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을 개다....

by 오른발 왼발

최선을 다해 '지금 여기'를 사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내가 어렸을 때 혼자 밤늦게까지 냉장고를 청소한적이 있다.

냉장고가 왜이리 지저분한지 닦아도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간만 가고..작은 팔은 계속 아파오고 나는 지쳐 그만 포기해버렸던 기억.

'왜 이리 시간이 걸리는 걸까? 나는 냉장고청소도 제대로 못하는구나! 남들은 척척 잘도 하는데 나는 이것도 못하는구나!' 그때 그일은 그렇게 미련한 나에 대한 자책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나는 가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을 시작해야할 때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시작도 전에 겁을 먹고는 한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가고, 가족들이 하루의 피곤을 풀고 간 자리에 뒹구는 흔적들...

이젠 그 흔적들을 정리할 시간이다.

엄마노릇 아내노릇이 나에게는 항상 짐이 되어왔으므로 집안 청소도 나는 늘 싫어하였다.

잘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기에 싫은 마음이 더 강하였을 것이다.

뭐든 빨리 척척 해치우는 남편을 보고 살아온 세월은 나를 더욱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강박관념같은것...

'빨리 해야한다' 는 생각에 서두르고 조급하게 일을 해도 언제나 늦기 일쑤인 나!

워낙 꼼꼼한 성격인 나는 성격만큼 꼼꼼히 일처리를 하지 못하는 날들이 더 많았기에 좌절과 나는 항상 함께였다.

어느날부터 나는 그 꼼꼼함을 버리기 시작했다.

'대충대충....' 한 동안 나를 유지시켜준 구원자 같은 단어...허나 이것은 나의 자책감을 해소시켜주기엔 역부족이었다.

'대충대충'으로 인해 내 마음에서 '정성'은 빠져나가고 오로지 일의 효율을 올리는 것이 나를 유능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이 녀석을 꽤 오랜동안 완전히 버리지 못한 '꼼꼼함'과 함께 데리고 살았다.

여기엔 또 다른 자책감이 동반된다.

모든것이 귀찮아지기 시작한것이다.

남편과 아이들을 챙기고 보살피는 일에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 않고 대충대충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살아도 결과는 같은데 뭘 그리 어렵게 살았을까?" 스스로 위안하며 나를 널브러뜨리고 살게 되었다. '대충대충' '빨리빨리'를 받아들인 덕분에 나는 나를 다그치고 아이들을 다그치며 조금은 일이라는 것을 완수하며 살수있게 된것이다.

드디어 무능력함이 내게 주는 압박감에서 벗어난 것일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것 같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만난다.

하루의 시작으로 남편을 매일 처음 만나고 아이들을 만나고, 또 어제까지 만나왔던 누군가를 또 만나고...비단 사람뿐이 아니라 수많은 존재들의 마주침으로 나의 시간은 채워져간다.

만남이란 얼마나 귀한것인가?

그 만남속에 나의 삶은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성장한다.

만남이 귀한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만남들 속에 어느날 어느 색다른 마주침이 나를 다시 흔들어대고 있다. 이제 또다른 변화가 필요한것일까?


꼼꼼함 속에는 정성이 들어있다.

나는 그 정성도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니 꼼꼼함은 버리지 못하고 정성만을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원래 생각만 많은 사람이지만 이젠 그 생각들을 '지금 여기'에 잡아두려고 노력하는 시간들이 생겨나기 시작한것이다.

앉고 서고 걷고... 바람을 느끼고 햇살을 쪼이고 온갖 오월의 푸르름을 보고 듣고 느끼고...


오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현재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려면 어찌해야할까?'

만남이 가져다 준 물음표였다. 나름대로 답을 찾아본다.

오늘 남편의 출근길을 배웅하면서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육교 위를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침부터 강렬한 태양이다. 걷는것에 집중해보기도 하고, 문득 들려오는 새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려보기도 하고, 바람에 살랑이는 초록빛 나뭇잎들, 붉은 장미, 아침의 공기들...집에 돌아와 아이를 깨우고, 밥을 차리고....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런것들이 내겐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었다. 그저 빨리빨리 대충대충 해치워야 할 과제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 오늘 여기에 정성을 담아보기로 한다.

습관처럼 대충대충 이불을 개다 말고 다시 펼쳐 이불 네 귀를 맞추고 '지금여기'마주하는 이불 너에게 정성을 담아 보기로 한다.

어느새 내 마음 속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번져감을 느낀다. 나에게 희망을 발견한 것일까?

물음표의 답을 제대로 달아볼수 있는 희망?


나는 잘못 알고 있었다.

나의 꼼꼼함이 무능력함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강점인것이었다.

너무 오래 걸려 답답할지라도 그 속엔 아주 작은 것도 놓치지 않겠다는 세심함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그것이 '지금 여기'를 사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꼼꼼함속에 귀함을 담고, 정성을 담고, 최선을 다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마주할수만 있다면, 순간순간 온전한 시간들로 채워질수 있을텐데...

우리가 순간 순간을 귀히 여기지 못하고 스쳐지나가버리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삶은 그만큼 하찮은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늘 간과하며 살아간다. 많은 책들에서 훌륭한 위인들에게서 들어 왔으나 나는 오늘에야 그것을 가슴으로 느낀다.


어린시절을 되돌려 나는 나에게 말한다.

'넌 참 멋진 아이구나~^^'


이젠 우리 아이들에게 말할 차례이다!

"빠르든 느리든, 너는 그것이 너의 강점이다. 잘 못한다고 울지말아라. 단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니까... 다만 잊어버리지 말것은 지금 이순간 너의 모습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너는 너에게 최선을 다해라...."


모든 삶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냥 그 자체로 귀하다. 모든 것은 마땅히 존중받아야할 권리가 있다. 각기 다른 모양 그대로...


나는 나의 모양을 존중해주지 못했던것이다.

내가 나에게 인정받지 못했기에 남의 인정을 갈구하며 살았던 것이다.

나의 인정을 그토록 그리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