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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 Sep 30. 2019

콘텐츠 마케터로 밥 빌어먹고 살기

내 안의 유노윤호 지수를 높이기 위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극장쟁이

이건 스칸디아 가구다.

한국의 토종 가구 브랜드.

내 기억으로 일곱 살 무렵부터 스칸디아에서 만든 이 책상을 썼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면 허리춤 정도까지 오는 아담한 높이의 스칸디아 책상. 주로 학습지를 풀거나 책을 읽는 용도였지만 내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용도는 책상을 반쯤 눕히고 나서부터였다. 네 개의 책상다리 중 두 개를 땅바닥에 뉘어 90도가량 눕히면 책상은 어린 내게 꽤 큰 무대가 됐다. 다행히도 어릴 적 작았던 체구 덕에 나는 책상 뒤에 쏙 숨겨졌고, 거실에서 소파와 티브이장을 관객 삼아, 되도 않는 일인극 같은 걸 했더랬다. 스칸디아 책상은 스물여덟에 이사를 하기 전까지 장장 이십여 년 동안 나와 함께 있었다. 이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책상 다리 하나는 지탱하던 부품이 빠졌는지 덜렁거리며 균형을 맞추지 못하게 됐는데, 인제 와서 A/S도 불가능한 그 책상에 무슨 애착이 그렇게 강했는지 좀처럼 버리지 못하다가 서른을 두 해 앞두고 처분했다.


그 책상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극장쟁이*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수많은 계기 중에 스칸디아 책상은 아마 가장 최초의 이유일 거다. 내 방에서 너무나도 당연했던 책상이라 그 묵직한 존재감도 잊은 채 십대를 지나 이십 대가 됐고, 스물셋을 보내며 공연 일을 하겠다 나대던 나는 운이 좋게도 국립극장과 SM엔터테인먼트를 거쳐왔다.

* 극장쟁이: 극장이라는 하드웨어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내 별칭이다. 굳이 따지자면 극장’장이’가 더 가까운 표현이겠지만, 이왕이면 재밌게 일하자는 주의라 극장쟁이라 부른다.


치열했던 이십 대를 지나 서른 줄에 접어들고 잠깐 휴식기를 가지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업계 사람으로서 이 나이치고 콘텐츠 양극단의 스펙트럼을 썩 잘 경험하고는 있다지만, 질문이 든다. 


나는 콘텐츠를 잘 파악하고 있나? 


이 물음에서 ‘잘’은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 트렌드 분석을 ‘잘’ 하나? 둘, 다양하게 ‘잘’ 섭렵해왔나?

일단 트렌드 분석을 ‘잘’ 하냐는 측면에서 나는 낙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 광풍을 불러일으켰을 때, 나는 그 광풍을 K-pop의 잠재력보다는 <미스 사이공>류의 오리엔탈리즘에 B급 유머를 더한 일시적인 반짝임이라 생각했다.


#오만방자 #BTS와_함께_합죽이. 


그렇다면 ‘잘’ 섭렵은 했나? 콘텐츠의 오늘과 내일을 늘 주시해야하는 업무 특성 상 다양성의 지표라는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지만 정작 보는 콘텐츠는 거의 없다. 오히려 볼 게 너무 많은 탓에 역으로 뭘 봐야할 지 몰라 손이 안 갔고, 그만큼 메이커와 프로바이더로서 뚜렷한 솔루션도 제시하지 못했으니 여기서도 난 낙제겠다.

일단 이 질문은 아닌 것 같아 다른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콘텐츠를 ‘마케팅’하던 사람으로서 난 마케팅을 잘 해왔나? 


마케팅 담당이라는 직함을 달고 3년간 진행했던 것들을 돌아봤다.

뮤직비디오 썸네일을 만든다.

YouTube와 미팅해서 신규 기능 시연을 논의한다.

V LIVE 촬영을 위한 장소를 찾는다.

소품을 구하러 남양주에 외근을 간다.

전단에 실을 로고 위치 1픽셀 조정 가지고 디자이너와 씨름한다.

전단 박스 60개를 끌차로 옮긴다.

공연장에서 시큐리티 몰래 전단을 배포한다.

상도동 노인정에 공연 홍보차 들렀다 본의 아니게 토크타임을 가진다.

가오는 살리되 재무팀 눈치 안 볼 사이즈의 식사 장소를 예약한다.

아티스트가 메이크업 수정 안 하면서 가볍게 먹을 저녁을 배달시킨다.

YouTube 뮤직비디오 1억 뷰 되는 시분초 잡느라 무한 새로 고침을 한다.

숫자, 숫자, 그리고 숫자.


뭔가 되게 (짜치게) 많이는 했는데, 이게 마케팅을 잘했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얼마나 유효한지는 모르겠다.

이 질문마저 아닌 것 같아 마지막으로 속는 셈 치고 자기합리화를 위한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콘텐츠를 다루는 사람으로 열정은 충만했나?


오, 이건 할 말이 있다. 공연 일을 시작하며 갖게 된 직업관이 있는데, 일과 생활에 경계가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점이다. 개풀 뜯어먹는 소리라 할 사람 많은 거 알고 있지만, 보통의 직장인이 근무하는 시간에 똑같이 기획/행정업무를 하고 그들이 퇴근해서 공연을 보러 올 때 운영/서비스 업무를 하는 업계 특성상 매일 12시간이 넘는 근무는 당연했고,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즐겁게 했다. 물론 그만큼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했겠지.

이 지속 가능할 거라 믿었던 열정에 ‘시간’이라는 변수의 존재감을 안건 얼마 되지 않았다. 두 번째 직장이 공연 콘텐츠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어찌 됐든 경험 제일주의를 최고로 치며 6년을 달려온 내게 경종을 울리던 순간, 내 안의 유노윤호 지수가 떨어지기 시작한 거다.

스물셋에 일발장전한 공연으로의 열정이 스물일곱 국립극장에서 정점을 찍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열정이 그러하듯 나의 그것도 스멀스멀 내려오다 어느새 영(0)을 찍은 지금, 서른. 나는 내 나이 십의 자리가 바뀌면 내가 가진 열정도 프렌즈팝 하트가 맥시멈으로 채워지듯 재충전되어 정점을 찍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나이의 숫자가 시간의 관성만큼 쉬지 않고 올라가듯, 내 열정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연출가 로베르 르빠주의 <887>라는 작품이 내게 가장 뜻깊은 극장 LG아트센터*에 올라왔다. 르빠주가 연출의 거장이 되기까지의 기억을 녹여낸 그 작품에서 나는, 잊고 있던 내 스칸디아 책상이 떠올랐다. 이어 나의 지난 이십 대가 두 시간의 공연 동안 빠르게 지나갔고, 보이지 않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 했다. 이후 공연과 극장을 다시 3000만큼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과감히 두 번째 퇴사를 했다. 한 달 가량 미국에 머물렀고, 재충전하며 열정을 다시 끌어올릴 계획이었지만 혹여나 내 생각만큼 빠르게 재충전이 되지 않더라도 조급해하지 말자는 의지도 다졌다. 


* LG아트센터: 역삼동에 위치한 LG그룹 연암문화재단 소유의 다목적 대공연장. 내 첫 번째 공연 커리어가 여기서 시작돼씩 때문에 감회가 남다른 극장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브레이크의 끗발이 슬슬 오고 있어 다음 스텝 준비를 하고는 있지만, 사실 스물셋의 열정만큼 내 열정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찌 됐든 나는 내 커리어의 Phase 2를 앞두고 있고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나는 경험했다. 열정만으로도 안될 때가 있고, 만약 그때가 다시 온다면 나는 또 나를 믿고 과감한 결정을 할 거다. 바라는 바가 있다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열정을 봐서라도 내 선택에 미련을 가질만한 합리화는 안 했으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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