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힘, 일기일회

스테이크

by 부라톤

'한 번에 하나씩'


조급함을 달래는 내 인생의 모토다.

마트에서 장 볼 때, 공부할 때, 게임을 할 때, 선택의 상황 가운데 있을 때

이 짧은 한 문장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다루지 못하는 능력의 한계 때문인지는 모른다.

이 단어를 놓치면 나는 넘어진다.

장사를 업으로 하면서 매일매일 음식 생각을 한다.

이 세상 속 모든 음식은 하나의 작은 우주다.

작은 요리 하나에도 많은 작업들이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각 부분이 완성되어야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취업을 위해서 제일 먼저 토익점수를 만들어야 하듯이,

주식을 사기 위해서 계좌를 열어야 하듯이,

인생에서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결과는 각 과정의 성취의 합으로 구성된다.

안타깝게도 과정의 생략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 어느 지점에 서있는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하나씩 완성해나가야 한다.


그 완성의 과정은 반복과 지침의 연속이다.

누군가에게는 쉬워 보이는 일도 나에게는 어렵다.

그리고 인간의 관계는 언제나 돌발상황을 제공한다.



일기일회.

'당신과 만나는 이 시간은 단 한 번뿐 입니다'


일본 다도에서 주로 쓰는 이 단어는 다도에만

한정할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식재료는 음식이 되는 순간 음식을 먹는 사람과 단 한번의 만남을 갖는다.

모든 식재료는 같지 않고 같은 상태의 식재료는 없다.

특히 소고기는 더욱 그렇다.

이 세상에 동일한 소는 없다.

각자 자란 환경도 다르다.

마트에서는 모두 소고기로 팔기 때문에 우리는

소고기는 모두 같다고 생각한다.


처음 한우 1+등급의 채끝을 먹고 2등급의 채끝을 먹었을 때 그 차이에 많이 놀랐다.

맛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소고기 판별 기준은 마블링이기에 마블링이 높을수록 고기 등급은 더 높다. 그렇지만 마블링을 기준으로 소를 나누는 건 맛을 위해서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잔인하다.


스테이크를 배우며 희열과 즐거움도 느꼈지만

스테이크를 굽는 과정에서 일본 다도가 생각났다.

일기일회.

내가 굽는 스테이크는 누군가에게

그날의 위로가 될지 모른다.

고기를 먹고 웃는 이의 표정은 7년이 넘는 자영업의 기간 나를 지탱한 빛이다.


나는 스테이크를 구울 때 물의 대류열을 사용하는 수비드 기법을 사용한다.

다른 기법 중 수비드를 사용하는 이유는 생명과학을 전공한 내 배경의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조리기법이 고기가 가진 맛을 최대한 끌어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기를 도구가 아닌 주인공으로 바라보자.

고기는 섬세하다.

가장 적절한 온도와 시간으로 수비드 했을 때 고기는 자신이 가진 최고의 잠재력을 우리에게 뽐낸다.

섬세한 주인공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일은 고기에 대한 최고의 예의가 아닐까?


요리는 식재료를 대하는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1. 고기를 선택한다. 닭, 돼지, 소 (셋 중에 하나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2. 부위와 출신지, 등급을 선택한다.(소라면 안심, 채끝, 등심, 꽃등심, 부챗살, 살치살, 척아이롤 등)

(호주산, 미국산, 한우, 와규-각 출신지마다 서로 다른 등급)

3. 조리방법을 선택한다.(수비드 후 시어링, 시어링, 로스트, 찜)

4. 원하는 굽기에 따른 적절한 온도 설정(수비드 온도-레어-52도, 미디엄 웰던-65도, 웰던-84도)

5. 부위별로 시간 설정(안심-30-45분, 채끝, 등심, 립아이-45분-1시간, 부챗살-2-3시간, 척아이롤-24시간)

6. 굽기 방법(팬 프라잉, 숯불, 오븐), 구울 때 사용할 오일(올리브, 카놀라, 포도씨)

7. 굽기 정도 체크방법(구우며 손가락으로 눌러주는 법, 타이머 설정)

8. 가니쉬(야채 굽기, 퓌레 만들어 얹기, 샐러드와 퓌레를 함께 얹기, 아무것도 없이)

9. 소스 만들기





스테이크 하나 굽는데 고려해야 할 변수가 도대체 몇 개란 말인가?

만족스러운 스테이크는 이 많은 변수들을 조합해서 만들어진다.


내 입에 딱 맞는 스테이크를 조리하는데

1년 6개월이 걸렸다.

태워먹은 고기와 엉망이 된 프라이팬,

쌓여가는 오일 용기.

내 입에 맞는 스테이크를 찾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내로라하는 레스토랑의 책들을 쌓아놓고

연습했어도 혀끝이 만족하는 스테이크는

내게 버거웠다.


수천번의 고기를 굽고 배달하고 서빙하고도

아직도 어렵다.


인생도 스테이크도 복잡하고 어렵다.

한 번에 하나씩 그것도 쉽지 않다.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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