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에 대한 새로운 배움
사회도, 국가도 결국 프레임이야
강연 중 한 친구가 말했다.
처음 이 말을 듣고 “뭔 소리지?” 했지만, 딱 3초 생각한 후 감탄했다.
“미친 새끼, 역시 미치려면 끝까지 미쳐야 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를 가두는 프레임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처음으로 국적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생각을 해본 순간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해외여행을 할 때를 떠올려봤다.
단순 휴가 중, 여행 중이라는 범주가 아닌 아닌 더 큰 범주에서의 자유를 느낀다.
“한국이 아니니까”라고 생각하거나 “한국이라서 할 수 없다”는 스스로 혹은 사회가 주는 제약에서 벗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은 한국이 아닌 해외여행에 대한 로맨스와 호기심으로 여행을 계획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한국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자유롭고 심적 편안함을 얻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 프레임, 강박 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와 같은 것들이 때때로 ‘나’의 존재를 증명하곤 한다.
삶에는 제약이라고 생각하는 강박이 꽤 많이 존재한다.
어쩌면 법의 제약을 받지 않는 행동임에도 제약을 넘어 우리에겐 “하면 안 돼", “할 수 없어"라는 강박으로 잡혀있을지도 모른다.
부끄러운 삶과, 실패하는 삶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더 많이 배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돌이켜봤을 때, 성장하며 배웠어야 하는 삶의 자세는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일반적으로 모두가 옳다고 하는 길만을 걷는 게 아닌, 철저하게 패배자가 되고, 철저하게 지질해지는 삶, 나만의 길을 걷는 삶도 괜찮은 삶이라는 것이다.
내가 정한 나의 기준은 나를 긴장시키기도 하고, 성장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기준이 냉혹해질수록 나를 억압하는 강박이 되고 늘어날수록 내가 스트레스받고 불안해질 수 있는 상황들도 함께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