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는 사람
'사울'은 예수 믿는 자를 죽이는 것이 신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울'이 되어 그를 위해 죽었다.
그와 나의 만남이 그러했다.
처음에는 그가 불편했다.
나와는 다른 성향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인수되는 기업으로의 열등감이었던 것도 같다.
2022년 인수되던 당시 내가 근무하던 회사는 8년차 IT스타트업이었다.
사업을 잘 운영해왔고 중간 즈음에는 중견기업으로부터 매각 제의를 받을 정도로
기대치가 높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대면해서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서비스의 특성상
IT가 호황이었던 코로나의 시기에도 특수를 크게 누리지 못했다.
코로나에 대해 사람들도 기업들도 적응이 될 무렵
앞다투어 시작했던 IT 투자들도 잠잠해지기 시작했고,
가상화폐처럼 천장이 없이 오르던 개발자들의 몸값도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해 이상 보릿고개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고
별다른 해결책을 내지 못하고 기울어져 갈 무렵
내가 다니던 회사는 그가 근무하는 기업으로 인수가 되었다.
그는 회사의 여러 팀장들 중에서 기울어져가는 우리 회사를 살리는 역할을 맡았다.
시간이 지난 후 들어보니 인수한 기업에서 그 역할은 아무도 맡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안 그렇겠나.'
적자를 개선하지 못하고 합당한 근거와 인사이트 없이 자존심만을 세우는 대표자와
그런 대표자의 분위기에 휩쓸려 은연중에 적대감을 띄는 직원들과 일을 해야 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했고 주변의 평가도 늘 좋았다.
어느새 나는 내가 가장 옳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유순한 사람을 가장했지만 내면에는 돌바닥 같은 완고함이,
뱀 같은 교만함이 내게 있었다.’
그의 회사는 10명 남짓한 내가 있는 회사보다 한국만 해도 직원이 4배는 많았고
해외 지사의 인원은 10배도 넘게 더 많았다.
그는 이 모든 업무들의 중심에 있었고
서로 다른 여러 직무의 업무를 결정하고 관리하고 결과를 책임져야 했다.
그럼에도 이런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회사를 살리는 같은 일을 했다.
'나는 나의 일을 했는데, 그도 나의 일을 했다.'
함께 일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었다.
그는 불편한 질문들을 서슴없이 했고
직원들은 불편해했다.
그러나,
그 질문들은 우리를 향한 비난이 아니라
현실을 바로 보게 만드는 근본적인 질문들이었다.
그가 제안하는 새로운 시도들은
미지의 영역으로 목숨을 걸고 뛰어들자는 것이 아니라,
늪에 빠져 의지까지 잠겨가는 우리들을 향한
같이 살자는 외침이었다.
힘의 위계를 통해 강압적으로 했다면 더 편했을 텐데,
항상 먼저 대화를 시도하고 설득하려고 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려고 했고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알려주었다.
그는 언제나 가장 앞에서 걸었다.
우리의 작은 시도들이 성공해서 자축의 자리를 가질 때도
실패가 너무 쓰고 아려서 모두들 퇴근한 뒤에도
그는 항상 회사에 있었다.
“가고 싶지 않은 자리에도 늘 그는 있었다.”
불편하고 무례한 고객과의 자리에도,
누군가의 실수로 이미 무너져 버린
괴롭고 어려움만 가득한 일의 자리에도,
고객의 비난과 탈진한 동료들의 한숨 속에서도
무너진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다시 쌓았다.
사람들은 그런 일을 지켜볼 때마다
‘그’라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고
규격 외의 무언가처럼 여겼다.
대표들은 그의 순종을
멍에를 멘 이를 보듯 당연하게 여겼고
무능과 탐욕으로 생긴 부채를 모두 그에게 전가했다.
내가 지켜본 그는 초인이 아니었다.
안색은 과로 때문에 언제나 좋지 않았고
쉬고 싶어 했지만 잠을 잘 시간이 부족해 의자에서 쪽잠을 자곤 했다.
날카로운 고객과 맞상대를 해야 하는 날에는
수십 가지나 되는 경우의 수를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일일이 계산하고 확인했다.
소화가 안되어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날이 많았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야 한 끼를 겨우 먹고
유튜브를 하나 틀어놓고 웃음을 지었다.
평일엔 저녁 한 끼도 함께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짧은 틈이 생길 때마다 메신저로 메세지를 보냈고,
보낸 뒤엔 언제나 미안해했다.
실패에는 똑같이 좌절하고 괴로워했지만
회피하지 않고 모든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렸다.
언제나 다시 일어났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대표가 아니었다.
그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극단적인 헌신을 보이는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을 매일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는지.’
그는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웃었다.
마음 없이 헌신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돈과 지위에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누가 강제로 시켜서 무조건 해야만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원래부터 그래야 하는 것처럼 묵묵하게 모든 것을 감내했다.
각 회사의 대표자들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자신들이 보기에 옳은 대로
또다시 사업의 구조를 바꿨고
각자 다른 업무 영역에서 일하게 되었다.
여기에 그의 의지는 없었다.
직급과 직책에 부조리함이 깃들었으나,
그들은 그냥 ‘받아들이마’ 했다.
부조리함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에
감정이 통제되지 않았다.
식도 밑으로 용암이 흘러 가슴 아래에서 모였다.
그는 더 영광스럽기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는 길을 택했다.
말이 아닌 나귀를 타고 스스로 고난의 언덕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