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 기록

우리가 하는 연애와 사랑

책은 도끼다 (3)

by 플랜브로 박상훈

'책은 도끼다'를 다 읽은 지 좀 됐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아직 제 가방에 있습니다. 보통 책 한 권을 다 보면 바로 가방에서 꺼내 책장에 넣습니다. 예스 24에서 막 배달 온 따끈한 새 책이 제 가방에 입성하고, 저는 그 책과 또 며칠의 일상을 함께하는 식입니다. 지금 제 가방에는 얼마 전 구매한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이 들어있고, 그 등 뒤에 찰싹 붙어 '책은 도끼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가방이 무거워 힘들지만, 아직은 이 책이 제 마음에 주는 묵직함을 어디서든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새로 주문한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사실 '책은 도끼다'에서 추천한 책입니다. 아마 당분간 제가 구매할 책들의 대부분이 여기서 추천받은 책일 예정입니다. 저자인 박웅현 씨가 초반부에 밝힌, '나는 광고인이니, 내가 소개하는 책들을 여러분들이 사도록 하겠다'는 목표가 달성됐네요. 책 추천은 이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이 책 재밌으니까 읽어봐'가 아니라, 본인이 감동받은 부분을 담담하게 전하고 '나는 이런 걸 느꼈는데, 읽어보고 싶음 읽어보고'하고 툭 던지는 식으로요.


좋은 책과 생각을 소개받았으니 저도 좋은 것을 공유합니다. 인간에게는 공유의 본능이 있으니까요. 문장단위로 소개하려니 좋은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여기 소개된 책들은 앞으로 저도 읽을 테니, 책 내에서의 인용구보다는 박웅현 씨의 생각 중 제게 도끼질을 했던 부분들을 골라봤습니다. 저도 비슷한 목표를 하나 세워봅니다. 여러분들이 제 글을 읽고 이 책을 읽어보시는 것에 더해,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 분들에게 흥미로운 편집본을 제공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저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 있는 것들을 해보려는 시도 중 하나입니다.






두 가지 테마를 뽑았습니다. 하나는 3강에서 주로 다루는 '사랑', 또 하나는 4~5강에 걸쳐 다루는 '순간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사랑은 인간이라면 모두가 관심 있는 주제일 것 같아 선택했고, 순간을 사랑하는 삶은 박웅현 씨의 가치관이 가장 잘 드러난 파트임과 동시에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라 선택했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번 글에서는 '사랑'만 다루겠습니다. 인용구만 쭈욱 읽으셔도 좋습니다.


이상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매력적인 상대는 나를 좋아하지 않고, 꼭 관심이 없는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아주 쿨하고 태연해질 수 있어요. 아무런 감정이 없으니까. 그런데 상대는 그런 모습을 멋지게 보는 거죠. 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감정이 들어가서 얼굴도 빨개지고 목소리도 떨리고 말도 더듬게 돼요.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실수를 더 하게 되잖아요. 결국 애정이 없는 사람에게는 본의 아니게 나의 전 존재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좋아하는 사람에겐 자꾸 감추려고 하게 됩니다. 사랑게임에는 태연함이 요구되는데, 이 게임에서 진지한 욕망이 장애가 되는 겁니다.


남녀가 초기에 '썸'을 타기 시작하면, 더 좋아하는 쪽이 항상 지는 줄다리기가 계속됩니다. 정말 좋아하고 설레는 사람 앞에서는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매력마저 숨기게 됩니다. 편하게 먹던 밥도 같이 먹으면 포크질이 어색해지고, 카톡 하나에도 쓸데없이 신중해지다 보니 평소에 나라면 하지 않았을 말들이 튀어나갑니다. 요즘엔 카톡에 취소 기능이 생겼으니 취소를 할 수도 있겠네요. 혹시 내 주변에 유난히 메시지 취소 기능을 많이 쓰는 이성이 있다면 주목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욕을 썼다 지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도 나에게 호감이 있다면 이 모습이 순수하고 귀여워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줄다리기는 허무하게 끝나고 맙니다. 스스로 줄을 던지게 되는 겁니다. 너무 태연하고 장난스럽게 이성을 대하는 사람들이 바람둥이라고 의심받는 이유도 이런 비슷한 원리가 적용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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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정한 자아라는 것은 같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와 관계없이 안정된 동일성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높은 사람을 만나면 벌벌 떨고, 아랫사람을 만나면 오만 해지는 자아는 진정한 자아가 아니죠. 내 자아가 진정으로 있다면 내가 이 사람을 만나든 저 사람을 만나든, 사장을 만나든 직원을 만나든 다 '똑같은 나'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에 있어서는 이게 잘 안 됩니다. 유난히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큼은 내가 아닌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 중요하지 않고, 저 사람이 좋아해 줄까 가 중요해집니다. 관점이 모두 상대로 돌아서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때문에 진정한 연인들의 생각은 두서가 없고, 말은 조리가 서지 않는다고 알랭 드 보통은 말합니다.


앞부분 절반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스스로의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뒷부분 절반은 연인 앞에서의 내 모습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을 대하는 자아들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만나는 사람의 '부류'에 따라 달라지는 자아가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 생활에서의 '나'는 윗사람을 대하든 아랫사람을 대하든 비슷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다만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날 때는 '고등학교 시절의 철딱서니 없는 나'로 돌아가게 되고, 취미생활로 즐기는 축구팀을 만날 때는 '공 잘 차는데 웃긴 동생의 나'로 약간씩 변하는 거죠. 애인 앞에서는 원래의 저보다 훨씬 멋진 제 모습으로 변합니다. 잘 보이고 싶으니까요. 그러다 서서히 제 모습을 보여주는 타입인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멋있어 보이려는 나'에서 '원래의 나'로 돌아오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다음 부분을 읽으면 그 이유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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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상대에 대한 전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사랑에 빠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대상이 있으면 그 사람의 어떤 한 면을 봅니다. 말 한마디의 한 컷, 그 사람이 나에게 얘기했던 한순간만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예쁘다, 멋지다, 매력적이고 좋다고 생각한 뒤 나머지 부분은 다 상상으로 채우죠. 그 상상은 나의 욕망으로 채워집니다.


아직 서로 아는 게 많지 않은 초기에는 내가 발견한 좋은 점 10%와 90%의 상상이 상대방을 구성합니다. 그 10%조차 없으면 사귀지 않습니다. 나머지 90%는 내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이상적인 이성의 모습들로 상대방을 채웁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람의 원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더 사랑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망을 합니다. 그러면 사소한 다툼이 많아지고, 헤어지게 됩니다. 나에 대한 상대방의 90% 상상이 온전히 나의 모습으로 바뀌는 그 과정을 잘 거치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장수 커플이 되는 거겠죠.



그것은 그 남자의 고유한 무엇이 아니라 여자보다 십 년을 더 산 사람들이 갖는 당연한 태도고 매너인데 그걸 착각하고 그 남자만의 장점으로 받아들여요.


비슷한 맥락인데 재밌어서 가져와봤습니다. 여자들이 연상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확실히 저보다는 삶의 연륜이 쌓인 분들이 볼 수 있는 관점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볼거리가 가장 많은 걸 마지막에 들고 왔습니다. 외로움 때문에 사랑을 시작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런 사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혹시 연애상담이 들어오면 절대 참고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결국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는 의미가 담겨있으니, 자신의 연애를 돌아보면서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제가 가장 공감하고,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상대가 운명적인 남자라서가 아니라 석 달 동안 데이트도 못하고 주말이면 혼자 있어야 했던 외로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도 되고, 저 사람도 될 수 있고요. 그 남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사랑하는 거죠. 내가 사랑하는 건 그 상대가 아니라 나예요. 내가 사랑의 이유가 되는 겁니다. 그 남자의 눈빛, 대화법, 지적인 모습이 아니고요. 만약에 그랬다면 외로움 때문에 그 남자를 선택하지 말았어야 해요. 결국 외로움이 시작인 것이고 우리들 대부분이 이런 사랑을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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