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 기록

서울, 안 와도 됩니다

책은 도끼다 (2)

by 플랜브로 박상훈

한국에서 자란 평범한 사람이라면, 나와 다른 지방에서 자란 친구를 처음 만나는 곳은 '대학'입니다. 저 역시 대학시절 서울이나 경기 이외의 먼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을 처음 사귀게 되었습니다. 영주, 창원, 순천 등 전국 다양한 곳에서 올라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울'이라는 곳에 자리 잡고 싶어 하는 집념 같은 걸 가끔 느낍니다. 제가 자주 '나는 여유가 좀 생기면 서울 말고 다른 곳에서도 살아보고 싶어. 지방이든, 해외든.'이라고 말하면, '난 무조건 서울. 나이가 들어도 계속 여기서 살 거야.'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아주 단호하게요.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됐지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1년간 지방을 돌며 그 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했던 교육 프로그램들 덕분입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끼리 너네 동네에 크리스피가 있네 없네, 백화점이 있네 없네로 자부심 대결하는 거 들어보신 적 있나요? 직접 가서 머물러보시면, 그 논쟁의 이유를 아주 잘 알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읍내'에 나가야 볼 수 있는 카페, 공공기관 건물 주변으로 음식점과 빵집, 약국들이 모여 형성된 '나름' 번화가. 우리가 아는 유명 관광지를 제외하면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한 환경에서 서울의 아이들과 똑같은 아이들이 살아갑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세상을 보는 아이들이요. 서울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여기서는 '더 좋은 동네'의 판단의 기준이 될 만큼 특별합니다. CGV나 스타필드, 스타벅스가 생기면 '탈읍내'가 되는 거죠. 직접 다녀보고 머물러보니, 이 친구들이 서울로 올라오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서울로 올 수 있는 방법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공부하는 방법, 수시를 준비하는 방법, 스스로에 대해 동기를 주는 방법 같은 것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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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비극은 모두가 서울을 동경하는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가까운 일본만 해도 각 도시마다 자부심이 있어서 다른 도시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필라델피아, 오사카, 알바니, 아를, 전부 자기들이 중심에 있고 그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은 유독 모두가 서울을 봐야 해요. 서울이 아니면 중심에 있지 않은 것이고, 다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수원이면 수원으로서 온전히 행복하고, 진천이면 진천으로 행복하다면, 거기서 자기 일을 충분히 이룰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행복할 텐데요.


이 문장을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다른 걸 가르쳐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서울에 올라와야만 꿈의 크기가 커지는 걸까요? 물론 서울에 와서 더 좋은 기회와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입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든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든 결국 또 취업을 위해 경쟁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 경쟁합니다. 아예 없지는 않지만, 자신의 삶에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오히려 서울이 더 적은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오고 싶어 하는 곳인데, 덜 행복한 곳입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내가 태어난 그 지역만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을 키워줬어야 합니다. 물론 며칠 만에 그런 교육으로 성과를 내기는 힘들었겠지만, 훨씬 의미 있었을 겁니다. 뛰어난 친구들이 서울로 '탈출'하도록 돕는 게 아니라, 지역을 발전시켜 사람을 끌어당기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거니까요. 그럼 크리스피든 스타벅스든 거기에 다 생깁니다. 찾아올라 오는 건 수동적이지만, 내가 사는 곳에 생기게 하는 건 능동적입니다. 능동적 교육, 문제해결력. 요즘 트렌드와 맞는 교육을 해줄 수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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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울을 향해 사는 것과는 다르게, 엑상프로방스 사람들은 오히려 파리에 사는 사람들을 동정합니다. 자연의 축복을 느끼지 못하고 바쁘게만 살아가는 안쓰러운 사람들, 그게 파리지앵을 보는 그들의 시선이죠. 전형적인 지중해적 사고방식입니다.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땅에 살고 있는, 현재가 행복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지역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 그들을 돕는 기술과 제도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여나 제가 또 한 번 지방의 청소년들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이런 세미나나 프로그램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 집 5분 거리에 스타벅스 생기게 하는 방법 연구. 우리 동네 유명 관광지 만들기 프로젝트. 읍장님, 구청장님 설득 스피치/라이팅.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더 좋은 프로그램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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