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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라톤 Jul 18. 2021

성령 2. 가이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밝히는 등불

사도행전 2:1-4

마태복음 3장

에스겔 2:1-4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두렵다.

이유는 하나, 모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다락방에서 무서워 떨고 있었고,

에스겔은 폭풍 소리에 겁을 먹었다.

모세는 광야에서 자신을 잃어버렸고,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다.


그러나 그때, 그들의 반응은 최선이었다.

도저히 다른 반응은 차마 떠올릴 수 없었기에

그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모르기 때문에 두렵고,

두려움은 현재까지의 경험이 삶의 나침반이 되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당신에게 최선이다.

그 길이 진리라고 애써 자신을 설득하고

잠을 설치며 두려워 가슴을 부여잡는다.


그것이 인생이다.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하늘로부터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갔다. 성령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타가

되어 삶의 여정을 이끈다.


기독인이 되는 일은 성령에 의해서 완전히

거듭나는 일이라고 예수는 한 밤에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말한다.


나침반을 완전히 새롭게 하는 일,

그것은 성령이 하는 일.

거듭나는 것이다.


그는 가이드다.

왜 미쉐린가이드를 찾는가? 맛의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예화로 주식이나 투자 등을 선택하는 이유는

가장 다이내믹한 삶의 여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동시에 아직도 “크리스천이 주식해도 되나요?”

“예수의 제자는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습니다.””술 담배를 하지 않는 사람이 거듭난 징표다.”라는

장벽을 만드는 일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장벽을 쌓는 일이 아닌 허무는 운동이다.

장벽을 허물 때 비로소 길이 보인다.


“당신을 안전지대 밖으로 던지라.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의 쓰디쓴 실패와 성공, 돈의 무서움을 맛보라.

왜 사람들이 휘몰아치는 돈의 광풍에 넘어지는지 경험해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


아마존: 닷컴버블시8320%상승후 고점대비 95%하락

아마존 주식은 상장 이후 현재까지 수백 배가 넘는

성장을 기록했고, 수많은 부자들을 만들어 냈다.


“그때 샀어야 했는데...”


차트의 양 끝을 보면 투자자들이 쉽게 돈을 번 것처럼 보이지만, 닷컴 버블 때 전고점 대비 95퍼센트가 하락했다. 1억을 투자했다면 5백만 원이 남았다는 말인데, 공포를 이겨낸 사람만 수익을 가져갔다.

금융위기 때는 전 고점 대비 90퍼센트 가까이 하락했다.


당신은 버틸 수 있었겠는가?

삶을 털어 넣고 극한의 손실을 경험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믿음이다.


코로나는 어떤가?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아직도

많은 고통으로 우리를 몰아넣고 있다.

종식된 후엔 많은 이들이 무한대로 돈을 뿌려대는 이 상황에서 투자로 돈을 벌지 못한 아쉬움에 한숨을 쉴 것이다.


이미 격차는 훨씬 벌어져있을 것이고,

혹자는 현세대에는 좁힐 수 없을 만큼 빈부의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무시무시한 공포가 모두를 덮는 이유는 하나.

미래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 상황은 동일하지만 누군가는 역사의 패턴을

분석하고 움직이고, 누군가는 숨는다.


그건 돈의 제국에서만 일어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가? 우린 이미 돈의 제국에서 살고 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순간 돈과 권력이 모든 계층을 나누는 세계가 되었다.


돈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돈에게 지배당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니면 돈이 삶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하나님 아니면 돈.


돈에 지배당하면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된다.

그러므로 장벽을 허물고 나침반이 자유롭게

방향을 가리킬 수 있도록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삶과 영역을 넓히며

나침반을 새롭게 하지 못한다면

기독인으로 살면서 전혀 기독교를 경험하지 못할 수 있다.


성령은 엔지니어다.

그의 손길로 규칙과 역사를 이어온 세계는

일정한 규칙과 패턴으로 움직인다.


그 패턴을 인정하고 자신이 진리 삼은 경험의 축적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삶에서 결코 부요함과 성공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십계명은 삶의 방향을 새롭게 돌릴 수 있는 이정표다. 너무 당연한 삶이 부요해지고 사람답게 사는 원리를 돌판에 새겨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자의 나침반인

돌판의 메시지를 비웃으며 다른 방향으로 간다.


창조자의 나침반의 방향을

삶의 대전제로 바꾸어 이끌어 가는 일은

결코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없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


성령이 가이드인 이유다.

오직 그만이 우리를 올바른 삶의 방향으로 이끈다.


이것을 부르심이라고 부른다.


이 부르심은 인생의 모든 경험과 그동안 겪은 삶의 여정들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퍼즐처럼 맞춰지게 한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이 부르심을 목사나 선교사가 가는 고난의 행군 정도로 받아들이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그 길은 우리를 진정한 부요함과 평안함을 맛보는 길로 인도한다.


결코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당장의 내 인생의 잔고가 -95%를 기록해도 버틸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가이드의 이끄는 방향으로 가보자.


가이드가 이끄는 방향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물어본다면, 간단하다.


1. 나를 낙심케 하는 삶의 원인들을 찾는다.

2. 그 원인이 어떤 나의 선택을 통해서 생겼는지를

   추적한다.

3. 선택의 동기를 뒤집기 위해 나의 가치관을 바꾼다.

4. 내 힘으로 안된다면 멈춰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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