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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Feb 04. 2020

어른의 돈

돈을 쥐어보면 내 그릇을 알 수 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성인이 되고는 돈에 대한 걱정이 대수롭지 않아 졌다.


돈이 많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한 몸 살아가는데 부족하지 않아서였다.

많으면 좋지만, 부족하지만 않아도 죽지는 않음을 일찍 깨달았다.


20대 초반 학생 때는, 집에서 용돈을 받으며 생활했고, 돈이 부족하면 노가다, 택배, 알바 등 소일거리를 하며 내게 필요한 만큼의 돈을 충족시켰다.


20대 중반이 되어갈 때쯤, 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내가 뭘 했을 때 보다 수월하게 돈을 벌 수 있는지 알게 되자 성장이라는 명목 하에 내가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일은 자신 있는 순서대로 선택해서 그에 대한 보상을 받으며 필요한 돈을 충족시켰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놀고 싶은 대로 다 놀아도 생활비가 남을 정도의 분수에 맞지 않은 넉넉한 삶을 잠깐 누렸다. 이제 고생은 끝났구나 하는 생각 덕분에 과감하게 돈을 쓰고 욕심도 부렸다.


“내 인생이 일찍이 풀리는구나,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생각을 하게 될 때쯤 문제는 시작되었다.

일이 줄기 시작했고 더불어 통장 잔고도 순식간에 줄기 시작했다.


내게 들어오는 수익은 프로젝트성 수익으로 한 프로젝트가 시작될 즈음에 바짝 들어오는 수익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수익은 한시적이고 지속성이 없어 내가 멈추거나 계속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단절되기 마련이었다.


계속해서 내게 이 일이 주어질 거라는 나태함과 이 돈이 끊기지 않을 거라는 오만이 불러온 결과였다.

돈이 있을 때 영원히 있을 거란 생각은 오랜 착각과 긴 시간 동안 돈에 대한 욕심과 불안을 만들었다.


진짜 문제는 일이 끊기고, 통장 잔고가 떨어지는데서 오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이 분야에서는 돈을 잘 벌던 사람인데”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이런 기분일까?"

내가 원하는 일,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일을 해도 더 많은 돈을 벌다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죽어라 하고 적은 돈을 버는데서 오는 현실감 괴리는 착각 속에 빠진 내겐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이후 내 삶은 보통 여느 20대와 같은 삶으로 취업을 준비하며 알바를 하는 상태로 돌아갔으나 일을 통한 만족도는 계속해서 잠시 내게 스쳐 지나갔던 그 시기에 머물러 있었다.

겉으론 남들과 같은 삶을 살아갔지만 속으론 부정하던 현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았다.

계속적으로 자기 암시를 강행했다.


“이게 나의 그릇이야”

“지금 위치한 내 자리가 현실이야”


과거가 지워지고 돈에 대한 불안을 내려놓아졌음을 느끼게 된 순간은 다시 20대 초반과 같이 많으면 좋지만, 부족하지만 않아도 죽지는 않음의 상태로 돌아왔을 때였다.


정확히 금액으로 “난 월 70만 원만 있으면 살 수 있어”의 상태였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연말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소주를 털어 넣으며 삶을 회의하듯 입김과 약간의 아밀라아제를 내뱉으며 설움을 토했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그 얘기를 듣자 내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소연하는 친구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삶을 되짚어 봤다.


애써 아닌 척, 괜찮은 척 부정하며 살아가지만 나를 불행하고 불안하게 하는데에 결코 돈이 무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씁쓸하면서도 한편 스스로의 욕심에서 비롯된 삶의 역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라는 것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며 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제한하기도 하고 자유롭게 하기도 하는구나”

“불가능을 가능하게 보이게 하기도 하며 가능한 것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도 하는구나”


돈이 부족하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제약이 줄어드는 것 또한 굳이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정확히 말하면 돈이 좌우하는 내 삶의 행복의 위치는 내 현실에 맞지 않는 욕심에 기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상황 중 하나일 뿐인데, 우리는 생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이 돈이 바꾸는 상황에 대해 쉽게 수용하지 못한다.


20대 중반 돈이 내게 알려준 가장 큰 교훈이 있다면 돈으로 변화해온 삶은 상황에 따라 가장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기에 언제나 바뀐 상황을 마주했을 때 겸허히 받아들이며 상황에 맞게 나라는 사람도 함께 바뀔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돈으로부터 오는 욕심은 언제나 사람을 과하게 만들고, 그 욕심은 매번 사람을 실망시켰다.
때론 부족하지만 모든 걸 내려놨을 때 더 나은 삶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우리가 힘들게 살아가는 이유는 포장마차에서 오뎅 하나를 사 먹는데도 고민을 해야 하는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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