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고살래?
뭐 먹고살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이 떡 덩이가 되게 해 봐”
사탄이 40일을 굶주리신 예수님께 던진 첫 번째 유혹의 메시지입니다.
뭘 먹고살아야 할지, 노후는 어떻게 살아갈지, 내 자녀들의 미래, 지금 나의 사업과 직장을 생각하면 답답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기준금리는 인상되고 인플레이션과 자산 가격의 급상승과 급락이 오가는 자본주의 시대에 어지럽습니다. 현대인들은 묻습니다.
Q : "예수를 믿으면 먹을게 나오고, 집이 나오고, 행복이 나오나요?"
A: "나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교과서 삼아 삶의 궤도를 수정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부유함과 현실에서 자유를 누리는 분들도 많습니다.
성경을 몰라도 현실을 움직이는 거대한 창조주가 심어놓은 원리를 잘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기독신앙이 없어도 성경 말씀을 몰라도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를 깨달아 삶에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믿어야 하는가?"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자유 가운데서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자유는 기독신앙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기독신앙을 찾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자유를 찾아
교회의 문턱을 넘어도 여전히 갈등과 좌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불과 같은 성령을 구하는 찬양과 기도를 하고 교회를 나서는 순간 모든 일들이 해결되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현실의 벽을 매일 경험하며, 좌절하며, 한숨을 쉬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혹시 안 그러신 분 계십니까?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우울증과 자살의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종교들과 다르게 교회는 유난히 욕을 많이 먹습니다. 체할 정도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에이!! 여보시오!! 교회는 뭔 있지도 않은 하나님이란 존재 가지고 돈이나 긁어가는 곳인데,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쇼!!"
여러분들의 머릿속에도 지금 빙빙 돌고 있는 말 아닙니까?
현실의 벽은 , 코로나의 벽은 더욱 높게 삶을 짓누릅니다.
신이고 사탄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 지껄이고 꺼지라고 합니다.
교회와 목사들은 매일 신문지에 죽일 놈이 되어 잊을만하면 등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탄의 도전은 명확하고 깔끔하게 우리를 흔듭니다.
모든 세대, 모든 가정, 모든 인종들이 당면한 질문입니다.
“뭐 먹고살래?”
이 한마디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한마디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학교를 다녔고, 치열하게 경쟁했으며, 우위에 서려고 했고, 자녀들을 공부시켜 성공시키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인간의 언어 문장 중에서
“뭐 먹고살래?”처럼 강력하게 사람의 인생을 흔들어대는 말은 없습니다. 내 삶이 조금 이 단어에서 자유로워지면 자녀들이 이 질문에 답하는 고민과 걱정이 시작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살고 싶어도 “뭐 먹고살래?” 한 마디면 포기합니다. 나의 재능과 꿈을 달려가고 싶어도 “뭐 먹고살래?” 한 마디면 끝납니다. 유혹은 강력합니다. 사탄은 결고 지는 게임을 하지 않습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의 답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기록되었으되”로 시작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당장 먹을 것도, 광야에서 해결책도 없어 굶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유일한 삶을 일으키는 힘이 된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말씀이 한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빛, 땅, 바다, 태양, 별, 달, 물고기, 동물, 사람의 생명이 시작된 근원이 하나님이 말씀입니다. 생명-살아있으라는 명령-이 말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생명은 스스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먹고 명령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호흡이 시작되었고, 인생이 시작되었고, 살아가는 이유가 생긴 것입니다.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생명을 하나님의 의지로 태초 전부터 이미 허락받아 세상에 시작하신 사랑의 열매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뭐 먹고살래?”에 대답하기 위해, 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며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그런데 생명은 반대입니다. 살아있으라고 명령을 하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지금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존재하게 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고 살아갈 이유와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을 책임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만든 떡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존재하게 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친히 가르쳐주신 것은 바로 말씀이 우리를 존재하게,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근원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기술입니다. 사탄은 뭐 먹고살래?라고 물어보지만 예수님은 생명을 주신 분께 오늘 먹을 메뉴를 말하라고 하십니다. “기록되었으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믿음의 선배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보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신명기 8장 3절에서 “들으라 이스라엘아!! 너희를 이 광야에서 입히시고 먹이시고 살 곳을 주신 분이 누구시냐?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결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잊지 말라!!”라고 하신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유혹을 이기는 첫 번째 기술은 바로 생명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매일 기억하고 떠올리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록된 말씀 성경을 펴십시오.
읽고 눈을 감고 곰곰이 말씀의 뜻을 생각하며 기도하며 감사하십시오,
믿음의 조상들도 나와 똑같이 혼돈의 한 복판에서 살았음을 배워야 합니다. 나만 먹고사는 문제로 고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삶을 통해 배웁시다. 그들을 먹여주셨습니다. 그들이 우리처럼 뭐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할 때, 어떻게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셨는지를 말씀을 통해 배우세요. 야구선수들이 매일매일 선구안을 기르듯이, 쇼트트랙 선수들이 속도로 아무도 터치 못하게 달리는 훈련을 매일 반복한 것처럼, 들에 핀 백합, 하늘의 참새들이 매일매일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사는 것처럼 성경을 통해서 배우고 익히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답답한 마음 하나하나 아주 작은 문제부터 큰 문제까지 모두 아주 자세하게 하나님께 말씀드리세요, 매일매일 답답할 때마다 일어날 때마다 속상할 때마다 하나님을 찾으시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매일 감사합시다. 우리를 살아있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답을 주실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신이 관심 있으시겠어?"
"네, 하나님은 당신의 삶에 큰 관심이 있으십니다. 한번 도전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