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레퍼런스 선정과 기획
작은 규모의 외주 작업을 의뢰하다 보면, 많은 디자이너분들이 '레퍼런스'를 달라고 합니다. 기획서를 함께 달라는 분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드려도 제대로 읽어보시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대기업 경력,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나열한 프리랜서 분들과 일해도 대부분 똑같습니다. 진짜 디자이너의 실력은 여기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발주된 프로젝트의 전체를 훑어보고, 거기서 내가 하는 디자인의 역할과 이유를 고민하는 디자이너. 거기에 자신의 감각으로 센스 있는 기획을 추가해 제안하는 디자이너. 경력이나 포트폴리오가 부족해도, 이런 디자이너에게 일을 맡기면 후회할 일이 적습니다.
물론 이런 디자이너는 몸값이 높아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에서는 구하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 이제 발주하는 클라이언트, 우리가 바뀌어야 합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땐, 내 브랜드와 제품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기반으로 그 프로젝트의 목적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게 첫 번째입니다. 그런 다음, 나와 비슷한 '목적'을 이루려고 했던 레퍼런스들을 찾습니다. 이때 산업군이나 제품군 등의 고려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한 카테고리 내에서, 지금 우리 기업과 비슷한 목적을 가진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사례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최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여러 분야를 넘나들면서 아이디어를 얻어야 진짜 새로운 시도가 나옵니다.
스티브 잡스가 리테일 전문가들에게 물은 것은 오직 하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고객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 어디인가?'였다. 분야는 상관없었다. 그렇게 꼽힌 곳이 포시즌즈 호텔이었고, 초기 애플스토어는 철저히 이 호텔을 벤치마킹해 만들어졌다. 애플스토어에 계산대 대신 컨시어지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책 '공간은 경험이다' 중에서)
미국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높은 수익을 내는 리테일숍 '애플스토어'. 이곳은 전자제품 매장을 레퍼런스로 보고 만들지 않았습니다. '애플을 경험하게 하겠다'는 일의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을 이룬 호텔의 레퍼런스를 참고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담았습니다. 이렇게 목적을 명확히 하고, 이에 기반한 레퍼런스를 찾은 뒤에는 반드시 내 브랜드만의 색깔을 담아 기획에 추가합니다.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상황에 놓이는 두 기업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레퍼런스를 찾았더라도, 그대로 따라하는 건 안됩니다. 우리 상황에 딱 맞는 포인트와 콘셉트가 담긴 아이디어를 추가해야 합니다. 기업이 어딘가를 흉내내기만 하는데서 그치면, 그걸 보는 소비자들도 그 기업을 따라쟁이로 볼뿐입니다.
레퍼런스는 '목적'에 의해서 찾고, 기획에는 내 상황과 색깔을 담습니다. 그래야 사고의 유연성과 브레인스토밍 능력도 늡니다. 본인이 보기에 '이뻐 보이고', '멋져 보이는' 걸 던져주고 이거랑 비슷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 디자이너는 딱 그거만 해줍니다. 이 수준의 클라이언트는 대부분 그거면 만족하고, 본인들도 가장 쉽게, 빠르게 작업을 쳐내서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외주를 줬던 작업물이 쌓여 있다면, 시기별로 쭉 나열해보세요. 거기에 내 브랜드가 하는 말들이 안 보이고 한 개인의 취향 변천사만 보인다면, 일하는 방식을 바꿀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