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불편할 거라면 마음이 편한 쪽을 선택해요
이게 정말 내 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애써 걸어온 삶이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동안 쌓아 올린 탑은 빠르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 온 삶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위해 그토록 나를 옥죄었을까?”
그동안 걸어온 길들을 돌아봤다.
나의 첫 번째 퇴사
수익성 높은 직장, 퇴근 후 룸살롱에 가서 퇴폐적인 삶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싫었고, 그들처럼 살지 않기 위한 선택이 퇴사였다.
“좋은 기회를 주셨지만, 제가 생각해온 회사의 모습과 다른 거 같습니다. 이렇게 문자로 퇴사하는 것이 예의가 아님을 알지만 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문자 한 통을 남긴 채 야반도주를 했다.
두 번째 퇴사, 어린 초년생의 실수였다. 열등감으로 인해 잘하고 싶은 마음에 쉬지 않고 일하다 보니 몸이 무너졌다. 2년을 넘게 병원을 다니며 그간 벌어온 돈과 퇴사 이후에도 버는 돈을 계속해서 써가며 관리해야 했다.
그 이후는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며 여러 회사를 옮겨 다녔고 하나의 프로젝트가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회사의 분위기를 살폈다. 직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오너의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아서 떠나기도 했고, 회사 운영의 미숙함, 업무 능력에 따른 질투와 시기 등의 인간관계, 더 성장하고 싶은 욕구 등 다양한 이유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쳐온 수많은 회사 중 최악의 퇴사를 돌이켜보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부하 직원을 시도 때도 없이 헐뜯고 성과를 전부 본인 위주로 설계하며, 그게 안될 때면 형님 동생 하는 외주업체에게 성과를 돌리는 등 정말 다시 생각해도 "뭐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상사가 떠오른다.
이 사람과의 마지막은 아직도 화가 난다. 한 해의 사업이 마감되는 연말 그는 내가 작업한 마지막 사업 보고서가 마무리될 즈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꼬투리를 잡더니 내게 회사에서 떠나 주길 권고(?), 강요했다.
그만두는 거야 내게 어렵지 않았고, 다만 이유를 듣고 싶어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에서 분노를 꾹꾹 눌러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긴 대화 끝 그가 내뱉은 이유는 내가 그를 보필하지 않아 맘에 들지 않는다 였다.
"보필이라고 했나?" 내 귀를 의심했고, 곧이어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언제 그만두면 되나요? 전 지금 당장도 괜찮은데"였다.
이렇게 많은 퇴사를 해가면서까지 굳이 회사를 다녔어야 했나 생각해보면, 난 내 분야의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일과 일상이 하나가 되길 바라는 삶을 꿈꿔왔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삶, 짜증보단 웃음이 많은 삶을 바라왔다.
그저 그렇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안정적으로 잘 사는 삶’의 기준에 대한 강박과 불안에 가득 사로잡혀 아등바등할수록 내가 살고자 했던 행복한 삶과는 멀어지는 느낌과 그렇게 살 수 없겠다는 생각만 짙어지게 만들었다.
잘 사는 삶에는 수많은 기준이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생각한 잘 사는 삶은 사회적 기준과 결코 맞춰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가득 차는 순간들도 찾아왔다.
어쩌면,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전제하에 ‘내 기준대로 살다 보면 잘 살아지겠지’라는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살기 위해 난 더 많은 시간을 내게 줘야 했고, 더 많은 다른 상황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지 못하는 순간 결국은 이 모든 것이 또다시 무너질 것이라는 확신과 “결국 무너져 내릴 거라면 적어도 내가 즐거웠던 감정만큼은 남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만이 맴돌았다.
겉으론 자유로운 사람, 속으론 갇혀 사는 사람으로서 오랜 시간을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왔다는 게 내가 살아온 삶의 진실이었으며,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건 할 수 없었기에 지금까지 걸어온 이 길이 내 길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난 자유로운 사람이야"라고 애써 말하는 사람은 실제로 자유로운 사람일 확률보다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싶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