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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다이어리 - 내려놓는다는 것

10여 년을 한 회사에서 버틴 자들의 대화

by 마미랑 플래몽드

워킹맘 다이어리 - 내려놓는다는 것


10여 년을 한 회사에서 버틴 자들의 대화


내려놓는다는 것.


한 달에 한 번, 첫째 또래 아가들을 키우는 워킹맘들의 모임이 있다.

다들 바쁘다 보니 평소에는 자주 얘기를 못하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울고 웃으며 힘을 얻곤 한다.


내 나이가 어디 가서 작은 것도, 많은 것도 아니지만

다행인지도 모르게 이 모임에서는 거의 막내다.

그러다보니 다들 한 회사를 10년 이상 다니고, 나 빼고(...)는 한 자리씩 하고 있는 분들이다.

그러다 한 언니의 이야기로,

이번 모임의 강력한 주제는 "회사에서 내려놓고 버티기"였다.


나야 육휴에서 복직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곧 또 육휴 하러 떠날,

그것도 고위험 산모라

꼬박꼬박 단축근무까지 쓰고 있는,

부서에 그룹장 다음으로 오래 있었으나

부서 업무강도에 비해

(법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근무시간을 가진 이...


그룹장님은 새로 온 팀원에게 좋게 포장해서

용병이라 소개해주셨다.


프로젝트를 맡아서 이끌어나갈 수는 없지만

진행되는 프로젝트 어디든 손이 필요하면 투입되고,

또 가끔 급하게 처리해야 할 새로운 업무가 떨어졌는데

모두가 업무를 하고 있어 맡을 사람이 없는 일에 투입되곤 한다.


물론 왜 나라고 일욕심나지 않고...

그룹장님 다음으로 수많은 선후배들이 이 부서를 거쳐 좋은 곳으로(!) 떠날 때,

나는 지박령처럼 여기서 있는 게 속상하지 않겠는가.


그저 지금은 내려놓고 버틸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언니의 고민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거였다.

초초초남초 회사에서 팀장자리까지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을 언니는 능력자다.

큰 수술을 받으면서도,

아기를 낳고 100일 만에 육휴도 없이 복직을 하면서도,

재택근무를 하고 단축근무를 하면서,

시차가 맞지 않는 곳과 일을 하기 위해

새벽잠을 쫓아내며 일도 하고

낮에는 아이를 보면서도 버텨왔던 언니는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 자리까지 가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나도 이 말을 들으니 속상한데 이 고민을 하는 언니는 얼마나 속상할까.


그래서 우리는 내려놓고 버티시라 했다.

언니는 내려놓았다고 하지만 아직 내려놓지 못한 것이라고.


또 인사팀이 단축근무에 재택근무를 시켜주면서도 언니가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건

그만큼 언니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얘기를 했다.


워킹맘은 내려놓고 버틸 수밖에 없다고.


한 언니는 얘기했다 한 회사를 10여 년 다닌 우리들은 대단한 사람들, 어쩌면 독한 사람들이고...

이미 짬이 찰만큼 찼으니, 그 짬을 믿고 조금 더 내려놓고 버티면서 일해보자고.


아이가 크면 다시 날아다닐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그런 얘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울고 웃었다.


이제 아이가 하나가 아닌 셋이 되는 워킹맘도

그저 내려놓고 버티면서 그 시기를 이겨내 봐야지.


전국의 워킹맘 응원합니다.


조금만 더 내려놓고 버텨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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