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이에요
『나는 죽음이에요』 엘리자베스 헬란 라슨 글ㆍ마린 슈나이더 그림. 장미경 옮김. 마루벌
“삼촌... 오늘 가셨다...”
5월 8일 어버이날, 가까운 지역에 사는 외숙모의 전화를 받았다.
“이렇게나 빨리요? 뭐가 그리 급하다고...”
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은 지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뿐이다. 대책 없이 밀려드는 슬픔과 회한으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유난히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셨던 삼촌이라 급작스러운 이별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암이 심장 혈관 주변에 자리하여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다고, 길어야 4~5개월이라는 이야기를 의사가 했다고 한다. 3월 말에 찾아갔을 때는 반갑게 인사도 하고 우리랑 이야기도 나누었다. 5월 5일에 멀리서 올라온 엄마랑 동생이랑 병원으로 갔을 때는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하고 말도 못 하실 정도로 급속도로 진전되어 그 모습 보기가 너무 힘들고 마음이 아팠다. 우리를 알아보고 눈빛으로 반가워하셨던 모습이 마지막 인사였다.
오래 담배를 피우긴 했어도 평소에 짱돌처럼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이렇게 급작스러운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100세 시대에 삼촌 나이 이제 겨우 70세이다.
삼촌 자신이나 가족들 덜 힘들게 빨리 가셨다고 위로할 수 있지만, 준비되지 않는 죽음은 언제나 어렵다.
55세의 건강했던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셨다. 심장마비.
사방이 벽으로 막히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그 짙은 어둠의 시간. 지금도 그 생각을 하니 아랫배에서부터 묵직한 뭔가가 올라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인한 황망한 이별과 상실감은 오래도록 마음을 헤집고, 든든한 언덕이 없어진 막막함은 마음에 커다란 구멍과 상처를 만들었다. 그 구멍과 상처가 아무는 시간들은 내 안의 나를 보듬어주고 삶과 조금씩 화해하고 나름의 답을 찾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
내가 삶과 죽음의 의미에 오래 천착하고, 영혼과 마음에 대한 공부를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은 어린 나이부터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많이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죽음이 이야기하는 그림책으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으려고 한다.
“나는 죽음이에요.
삶이 삶인 것처럼
죽음은 그냥 죽음이지요.”
엘리자베스 헬란 라슨이 글을 쓰고 마린 슈나이더가 그림을 그린 그림책 『나는 죽음이에요』의 첫 부분이다. 어린 사람들도 죽음을 친숙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그림과 함께 죽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다정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친절한 죽음은 누구 하나 가리지 않고 다가간다. 작은 동물이든, 큰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람이든,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공평하게 찾아간다. 지금은 살아있는 나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언젠가 죽음은 찾아오리라. 나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옮겨가는 것이고, 본래의 고향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과 나는
모든 생명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지요.
바로 사랑이에요.
사랑은 모든 슬픔과 미움을 없애주고,
사랑은 매일 당신을 찾아갈 수 있고,
사랑은 우연히 나를 만나더라도
절대 죽지 않아요.
죽음은 삶과 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이라고.
맞는 말이다. 우리는 사랑 그 자체이고, 사랑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장례식장에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외가 친척들과 사촌들을 모두 만났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느라, 분투하며 살아내느라 얼마 만에 얼굴을 보는지... 세월은 몸집이 컸던 이모를 왜소한 모습으로 바꾸고, 코로나로 인해 죽을 뻔했다는 사촌 동생이 이제 회복되어 조금씩 일도 하게 되었다는 다행스러운 소식도 전해준다.
즐거운 일이나 슬픈 일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삼촌을 추억했다. 기쁜 자리에서만 만났으면 바라지만, 우리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고난과 슬픔의 자리를 피할 수 없다. 슬픔이나 아픔의 시간이 오히려 가족들을 더 끈끈하게 연결해 주고, 가족 간의 정을 진하게 느끼게 한다.
돌아가신 삼촌의 영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애도와 연민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서로 충분히 위로하고 애도하고 나면 살아생전 주고받은 사랑의 정수만을 기억하게 되리라.
나는 죽음이에요.
삶과 하나이고,
사랑과 하나이고,
바로 당신과 하나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