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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크 Mar 14. 2024

고독한 미식가

 #이오김밥 #저탄수 치즈김밥 #채식

고작 김밥 하나를 먹으러 30분을 걸을 것인가? 왕복이면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 귀찮음과 맛있어 보이는 김밥 이미지 사이에서 갈지 말지 생각하다 운동도 할 겸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대출하신 자료의 반납일’이라는 카톡 알림도 받았겠다 우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하고 김밥을 먹으러 가야겠다. mbti 내향(Introversion)인의 특징이라는데 대문자 'I'인 나도 집 밖을 나갈 때 밖에서 해야 할 것을 한꺼번에 처리하려고 한다.


추울까 봐 집에서 입던 캐시미어 상․하의에(좋은 것도 아끼기보다 자주 사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두꺼운 니트 겉옷을 입고 천변을 따라 걷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춥지 않아 걷기에 좋았다. 파워워킹 때문인지 몸에서 살짝 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성동은 '세종의 강남'이라는 별칭이 있는데 고층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랜드마크처럼 멀리서도 확 눈에 띄었다.

 

강변을 따라 일자로 쭉 걷다가(20여분 정도지만 평소 운동 안 하는 사람에게는 힘들었다)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이오김밥 건물이 나왔다. 흔히 상상하는 김밥가게와는 다르게 인테리어가 흰색이고 조명도 환해서 마치 꽤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원래는 포장해서 돌아가려고 했는데 걸어오느라 힘들어서 쉴 겸 테이블에 앉아서 먹기로 했다.

 

집에 혼자 있을 때는 귀차니즘으로 레토르트 음식이나 라면같이 간단한 것으로 때울 때가 대부분이지만 외식모드일 때는 먹을 것에 진심이다. 어떤 메뉴가 있는지 출발 전부터 검색하고 왔지만 다시 키오스크 메뉴를 찬찬히 보고 ‘저탄수 치즈김밥’을 주문했다.

김밥취향도 꽤 확실한데 김밥 안에 밥이 적게 들고(아니면 키토김밥처럼 밥 대신 계란이 든 김밥도 좋아한다), 속재료가 많이 든 김밥을 선호한다. ‘저탄수 치즈김밥’은 키토김밥이다. 당근, 우엉, 파프리카가 씹히면서 채소의 수분감이 확 느껴져서 청량감이 있었고, 단무지를 직접 만들었는지 식감이 쫄깃했다. 채소를 감싸고 있는 달걀은 액체계란을 납품받아서 만드는 건 아닐지 의심들 정도로 엄청 부드러웠다. 치즈도 슬라이스 치즈가 아니라 직사각형 모양으로 꽤 두툼하게 들어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저탄수 치즈김밥은 페스코(생선까지 먹는) 채식주의자도 먹을 수 있는 메뉴라서 페스코 채식주의자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올 2월, 세종으로 이사 오면서 5년 간의 페스코 채식주의를 끝냈다. 혼자 채식을 하는 것은 힘들지 않은데 회사에서 배달해서 점심을 먹을 때 음식점을 정하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특히 회식 때 메뉴를 정할 때마다 어쩐지 죄인이 되는 기분이다. 지금은 플렉시테리언(유연한 채식주의자)이다. 회사에서 여럿이 먹을 때에는 어쩔 수 없지만 비건 지향의 삶을 되도록 유지하려고 한다.


채식주의를 밝히면 사람들은 꼭 이유를 물어본다. 정해진 대답은 대형견을 키우는데 강아지 뒷다리를 쓰다듬는데 후라이드 치킨 다리를 만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 이유도 채식주의를 실천하게 된 계기 중에 하나지만 더 솔직한 이유는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닭의 수명은 7년에서 13년이지만 육계는 한 달 정도 자라면 도축된다. 그 한 달간의 삶도 움직이기 힘든 좁고, 불이 꺼지지 않는(환해야지 낮인 줄 알고 계속 모이를 먹어 살이 찐다고 한다.) 안락하지 못한 곳에서 산다. 좁은 공간에 갇힌 채, 줄에 묶여있던 소의 큰 눈, 도축 전 스스로의 죽음을 알고 있는 듯한 돼지의 울부짖는 소리가 내 기억 한 편에 있기 때문이다.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소, 돼지 등을 키울 때 나오는 메탄가스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이기도 하다. 폭염이나 강수변화, 전염병의 전파 위험 등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


채식주의의 이유로 공장식 축산에 반대해서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럼 생선을 안 불쌍하냐?"는 질문이 돌아오자, 굳이 더 이상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질문에서부터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어떤 사람은 내 말을 듣고 '공장식 축산으로 키운 고기를 먹다니 참 잔인하네요'로 곡해하면서 기분 나빠하기도 했고, 채식주의자와 언쟁을 해서 논리적으로 이겨주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동물권 활동가가 한 고깃집에 가서 “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라고 1인 시위를 했었는데 관심을 얻기 위한 활동인 것은 알지만 내가 지향하는 비건운동은 아니다. 오히려 채식주의자에 대한 반감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는 만큼’의 비건 지향(비건만이 진정한 채식주의라던지 계란을 먹으면 채식이라 할 수 없다던지, 채식에도 우열을 가리려는 사람들도 있다), 채식주의 아닌 사람에게 맛있고 예쁜 채식주의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채식을 소개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추천책] 전범선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휘뚜루마뚜루 자유롭게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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