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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라톤 Aug 25. 2020

성경을 읽는 눈

깨달음의 몸부림에서 벗어나 진리의 발걸음으로

“탁월한 엘리트나 천재보다

문맹의 할머니가 성경을 읽는 눈이 훨씬 밝다.”


성경은 지적 쾌락을 만족시키는 책이 아니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삶이 뒷받침 안되면

순식간에 이단이나 종교놀음에 빠지고 만다.


“진리의 말씀인 성경이 깨달음을 위한

 책이 아니라니?!”


인간의 깨달음이란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자신이 원하거나, 처한 현실에 답답함을 뚫어줄

해답을 갈망할 때 찾는 수단인 경우가 많다.


성경은 진리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과정과

그 길에서 당하는 아픔과 혼란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길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여정을 다룬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와 내 인생의 역사가

어긋나 있다가 점점 맞춰져 가는 과정을 이미 겪은

선배들을 통해서 보고 배운다.

예외 없이 그는 우리의 삶을 뚫고 들어온다.


깨달음의 쾌락이 아닌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뚫고 들어와 삶을 지배하고 인생을 주관하는

내 의자에 앉으려고 한다. 나를 밀어내고서 말이다.


내 삶은 내 것이 분명한데, 그는 갑자기 자신이

주인임을 분명히 하려고 한다.


고통의 눈물이 인생을 적시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시편의 구절로만 알았던

“밤새 눈물이 흘러 나의 베개를 다 적셨나이다.”가

나의 고백이 되는 시간이 시작된다.


깨달음의 쾌락으로 감당할만한 일이 아니다.

성경의 진리로 유토피아를 세우려고 한 천재들과

권력자들의 모든 시도는 전쟁과 살육으로 얼룩졌다.


“신이 있다면 고통과 전쟁과 살육은 왜 있는데?”


그 일들을 신의 탓으로 돌리고는 다시 깨달음에

몰두하고 진보를 위해 내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태곳적부터의 죄는 외면한 채 인간은 오늘도 몸부림친다.


천재이며 진리의 깨달음의 인생을

살아가고자 삶을 털어 넣은 엘리트 사울에게

예수와 그 추종자들은 없애야 할 걸림돌이었다.


다마스쿠스의 언덕에서 예수의 음성으로

하나님은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진리의 빛이

그의 삶을 뚫고 들어왔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과거의 영광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는 진리의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성경은 수많은 사람들의 “내 인생”의 기록이며 또한 하나님이 자신을 보여주시는 삶의 기록이다.


“내 인생”을 그의 역사에 묻는 것.


많은 성경의 선배들이 흘린 그 눈물과 고통의

몸부림 가운데 그들은 예배하며 버텼다.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아야 통치자들과 권세들의

힘에서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이라고 표현하면 안 와 닿고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는가?


그들은 네피림이요, 사람의 아들이자, 정복자인

사냥꾼들이다.

힘과 권력으로 땅을 다스리는 법과 정책으로, 결탁한 돈을 공급하는 조력자들과 함께 삶의 구석구석을 약육강식과 돈의 힘으로 짓눌러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하고 수탈하며 절하게 만든다.


성공과 영향력을 앞세워 예수마저 절하도록 종용한다. 모든 것을 준다고 약속하면서 진리의 길을 가면 벌어질 일들로 협박한다.


성경을 읽는 눈은 눈물의 삶으로 얻는다.

그 눈물이 진리의 빛에 눈이 멀어버린 사울의 눈을

열어 바울이 되게 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다윗과 바울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눈물을 닦아주시며 그의 책을 밝히 열어 보이신다.


이것이 성경이 계시라 불리는 이유다.


깨달음이 아니다.

번쩍하고 지식의 섬광이 지나간 자리를

성경에서 나온 낱말들로 뜻풀이해서 짜 맞추는

종교 놀음이 아니다.


인정받으면 받을수록, 박수를 받으면 받을수록

당신이 하나님 대신 예배를 받으면 받을수록

진리의 빛은 사그라든다.


잘 살다가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고생길이 훤해 보이는 길로

가야만 할 것 같을 때, 그의 음성이 나를 그 길로 이끄는 것이 마치 성경의 인물들이 같던 길과 비슷해 보인다면, 시작된 것이다.


멀리 스페인까지 수행의 길을 갈 필요도 없다.

여기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길은 참 좁으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길은 참 험하니

우리 몸에 지워있는 그 더러운 죄짐을

하나 없이 벗어놓고 힘써서 들어갑시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좁은 문 들어가

영생으로 인도하는 그 생명 길 갑시다.”

(찬송가 521장)


https://m.youtube.com/channel/UCsde3qm3uWSciJ1DJMvPg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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