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을 쌓는 실행
멋진 슬로건과 브랜드 철학, 그 안에 담긴 스토리. 매년 더 새로워지는 사용자 경험과 더 확고한 이미지를 심기 위한 캠페인들. 대학생 때만 해도 세계적인 기업들의 브랜딩 사례들을 보면서 '와 저런 일에 참여하면 진짜 일할 맛 나겠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내가 뭐든 기획하면 다 그게 현실로 이루어지는 줄 알았으니까요. 실제로 팀플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흉내들을 내보곤 하는데, 어차피 실제로 실행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기획안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것도 예산이 아주 풍부하고, 모든 게 갖춰진 대기업 안에 들어가 있다는 가정에서의 기획안.
주로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의 대표님이나 임원분들을 만나 뵙고 다니는 지금은 전혀 다른 고민들을 합니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제가 얼마나 세상의 작은 부분만 보며 살았는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멋진 슬로건과 브랜드 철학을 가진 기업이 몇 개나 있을까요? 그 브랜드 철학이 내부적으로도 철저히 내재화되어 있는 기업은 또 몇 개나 될까요?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수많은 중소기업에서는 과연 브랜딩이라는 걸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는 할까요? 경영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라면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에서 시작한다고요! 브랜딩에 집중하세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 클라이언트들의 내부 사정들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이런 철없는 소리는 목 근처까지도 올라오지 못합니다.
물론 작은 기업에도, 심지어 1인 기업에도 브랜딩은 필요합니다. '브랜딩'이라는 용어 자체가 여기서는 잘 와 닿지 않으니, 이런 말로 바꿔봅니다. '유명해지는 것' 혹은 '명성'. 해장국으로 유명한 집, 머리 잘 자르기로 유명한 원장님은 손님을 모읍니다. 어떤 기업에서든 무언가 그 기업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것, 거기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함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없다면 만들어야 하고, 있는데 잘 모른다면 그 점을 부각해 마케팅을 해야 합니다. 몇 천만 원짜리 아이덴티티 가이드나 브랜드 네임보다, 지금 당장 기업을 찾아오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아 인지시키는 게 훨씬 현실적입니다. 힘을 잔뜩 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그 조직답게, 자유롭게 만들어가면 됩니다.
플랜브로가 실행까지 하는 컨설팅, 오히려 마케팅 대행에 가까운 컨설팅을 하는 이유는 클라이언트들과 함께 그들이 유명해질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가기 위함입니다. 매일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르는 분들에게 한 순간의 결과물을 툭 던지는 컨설팅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브랜드는 인간의 성격 형성 과정과 비슷합니다. 오늘부터 까칠한 사람, 내일부터 친절한 사람이 없듯, 하루하루 그들이 쌓아가고 고민하는 무언가가 적어도 몇 년은 쌓여 '브랜드'가 됩니다. 술 한 잔 사주고 싶은 유쾌한 동생들이 되어 그분들의 명성을 쌓을 고민들을 함께 해나가는 것. 플랜브로의 하루하루는 이렇게 쌓여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