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절해봐!! 다 가질 수 있어!!
3. 나에게 절해봐!! 다 가질 수 있어!!
포르셰 벤츠 BMW 랜드로버 등 외제차에서
내릴 때 쏠리는 시선.
이 시선을 즐기는 감정을 하차감이라 합니다.
고급 자동차를 타고 싶은 욕망을 담은 단어입니다.
쏠리는 시선과 성공했다는 딜러들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카푸어가 됩니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고통은 오랫동안 괴롭힙니다.
믿음은 마음의 결단을 내리는 기술입니다.
사탄은 눈앞에 펼쳐진 세상의 경쟁, 비교를 통해 삶을 평가하도록 부추깁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영광을 보여주며 엎드려 경배하면 모든 것을 준다고 했습니다. “뭐 먹고살래?” “네 하나님 정말 있기는 하냐? 네가 검증해봐”하더니 본색을 드러냅니다.
"나를 네 주인으로 섬겨라. 그러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게 인생이야!! 어리석게 보이지도 않는 신, 네 맘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존재를 언제까지 기다릴래? 앞서가는 친구들 안보여?”
사탄은 3가지 패턴으로 유혹합니다.
1. 뭐 먹고살지?
2. 하나님은 계시기는 한가?
두 질문에는 동일한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나다. 내가 책임지고, 내 검증을 받아야 신도 존재한다. 내가 하나님이다."
3. 나에게 무릎꿇을 시간이다. 절해봐
무너지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슬며시 사탄은 천하가 자신의 손안에 있다고 속삭입니다. 올무에 가두고 하나님 따위, 그가 만든 세계의 원리는 잊으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내공은 40년간 머물던 광야에서 체득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바라보는 그 마음과 삶의 태도는 40년을 거쳐, 세대를 이어서 얻은
고결한 기다림의 열매입니다. 그들도 다급히, 조급하게 한 번에, 빠른 시간 안에 얻으려고 했고 실패했습니다.
오래 걸렸습니다. 남들의 시선과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법을 배웠을 때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았고, 유월절을 그 땅의 소산물로 지킬 수 있었습니다. 사탄의 유혹의 기술은 정교하고 치밀합니다. 한번 빠져들면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자신의 체험으로 하나님의 유무를 판단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유는 모두 사탄의 계략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유혹의 손길은 치명적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예배의 현장에서 멀어지며 삶의 이유를 잃어버립니다.
기독인임에도 하나님을 잃고 표류합니다.
비교합니다. 우월해지려고 합니다.
돈과 성공, 자산의 유무와 정도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좌절하는데 안타깝게도 많은 기독인들도 이 기준에 익숙해집니다.
목회자들도 성공하고자 자영업으로 설교를 하고 말씀을 전하며 기업형 교회를 추구합니다. 책을 쓰고 조직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채우고 힘을 키웁니다.
성도들은 그들의 손아귀에서 은혜라는 이름으로 춤추지만 그 프로그램 안에서
진정한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유튜브 썸네일을 보고 클릭하고 몰려들고, 따라갑니다. 좌절합니다.
원망은 부모님과 하나님을 향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하차감과 시선을 거두고 내면에 집중하며 기다리는 일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그의 존재를 믿고 기다리며 그의 성취를 그의 방법대로 이루실 것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어렵습니다. 결코 이 내공은 단시간에 생기지 않지만 누구도 이 여정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겪은 40년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400년 이상 걸렸습니다.
야곱은 눈물로 세월을 버텼고, 다윗은 왕이 되기 위해 모욕의 세월을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몇 번의 체험으로 내공이 길러지지 않습니다. 이 내공이 “부르심””언약”을 나의 삶에 적용하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이어집니다. 명심하세요 오래 걸립니다.
생각하지도 않던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내면을 만드시는 일을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땅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이 과정, 좋은 땅이 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말씀을 붙잡고, 도마처럼, 베드로처럼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주님을 찬양하며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지루한 일상이 반복돼도 만나와 메추라기로 버티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분은 고아처럼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매일 사랑의 말씀으로 만나주십니다.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기술의 장인으로 빚으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셨고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시험을 정면으로 돌파하셨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기는 기술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간이라면 반드시 이 유혹의 손길을 반드시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넘어진 유혹도 이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아담 마더 넘어뜨린 유혹을 이길 기술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 시험을 정면 돌파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 ”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유혹을 이기는 기술로 하나님의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믿음으로 말이 암아 의롭게 되었다”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것을 믿음, 의로운 행위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님은 기록된 성경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에 맞서셨습니다.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 누구의 검증을 받는다는 말인가?
오직 하나님만이 예배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베드로전서 5장 8-9절은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유혹을 이기는 기술은 믿음입니다. 갈고닦아야 합니다. 어떻게 갈고닦아야 할까요? 예수님이 하셨던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하면 됩니다. 그가 시험과 고난 자체를 없애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시험을 당하시며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편안한 삶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시험의 존재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을 그것 외에는 찾지 않기 때문이다."
C.S 루이스 -고통의 문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사탄은 “거봐 넌 안된다니까!! 포기해!!"라고 하지만 그분은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나와 함께 하자!! 다시 해보자!!”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십니다.
우린 오뚝이처럼 일어서며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이 성품을 배웁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오직 그가 함께하심을 날마다 선포합시다. 보이지 않아도 그가 길을 만드시는 분임을 기억합시다. 약속을 지키시며 도저히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행하시는 분임을 믿고 기다립시다. 그 어떤 유혹에서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성경말씀을 배우고 익히며 삶에서 나의 인격이 되도록 익힐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 이후에도 들짐승이 으르렁거리는 광야 현실과 마주하셨습니다. 현실은 결코 변하지 않고 우리를 대적합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천사들, 천군들을 통해서 우리를 불처럼 지키십니다. 따라 해 봅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