 구멍

언제나 이곳에 있다. 


나는 구멍

움직일 수 없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나는 구멍

나는 어쩌다 구멍이 되었을까?”


처음에 작은 구멍이 점점 커지고 넓어진다. 

작은 구멍은 개미의 호수가 되고 하늘을 나는 하늘이 된다.


구멍은 하늘, 바다, 밤이 된다.

구멍은 이제 작은 구멍이 아니다. 아무도 모르는 구멍도 아니다.

이제 구멍은 온 세상이기 때문이다. 


“구멍이 왜 호수가 되고 하늘이 되었을까요?”

“왜 구멍을 온 세상이라고 했을까요?”


중간중간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림책을 읽다보니 우리 자신이 작은 구멍에서 점점 커지는 세상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작은 존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품은 존재라고 느껴진다. 아이들 표정에서도 그런 마음이 느껴진다. 


느낌을 살려 필사하거나 그림을 곁들여 표현해 보자고 스크래치 페이퍼를 나눠준다. 새로운 재료가 주는 신선함 때문인지, 검은 색에 글씨나 그림을 그리면 다양한 색의 꽃그림같은 느낌이 좋아서인지 다른 때보다 집중을 해서 작업을 한다. 다른 그림책으로 해도 된다고 하니 교실에 있는 그림책을 골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자신의 작품이 만족스러웠는지 가져가도 되냐고 물어본다. 칠판에 잠깐 게시하여 감상한 후 기꺼이 가져가도 된다고 웃으면서 말해준다. 


수업을 마치고 나서 구멍이라는 의미를 더 생각하게 된다. 나의 구멍은 무엇일까?

나의 구멍은 나에게 채워지지 않는 빈 부분,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다.  나의 구멍은 열등감의 다른 이름이다. 구멍은 완벽해야 하는 나의 세상에 흠집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안의 구멍은 무척 신경 쓰이는, 뭔가 부족한 나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허물이나 부족함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 같아 어떻게든 메꾸려고 감추려고 무척 애를 썼다. 겉으로 보이기에 괜찮은 사람처럼,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오늘 아이들과 그림책을 함께 하면서 나의 그 구멍을 새롭게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 구멍으로 인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나고, 그 구멍이 온 세상이 되는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어 즐겁다. 약점의 반대면에 강점이 있음을 알기에 자신에 대해서도 좀 늦고 더딘 아이들에 대해서도 너그럽게 볼 수 있다. 





구멍 필사

















작가의 이전글 나누어도 더 커지는 게 있을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