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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랜브로 박상훈 Aug 20. 2022

마케터의 스터디

독창적인 브랜드 전략을 구축하는 방법

마케터는 항상 공부를 합니다. 주로 고객과 그 고객에게 팔아야 할 제품에 대해서 공부하죠. '그게 뭐 어렵나?' 싶을 수 있지만, 이 두 가지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다양한 기초체력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심리, 욕망, 글쓰기, 브랜드, 시장 트렌드, 미디어 매체, 미적 감각, 가설 수립과 검증, 비즈니스 인사이트 등 마케터가 갈고닦아야 할 지식과 기술에는 끝이 없죠. 마케터들이 쏟아내는 다양한 결과물(브랜드 메시지, 고객 경험 설계, 상세페이지, 프로모션 기획, 광고 등)은 모두 마케터의 스터디를 기반으로 만들어집니다. 스터디가 어떤 방향성과 깊이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그 결과물의 깊이도 달라집니다. 


마케터의 스터디는 '메시지를 날카롭게 다듬는 과정'입니다. 긴 시간을 투자하는 스터디의 목적은 고객에게 제품을 권할 때 건넬 '나만의 메시지'를 찾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좋은 레퍼런스를 몇 개 찾아보는 게 스터디가 아닙니다. 내 메시지가 없는 상태에서의 레퍼런스 탐색은 그냥 '감탄'에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와 이거 진짜 잘했다..." 하며 시간만 보내게 되죠. 남의 생각을 참고하기 전에 내 제품과 내 고객을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 리서치를 통해 알아낸 사실들에 기반해 고객, 제품, 브랜드를 나만의 언어로 '재정의'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레퍼런스를 봐도 취해야 할 점과 버려야 할 점이 구분되어 보입니다. 무작정 성공 사례를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내 생각과 메시지를 선명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요소만 선별해서 취하게 됩니다. 글도 고쳐 쓸수록 좋아지듯 재정의도 거듭될수록 좋아집니다. 마케터만의 생각이 겹겹이 쌓여갈수록 메시지는 점점 더 무게감이 생기고, 브랜드의 색깔도 점점 더 진해집니다. 


물론 브랜드의 정체성과 메시지는 제품을 만드는 '창업가(대표)'로부터 나오는 게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걸 날카롭게 다듬는 게 마케터의 역할이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창업가가 이런 메시지를 품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렴풋이 생각은 하고 있더라도 명확한 언어로 다듬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땐 마케터 스스로가 브랜드의 주인이 되어 메시지를 직접 도출해야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3가지(고객, 제품, 브랜드)를 재정의하는 과정을 거쳐서요. 




[가상 사례] '1인 가구'를 타깃으로 하는 가구 기업에서 '미니멀한 디자인'을 강점으로 내세운 업무용 의자 브랜드를 새롭게 출시했다면, 고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할까? 



1. 고객의 문제 재정의 


표면적인 타깃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1인 가구는 보통 20~30대가 많고, 서울이나 경기 지역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 리서치를 조금만 해보면 이들의 평균 소득이나 소비 패턴도 대략적으로는 파악할 수 있죠. 하지만 이런 인구통계학적 특성으로는 우리 고객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보편적으로 정의한 고객은 보편적인 선택을 합니다. 1등 브랜드의 1등 제품을 삽니다. 가장 안전하고 찾기 쉬우니까요. 신생 브랜드는 이렇게 고객을 정의하면 안 됩니다. 범위를 더 좁혀야 합니다.


평소 구매 결정에 반영되는 취향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 

그 이상을 가로막는 불편한 경험 

지금 나와있는 대안들에 대한 생각 

이 제품군에 대한 지식수준

주요 정보 습득 채널 

이 제품을 사야 하는 이유 및 상황 


이런 항목들에 대한 답을 하나하나 채워가면 고객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우리는 지금 '메시지'를 찾고 있습니다. 친한 친구와의 대화가 생판 모르는 남과의 대화보다 더 편한 이유는 내가 친구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 모르는 고객을 친구만큼 잘 아는 사이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고객의 숨은 문제가 보이고, 무슨 말을 걸지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요즘은 겉으로 드러나는 결핍을 겪고 있는 고객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들이 다른 대안들을 통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발견해야 그들에게 전할 우리만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집의 평수가 넓지 않아 작은 크기, 미니멀한 디자인을 가구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

이사를 자주 다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들'로만 아기자기하게 채운 나만의 따뜻한 공간을 선호

사무용 의자는 대부분 투박하고, 무겁고, 크기가 커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집 어디에 두어도 거슬림

시디즈, 듀오백 등의 브랜드는 편하긴 하지만 가격이 애매하게 비싼 편

다양한 의자를 직접 경험해보면서 '좋은 의자'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생김 (모양, 바퀴, 높낮이 등) 

제품 상세페이지, 유튜버의 전문성 있는 리뷰, 친구들의 추천 등 

코로나 유행으로 집에서 근무할 시간이 늘어 홈 오피스를 꾸미고 싶지만, 내 집도 아니고 공간도 크지 않기 때문에 의자 정도만 새로 구비해서 기존 테이블과 함께 사용할 예정 


'1인 가구에 사는 20~30대' 같은 고객보다는 훨씬 친근해졌습니다. 사람마다 표현은 달리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이런 문제를 겪고 있다고 정의해볼 수 있겠네요. '10평 이내의 내 공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편안한 사무용 의자의 부재.' 고객의 문제를 찾았으니, 이제 우리 제품을 다시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2. 우리 제품의 재정의 


우리가 파는 제품이 업무용 의자인 건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우리 제품의 소구 포인트도 이미지와 함께 글로 제시하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시키는 것을 넘어 그들에게 꽂히는 제품이 되려면 똑같은 말도 '그들이 듣고 싶은' 형태로 해줘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크게 움직이니까요. 


1번의 과정에서 우리 타깃 고객의 문제가 '10평 이내의 내 공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편안한 사무용 의자의 부재'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고객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시디즈 같은 선두 브랜드가 내세우는 '통증 완화'나 '무상 A/S 5년' 같은 말로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작은 공간과 어울리지 못했던 투박한 업무용 의자의 요소들이 사라진 제품임을 더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하죠. 


좁은 1인 책상이나 원형 테이블 밑으로도 쏙 들어가는 작은 크기 

앉은 자세의 몸에 핏 하게 맞춘 편안한 구조 설계와 분리 후 새로운 제품으로 교체 가능한 좌판 

원룸 인테리어 베스트셀러인 카페형 테이블들과도 잘 어울리는 심플한 디자인

이사를 가더라도 혼자서 들고 이동할 수 있는 가볍고 견고한 소재

층간소음 걱정 없는 부드러운 휠 

깔끔한 인테리어에 가장 많이 쓰이는 3가지 베이직 컬러


우리 제품은 이런 요소들에 더해 고객이 얻고자 하는 최상위 혜택인 업무 효율성까지 높여주는 의자여야 합니다. 이런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을 찾아 우리 제품을 짧게 재정의 해봅니다. 


'작은 공간에서의 아늑한 몰입을 도와줄 의자' 


구글에 '아늑한'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사진들을 레퍼런스 삼아 우리만의 '몰입' 이미지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함께 스쳐갑니다. 


구글 검색 화면 캡처



3. 메신저 재정의 


메신저는 메시지가 담긴 제품을 파는 브랜드를 의미합니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다룬 책 '픽사 스토리텔링'에 따르면 성공하는 브랜드는 늘 고객을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합니다. 주인공이 되려는 브랜드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기업의 이야기 속 주인공은 언제나 고객이어야 합니다. 


조력자의 역할은 단순히 주인공에게 무기(제품)를 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하고 끝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옆에서 지속적으로 도와주죠.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품을 판매할 때만 나타나는 브랜드는 조력자가 아니라 장사꾼입니다. 고객이 멋진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고객의 일상에 더 자주 등장해 그들을 성공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아늑한 몰입을 돕는 조력자(메신저)는 어떤 사람일까요? 아마 그 역시 자신의 공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일 겁니다. 작은 공간을 밀도 있게 꾸밀 줄 알고, 그 공간에서의 몰입을 통해 성취를 이룬 경험이 있는 사람이겠죠. 이렇게 조력자의 능력을 하나씩 정의하다 보면, 그가 할만한 말들이나 조언들이 떠오릅니다. 그걸 마케팅에 적용하면 우리만의 브랜드 운영 전략이 세워지는 거죠. 


인스타그램에는 이 의자를 사용하고 있는 고객들이 집중해 업무를 하는 뒷모습 사진을 받아 올려보면 어떨까? 얼굴 노출이 되지 않으니 고객들도 부담 없이 사진을 제공할 수 있고, 의자의 디자인이 돋보여 뭔가 새로운 느낌을 주지 않을까? 

블로그에는 효율적인 정리를 돕는 수납 꿀팁이나, 책상 꾸미는 법 등의 정보를 전달해보자. 좁은 공간일수록 정리가 잘 되어있어야 업무에도 더 잘 몰입할 수 있을 테니까.

이벤트를 연다면 선물로는 원룸에 어울릴만한 인테리어 아이템이 좋겠어. 아로마테라피 브랜드와 협업해서 '몰입 후의 휴식'을 이벤트 테마로 잡고 휴식을 위한 아이템을 함께 선물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몰입을 돕는 백색소음을 만들어 배포해 '몰입'의 이미지를 더 강화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 브랜드만의 백색소음을 만든다면 좀 더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도록 '장작 태우는 소리'를 직접 녹음해보면 좋을 것 같아.




독창적인 결과물은 남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을 거쳐 나옵니다. 무작정 '우수 레퍼런스'나 '레퍼런스 분석글'을 찾아 읽기보다, 내 제품을 내 언어로 재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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