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때로는고객이 됩니다.
모든 마케팅은 '고객의 관점'으로 생각하는데서 시작됩니다. 고객이 어떤 게 불편한지, 고객이 왜 이걸 필요로 하는지, 많은 브랜드 중에 왜 하필 저 브랜드를 골랐을지 궁금해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죠. 하지만 이런 접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고객은 '남'이거든요. 남의 생각과 동기를 세세하게 파고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반면 관찰하기 좀 더 편안한 고객도 있습니다. 거의 매일 하루도 빠짐 없이 어딘가에 돈을 쓰는 사람, 다른 고객과 거의 흡사한 방식으로 쇼핑하는 사람. 바로 '나'죠. 고객도 소비를 하고 나도 소비를 합니다. 나를 분석하는 게 곧 고객을 분석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물건을 사본 기억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세요. 제 경험을 예로 들어볼까요? 얼마 전에 실내 바이크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운동을 자주 못 간 것도 있었고, 늦게까지 일하고 나면 헬스장에 가기도 부담스러웠거든요. 집에서라도 운동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뭔가를 사야겠다 싶으면 가장 먼저 네이버에 들어갑니다. 유튜브가 포털의 역할도 대체하고 있다고 하지만, 영상은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네이버 쇼핑에 '실내 바이크'를 검색하면 어떤 제품이 많이 팔리는지, 이 제품을 만드는 유명한 브랜드들은 뭐가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여러 상세페이지를 좀 보다 보니까 리뷰 파트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직업이 마케터라 그런지 부정적인 게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소음이 너무 심해서 아래층이랑 싸웠다'는 얘기부터 '뭐 이렇게 쉽게 부러지냐'는 불평, 'AS가 엉망'이라며 당장 연락하라는 불호령까지... 역시 소비자는 무섭습니다. 반면 조립이 쉽고, 접어서 보관할 수 있어 공간 차지가 적고, 실내에 두어도 인테리어를 망치지 않을 만큼 예쁘다는 좋은 평들도 보입니다. 이렇게 정보들을 한 번 훑어보니 나름 기준점이 생깁니다. 이 상태에서 유튜브를 켰죠.
유튜브에 '실내 바이크 추천'이라고 검색해보면, 실제 제품을 사용해보고 리뷰하는 콘텐츠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 게시물 중 조회수가 많은 영상을 1.5배속으로 돌려봅니다. 제 머릿속에 나름의 기준으로 정리된 제품들의 실제 사용기들, 전문가의 추천을 듣다 보니 후보군이 두 가지 정도로 줄어듭니다. 가격대가 좀 있는 제품들은 공식 스토어에서 구매하려고 하는 편이라 딱 두 개 브랜드만 추려서 검색해보고, 그중 스토어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첫 구매 고객에게 큰 혜택을 주는 브랜드에서 구매를 했습니다. 리뷰 이벤트에도 참여해서 간단하게 리뷰를 남겼고, 제품에 만족스러워 제 친구 여러 명에게 추천도 해주었습니다.
제품을 구매할 때 내가 하는 행동은 다른 사람도 비슷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처음 구매를 고려하게 된 상황, 구매를 위해 제일 먼저 열었던 앱, 찾았던 키워드, 검색 시에 나타나는 노출 화면, 제품의 상세페이지, 고객 리뷰, 스토어 디자인, 이벤트 설계, 유튜브 콘텐츠까지. 아마 제가 구매한 브랜드의 마케터는 이런 분야들에 관여했을 겁니다. 제품이 좋아 이 중 몇 가지는 저절로 생겼을 테니 마케터는 짐을 덜 수 있었겠네요.
실내 바이크의 한 예일뿐, 제품마다 고객의 구매 경로는 달라집니다. 같은 제품이어도 사람마다 또 달라질 수 있겠죠. 아마 누군가는 제 추천을 통해 위 과정을 하나도 거치지 않고 구매할 겁니다.
그 제품이 왜 필요했나요?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어떤 행동을 했나요?
정보 탐색 중에 생긴 선택의 기준이 있나요?
그래서 어떤 브랜드 / 어떤 제품을 선택했나요?
왜 그걸 선택했죠?
써보니까 만족스러웠던 부분이 뭐였나요?
또 사거나, 지인에게 추천할 의향이 있나요?
마케터도 일상에서는 고객입니다. 자신이 어딘가에 돈을 쓸 때 했던 생각과 행동들을 정리해보면 고객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더 풍성하게 그려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