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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랜브로 박상훈 Jun 26. 2022

공급이 넘치는 시대에는 어떤 것들이 팔릴까?

고객이 '진짜'라고 느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

여러분은 요즘 어떤 곳에 소비를 하시나요? 가장 최근에 했던 만족스러운 소비는 어떤 것이었나요? 


최근에 주말마다 방문하게 된 집 근처 카페가 있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5,000원, 시그니처 음료인 라떼는 7,000원. 음료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닙니다. 맛 역시 보통 이상이긴 하지만 요즘 카페들의 상향 평준화된 수준을 고려했을 때 탁월한 정도는 아니죠. 


그럼에도 저는 매주 이곳을 방문합니다. '진짜'인 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치열한 고민들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공간 구성부터 좀 특이합니다. 매장의 3분의 1 정도 되는 공간에는 거대한 노트북 전용 원목 책상이 있습니다. 책상에 앉으면 앞 쪽 통창으로 탁 트인 공원 전망이 펼쳐집니다. '주말에도 업무를 봐야 하는데 사무실은 가기 싫은' 저 같은 고객이나 '주말만은 색다른 분위기에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딱 맞는 공간입니다. 남은 3분의 2 정도 되는 공간에는 밝은 색상의 널찍한 소파와 테이블들이 널려 있습니다. 2층에는 햇빛을 받으며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야외 테라스도 있죠. 편안하게 반쯤 누워 대화를 나누거나 강아지와 함께 여유를 즐기는 '젊은 부부'들을 매주 볼 수 있습니다. 신도시에 주로 거주하는 고객층 중 누가 와도 만족할 수 있는 공간 구성입니다. 


고객을 응대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자리가 다 차있을 때 새로운 손님이 오면 직원들이 문 앞으로 나가 고객을 응대합니다. 어떤 자리를 선호하는지 묻고, 자리가 나면 간단한 청소 후 온 순서대로 안내합니다. 음료를 주문했는데 자리가 없어 매장을 두리번거리는 손님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누가 일어나면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고 달려드는 불편한 상황을 마주할 일도 없습니다. 계절이 아닌 그날그날 날씨에 따른 세심한 온도 조절, 적당한 음악 볼륨에서도 일관된 메시지가 느껴집니다. '우리는 어떤 카페입니다'라고 어디에도 쓰여있지 않지만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지 충분히 느껴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음료 가격을 올리더라도 이 카페의 인기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이 충분히 수긍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물건과 서비스가 넘쳐나는 시대의 사람들은 '적당히 괜찮은 것'에 소비하지 않습니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내 주변 500미터 안의 별점 5점 식당들을 음식의 종류별로 찾을 수 있습니다. 굳이 '그저 그런 식당'에 들어가 한 끼를 낭비할 필요가 없죠. 1분만 투자하면 지금 내게 필요한 물건을 가장 많이 팔고 있는 브랜드, 가장 평점이 높은 제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굳이 '1등을 따라 급하게 만든 제품'을 구매하는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별점, 판매량 같은 데이터는 '시간'과 함께 쌓입니다. 아마 그 시간 동안 창업가는 다양한 고객과 직접 부딪히며 고민을 거듭했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감동시킬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지요. 그 고민의 총량이 사람들을 감동시킬 정도의 수준이 되어 지금의 지위와 보상을 얻을 수 있었던 겁니다. 


반드시 평점이나 리뷰 데이터가 있어야만 잘 팔리는 건 아닙니다. 출시된 지 몇일만에 완판을 기록하거나 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하다가 갑자기 뜨는 브랜드들도 있습니다. 창업가가 쌓아온 고민의 깊이가 어떤 수준에 도달해 누군가에 의해 '발견된' 브랜드들이 그렇습니다. 단지 바비큐가 좋아서 몇 년간 지인들에게 대접해오던 것이 유명 기업 회장에 의해 발견되어 업으로 진화합니다. 좋은 마스크 필터를 위해 꾸준히 연구를 거듭해오던 브랜드가 코로나 시국에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대박이 납니다. 이런 브랜드에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돈을 지불합니다. 의도가 선한, 그리고 긴 시간의 진지한 고민이 축적된 결과물이 더 큰 감동을 줄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겁니다. 만족스럽지 못한 소비 경험 속에는 대부분 자극적인 마케팅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거든요. 구매 충동을 일으키기 위해 심리를 자극하는 얕은 기법들에 점점 거부반응이 쌓일 겁니다. 잘 생각해보면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됐던 비포 애프터 사진, 과한 설정의 각종 성능 테스트 영상, 다 같이 힘을 모아 만든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속여 '100억 매출을 만든' 같은 키워드로 무장한 강사들의 실속 없는 강의들. 이런 자극들에 지칠수록 시간과 고민이 축적된 '진짜'를 발견해 거기에 돈을 쓰고 싶은 고객들의 마음은 더 커져갈 겁니다. 


'진짜'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업자가 직접 일과 부딪히며 경험치를 축적하는 것뿐입니다. 고민의 총량을 꾸준히 늘려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제품과 서비스가 좋다고 떠들지 않아도 사람들이 창업자의 노력과 내공을 먼저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감동하는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아무리 고민을 축적해도 그 수준까지 못 오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방법이 유일하다면 적어도 지금 당장 어디에 힘을 쏟아야 할지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누가 했던 대박 난 방법'에 기대 급하게 성과를 올리려고 하기보다 스스로 깊어지는데 힘써야 합니다. 고민을 거듭해 만들어낸 결과물이 충분히 익으면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 발견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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