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소비자가 되어 우리 제품의 가능성을 엿보는 방법
"펀딩 많이 해보셨으니까... 우리 제품은 얼마나 될 것 같으세요?"
미팅이 거의 끝나갈 때쯤 기대감 가득한 눈빛과 함께 자주 들어오는 질문입니다. 저는 속마음을 억누르고, 매번 같은 답변을 드립니다. "소비자들한테 던져보기 전까지는 저도 예측하기가 어렵네요." 솔직히 제품을 보면 어느 정도 판단이 서긴 합니다. 그래도 함부로 말을 꺼내지 않는 이유는, 미팅하는 그 순간의 제가 소비자가 아닌 비즈니스 파트너이기 때문입니다.
이 제품이 되겠다 혹은 어렵겠다 싶은 처음의 생각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는 시기가 있습니다. 프로젝트 착수 후 제가 똑똑한 소비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제품 카테고리에 대해 꼼꼼하게 공부하고, 다른 대안들과 비교하면서 합리적으로 돈을 쓰려는 소비자가 되어보면, 대략적인 성과 예측은 물론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제품과 시장은 우리가 제일 잘 안다는 생각을 잠시 접어둡니다.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제품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펀딩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든 마케팅 프로젝트 시작 전 거쳐야 할 과정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20만원대 무선청소기' 제품을 출시하려는 업체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1. 쇼핑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지금 무선청소기가 필요한 소비자입니다. 유튜브가 대세라지만, 처음엔 더 빠르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네이버를 먼저 켭니다. 선이 없는 걸 사려고 이미 마음먹었기 때문에 '청소기' 보다는 '무선청소기'라고 검색해봅니다. 파워링크 광고를 지나쳐 네이버쇼핑 페이지를 보니, 대기업 제품들은 가격이 지나치게 높습니다. 40만원 이하 가격대로 필터를 걸고, 너무 저렴해서 신뢰가 안 가는 10만원 미만 가격대 제품은 패스합니다.
178,000원의 '디베아 차이슨' 제품이 눈에 들어오네요. 이 제품으로 시작해 비슷한 가격대로 상위 노출되어있는 4~5개의 제품을 살펴봅니다. 상세페이지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흡입력 / UV 살균 / 물걸레 키트 / 추가 구성 (침구, 틈새용) / 배터리 (오래 쓸 수 있어요) / 무게 (손목이 덜 아파요) / 소음 / 거치대 / 헤파필터 / 디자인 / 품질 및 AS 등 어느 정도 기준점이 생겼습니다.
일반 소비자는 거의 하지 않는 행동이긴 하지만, 저는 극도로 꼼꼼한 소비자라는 설정에 따라 위 항목들로 비교표를 만들어봅니다. 세로축에는 기준점들을 넣고, 가로축에는 브랜드를 넣습니다. 표를 채울 땐 잠시 마케터로 돌아와 우리 브랜드 제품도 맨 오른쪽에 끼워 넣어 보세요. 펀딩을 준비한다면, 네이버뿐 아니라 와디즈에 있는 제품들도 표에 포함시킵니다.
2. 설득 포인트를 찾습니다.
제품을 산 다른 소비자의 말도 한 번 들어봅니다. 상세페이지는 기업의 말이고, 리뷰는 소비자의 말입니다. 기업의 말에 거짓은 없는지, 어떤 말에 설득이 되어서 샀는지, 제품의 장점이 실생활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더 똑똑한 소비자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요즘엔 이벤트 상품으로 리뷰를 의도하거나, 비용을 들여 가짜 리뷰를 생성하는 업체도 있습니다. 무조건 리뷰만 믿는다면 똑똑한 소비자라고 할 수 없죠. 정보 습득 채널을 유튜브로 옮겨봅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노하우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똑똑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유튜브를 하죠.
네이버가 아닌 다른 플랫폼의 정보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나와나 노써치 등의 가격 비교 플랫폼에서는 각종 제품을 합리적으로 고르는 방법에 대한 콘텐츠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혼자 상세페이지들을 보면서 알기 어려웠던 흡입력 관련 용어들이나, 여러 기준점 중 나에게 필요한 기준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구매 후보군이 좁혀집니다.
4. 어디서 살지 결정합니다.
정보 습득을 통해 브랜드 후보군이 좁혀지면, 이제 배송과 가격을 따져볼 시간입니다. 이때부터는 검색어가 그 브랜드 검색어로 바뀌게 되겠죠. 무선청소기의 경우 쿠팡, 오늘의집, 네이버 정도에서 검색해보면 최저가나 각 판매 채널별 혜택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오픈마켓의 우수 회원이라면 거기서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여기서 기존의 판단을 다 뒤집을만한 새로운 제품을 우연히 광고로 발견하지 않는 이상, 가격과 자신의 포인트 혜택, 배송 조건 등을 고려해 구매를 하게 됩니다.
5. 다시 마케터로 돌아옵니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우리 제품을 다시 돌아봅니다. 같은 가격의 대안에 비해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라면 성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죠. 다른 대안들에 비해 1~2가지가 압도적으로 좋거나, 다른 대안에는 아예 없는 새로운 기능이 있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게 소비자 리뷰에서 언급된 기존 베스트셀러 제품들의 단점이라면 더욱 가능성이 높아지죠.
그 외 사진이나 GIF를 통해 강렬한 시각적 임팩트를 줄 수 있는가, 특정 상황에 처한 소비자에게는 1순위 선택지가 될 수 있는 항목이 있는가, 우리의 제품 기획 의도와 잘 맞는 구매 기준점을 가진 유명 인플루언서가 있는가, 베스트셀러 제품의 트래픽을 이용할 수 있는 구좌를 제공하는 협업 플랫폼이 있는가 등이 성과의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체크 항목들입니다.
글의 길이 압박 때문에 모든 걸 적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만 다시 돌아봐도 우리 제품의 가능성과 판매전략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사업가와 마케터는 일과 일상을 딱 잘라 구분하면 안됩니다. 일하는 순간에 소비자가 되어보고, 실제 소비자인 순간에도 일에 대한 영감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