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 기록

반려견과 '눈 맞추고' 있나요?

하라 켄야의 디터널

by 플랜브로 박상훈

집에 반려견이 있는 분이라면, 내 반려견의 집을 떠올려보세요. 보금자리에 편안하게 엎드린 반려견이 보는 풍경은 어떤 풍경일까요? 직접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눈을 위로 치켜뜨지 않는 이상 ‘다리’가 보일 것 같습니다. 내 보호자님의 다리, 소파나 의자의 다리, 탁자의 다리들이요. 우리는 전망 좋은 집에서 한강 다리를 보며 살고 싶어 합니다. 내 반려견에게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좀 더 좋은 전망을 보며 쉬게 할 수는 없을까요? 한강뷰 집을 사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한 방법으로요.


디터널.JPG 일본 디자이너 하라 켄야가 2012년 선보인 D-Tunnel , 출처 : http://architecturefordogs.com/architectures/kenya-hara/


일본의 무인양품(MUJI)의 디자이너로 유명한 하라 켄야는 2012년 본인이 주최한 ‘개를 위한 건축(Achitecture for dog)’에서 디 터널(D-Tunnel)이라는 작품을 출시합니다. 집이라기보다는 의자에 가까운데, 가장 큰 특징은 터널 안에 나 있는 ‘계단’입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계단의 평균 높이는 15cm. 하지만 이 작품 안에서의 계단은 9.8cm에 불과합니다. 크기가 작은 편에 속하는 '티컵 푸들'도 거뜬히 올라갈 수 있는 높이입니다. 깡충깡충 뛰어올라 자리를 잡고 앉으면, 고개를 치켜들지 않아도 보호자와 눈을 맞출 수 있습니다. 제품의 외관 디자인도 신경 썼지만, 실제 사용할 사용견(?)의 시야를 디자인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With this product, my focus was a scale that achieves equilibrium.



우리는 인간의 신체 규격에 맞게 설계된 세상을 살아갑니다. 어느 건물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문’을 예로 들어볼까요? 문의 손잡이는 일반적으로 성인의 허리 높이에 위치합니다. 성인이 적당한 힘으로 밀면 열 수 있을 정도로 묵직합니다. 회전문의 도는 속도 역시 일반적인 걸음걸이로 들어갔을 때 무난히 지나갈 수 있는 속도입니다. 자동문의 센서도 성인 기준입니다. 종종 어린아이가 문 앞에서 점프하거나 손을 높이 흔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죠. 물론, 반려견들은 점프해도 안 열립니다.


디터널 2.JPG 일본 디자이너 하라 켄야가 2012년 선보인 D-Tunnel , 출처 : http://architecturefordogs.com/architectures/kenya-hara/


하라 켄야는 이런 인간 중심의 세상 속에서 사는 반려견의 ‘시선’에 집중했습니다. 반려동물이 보는 세상에는 눈을 치켜뜨거나 위로 올려다봐야 하는 것 투성입니다. 잠시 인간의 관점에서 벗어나 반려견 입장에서 보는 시선과 생활을 고민했고, 집 안에서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보호자와 눈을 맞추며 쉴 수 있도록 하는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도면을 무료로 배포해 보호자들이 직접 만들고, 이를 공유하도록 유도합니다. 일본 디자인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다운 큰 그림입니다.


6년이 흐른 지금, 우리 반려동물 시장에는 어떤 집들이 나와있나요? 겉모습이 예쁜 집은 '우리가 보기에 좋은 집'입니다. 우리도 이제 '반려견이 보기 좋은 집'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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