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 기록

'대안'이 아니라 '배려'가 필요합니다.

이원의 브래들리 타임피스 이야기

by 플랜브로 박상훈
‘주제는 청각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축제야.’


대학 시절, 제가 아끼는 후배가 자신이 기획한 보고서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후배는 한 대기업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참여 중이었고, 발표와 면접을 앞두고 저에게 피드백을 요청했습니다. ‘음악을 시각화한 음악 분수’, ‘플래시몹을 통한 수화 율동’ 등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가득한 것도 좋았지만, 가장 제 눈길을 끈 건 ‘비장애인과 함께 즐긴다’는 포인트였습니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차별이나 편견 없이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요소들이 녹아 있었고, 저는 이 부분에 마음이 움직인다고 솔직하게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최종 합격했고, 해외 탐방과 인턴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솔직히 피드백을 주다가 제가 더 많이 배웠습니다. 흔히 우리는 ‘장애인들을 위한 무엇’이 있으면 장애인 분들이 그걸 많이 사용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 역시 일차원적인 게 많습니다. ‘청각장애인 분들께는 시각이나 촉각을 사용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정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끔 잊는 게 있는데, 그분들도 저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이 분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중요합니다. 장애인 분들을 위한 진짜 배려는 장애인’만’을 위한 무언가를 만들지 않는데서 시작됩니다. 모두가 함께 사용해서, 그분들께 시선이 집중되지 않게요.



2.JPG 모두를 위한 시계를 만드는 '이원'의 브래들리 타임피스


2013년 킥스타터라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등장한 한 시계가 이런 배려를 잘 보여줍니다. ‘브래들리 타임피스’라는 시계입니다. 시각장애인 분들을 위해 만든 시계인데, 비장애인이 더 많이 샀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두 개의 구슬을 통해 시간을 ‘만져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시각장애인 분들을 위한 시계는 시간을 ‘들려’ 줍니다. 소리가 들리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겠죠. 앞을 보지 못하시는 분에게도 그건 썩 달가운 일이 아닐 겁니다. 더군다나 도서관과 같은 공공장소에서는 더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이 시계는 ‘만져서 보는’ 시계이기 때문에 이런 걱정이 줄어듭니다. 영화관 내에서나 소개팅 자리, 회의시간에 몰래 시계를 볼 수 있으니 비장애인에게도 충분히 실용성이 있습니다.


3.jpg 시각장애인에게도 '스타일'은 중요하다는 생각을 담은 브래들리 타임피스.


디자인도 매력적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디자인에 담긴 ‘이야기’가 매력적입니다. 시각장애인 분들에게도 패션은 중요합니다. 실제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각장애인 분들은 ‘기능’보다 ‘디자인’에 관한 질문을 더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앞을 볼 수 없는 분들에게도 보이는 건 중요하다는 생각. 그 생각을 제품에 담고, 이름에 담아 출시했으니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순한 ‘대안’이 아닌, 깊이 있는 ‘배려’가 주는 묵직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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