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 신순규 에세이
나는 증권 분석 일을 하는 애널리스트다.
한 월가 회사의 자산운용팀에서 회사채 분석을 하고 있는데, 이 커리어를 시작한 지도 벌써 26년이 넘었다. 기업이 발행하는 증권, 즉 주식과 회사채를 분석하여 매입과 매각 결정을 하는 일을 그렇게 오래 하면서 내가 얻게 된 노하우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것들이다. 그중 하나, 너무 당연해서 꼭 기억할 필요도 없는 것은 투자는 오늘내일이 아니란 사실이다. 투자자들의 투자 기간은 몇 달도 아니고, 몇 주나 며칠은 더더욱 아니다. 적어도 몇 년 동안 그 기업의 성장률, 이윤율, 현금 흐름, 경영진의 능력과 정직함 등을 토대로 자금을 묶어 놓을 수 있는 것이 투자 아닌가.
책의 시작은 "궁금증"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이 증권 분석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어떻게 한국의 시각장애인이 미국에서 그것도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에서 증권 분석 애널리스트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시각 장애인이라는 말을 빼고도 대단한 일인데 시각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이 있기에 더욱더 믿기 힘든 일이었다. (물론 이 모든 건 시각장애인에 대한 나의 무지와 편견으로 인한 궁금증이었다.)
15세 시각장애인 소년이 미국에 유학을 가다
1982년 7월 중순, 내가 도착한 곳은 북서 뉴저지에 있는 한 시골 마을이었다. 내가 6주 동안 지낼 곳은 100년 전에 지었다는 큰 농가였다. 훗날 나의 미국 부모가 될 분들은 나를 맞을 준비를 완벽하게 해 놓고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놀라운 일은,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여러 가구와 집 곳곳의 딱딱한 모서리들을 두꺼운 카펫으로 감싸 놓은 일이었다.
두 분의 열정 어린 교육과 지극한 보살핌을 받고, 나는 그해 9월에 필라델피아 오버브룩맹학교에 입학했다. 그곳도 내가 다니던 서울맹학교처럼 기숙사가 있는 학교였다.
유학을 떠나는 나에게 엄마가 사 주신 최고급 소니 녹음기 라디오가 마침 고장이 났다. 암스트롱 선생님에게 그걸 보여줬더니, 당신이 고쳐다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고친 녹음기를 나에게 돌려주었다.
그 후 나는 암스트롱 선생님이 기숙사 사감 중에서도 아주 유난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감 선생님들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아이들을 기숙사 식당에 보내지 않고 식사를 직접 만들어 주는 줄 알았고, 주말이 되면 집에 가지 못한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 이틀 정도 여행을 다니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 학교에서 그렇게 아이들을 돌보는 분은 암스트롱 선생님뿐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라는 곳에는 주인공의 미국 부모님이나 암스트롱 사감 선생님과 같이 다른 사람들을 아무 대가 없이 배려해 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남들보다 좀 더 형편이 좋아서, 남들보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주인공의 미국인 부모님은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쌍둥이 딸들을 살려보겠다고 하루에 13잔의 유기농 채소 주스를 만들어 먹이고 있을 정도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주인공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 6주 정도 데리고 있어 줄 수 있느냐는 그들의 선교사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주인공의 학교생활 내내 따뜻한 친절과 보살핌으로 학생들을 대했던 암스트롱 사감 선생님은 그때 당시 66세의 나이었고 젊었을 때 얻은 쌍둥이 딸을 돌도 되기 전에 잃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남편마저 잃는 불행을 겪었다고 한다.
이들의 친절과 보살핌이 당연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부모님의 아가페적인 사랑도 당연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한다거나 더 나아가 희생까지 마다하지 않는 이들은 이 세상에 여전히 많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봉사와 희생이 결코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주인공처럼 그들의 봉사와 희생을 감사히 여기고 다른 자신의 보살핌과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그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주인공의 미국 생활의 시작은 이토록 마음이 따뜻하고 영혼이 아름다운 이들과 함께 시작되었다.
달란트 = 기회
어떤 사람이 먼 곳으로 여행을 가기 전에 그의 종들에게 각각 재능에 따라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세 달란트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다. 더 많은 액수를 많은 종들을 그것으로 장사해서 (혹은 투자해서) 100%의 이윤을 냈다. 그런데 한 달란트만 받은 종은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었다고 주인이 돌아오자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그러자 주인이 그를 게으르다며 꾸짖었다고 한다.
이처럼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의 여러 기회들이 나에게 맡겨진 달란트라고 생각한다. 그중 제일 컸던 것은, 물론 상상치 못했던 하버드와 MIT에서의 몇 년이다. 지금 회고하면 그 시절에 대한 후회가 제일 크다. 누구나 들어갈 수 없는 학교라고 수없이 들어왔는데....
그래서 후회가 크다. 누가 나에게 건네준 값진 진주를 생각 없이 두었다가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영어나 문학 전공을 하지 않을 게 후회된다기보다, 하버드와 MIT 같은 좋은 환경에서 실컷 공부하지 못했던 게 후회된다. 해야 할 것, 예를 들어 리포트 작성이나 시험 준비도 임박했을 때까지 미루다가 그저 그런 결과에 만족해야 했다.
처음 이 책의 표지를 보았을 때 "한국인 시각장애인 월가 애널리스트"라는 타이틀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어떻게 시각장애인이 월가 애널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거지? 물론 나의 이런 생각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나의 무지와 지극히 편향된 사고에 의한 것이었다.
"나는 종종 장애인으로서 기가 막히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하는 일이 뭐냐는 질문에 나는 투자 은행에서 애널리스트로 일을 한다고 했다. 그는 눈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투자 은행 일?"이라면 농담하지 말라는 투로 말을 이어갔다. 또 언젠가는 밤늦게 퇴근했는데, 회사 앞에서 나를 태운 택시 기사가 공교롭게도 한국 분이었다. 안마를 늦게까지 하니 힘들겠다는 말을 얘기를 했다."
시각장애인도 공부를 잘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한 거다. 심지어 주인공인 이분은 그냥 평범한 대학도 아닌 하버드와 MIT에서 공부를 했고 의사가 되려는 꿈을 꾸면서 의과 공부를 했던 분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의사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 의사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후 조직학과 산업심리학 쪽으로 공부 방향을 바꾸었고 그렇게 MIT 대학원에서 조직학을 전공하게 되면서 조직한 연구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월가 회사에 발을 들이게 되었으며 이것이 그를 증권 분석을 하는 월가 애널리스트의 자리까지 가게 해 준 디딤돌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 졸업이 가까웠을 때나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을 때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직장을 구하거나 사업을 하기 위해 돌아갈 용기는 나지 않았었다고 한다.
"12년의 커리어를 통해 경쟁이 심한 금융 기업에서 쓸모 있는 직원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지만, 나에게 인터뷰 기회를 주는 한국 금융 기관은 매우 드물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즉 장애인을 해고해야 할 상황이 됐을 경우, 사회적으로 비판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꺼려 할 수밖에 없다는 회사들의 입장을 전해 듣기도 했다."
한국에서 그가 시각장애인 여의도 증권 애널리스트가 될 수 있었을까?
한국에서는 주인공이 아무리 능력 있는 애널리스트라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사회적인 편견과 우려로 인해 그를 고용하려 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결국 포기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왜 선진국인지 왜 기회의 땅인지 알 것 같다.
그는 사람들 덕분에, 미국 부모님과 선생님들 덕분에 좋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생에서 그러한 좋은 기회들을 자신에게 맡겨진 달란트라고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의 하버드와 MIT에서의 생활을 후회한다고 한다. 이유는 그가 비유한 성경에서의 달란트 이야기에서 한 달란트만 받은 종이 주인이 준 그것을 땅에 묻어두고 주인이 돌아오지 고스란히 주었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을 그 달란트를 몇 배로 불렸는데도 말이다.
그는 충분히 주어진 달란트를 활용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고 했다.
난 달란트라는 게 Talent, 한국어로는 재능으로만 생각했었는데, 달란트가 인생에서 각자에게 주어지는 기회라는 생각을 하자. 내가 얼마나 많은 기회를 게으름을 피우며 낭비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핑계를 대자면 수만 가지가 넘게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다 핑계였던 것이다.
무엇이 나에게 동기부여를 주었는가? 모든 건 갈망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오래전에 들었던 한 유명한 사람의 명언이 그 답의 시작이란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무엇이 동기가 되었는지를 가르쳐 분 말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가 이런 말을 했다.
"배를 만들려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모아 오게 하거나 일을 나누어 주지 말고, 끝없이 광대한 바다를 갈망하게 하라."
사람들은 흔히 어떤 일이, 직업이, 직장이, 혹은 사회 경제적인 위치가 가져다주는 혜택이 자신에게 동기부여를 한다고들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금융계에 종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분야들보다 높은 연봉이나 큰 동의 흐름을 관리하는 직위가 가져다주는 권력이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갈망한 적이 없다.
내가 오랫동안 갈망해 온 것은 평범한 가정이었다.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한 여자와 아이들을 키우면서 지지고 볶는 나날들이 쌓여 가는 삶을 꿈꿨다. 공부도 직장도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소박한 이 꿈은 나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 생각을 할 때면 감정이 벅차오르기 때문이다. 마음을 움직이고, 영혼을 흔들어서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갈망에는 강렬한 감정이 따르기 마련이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오던 그가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온전한 가정을 가지기 힘들 것이며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말들이었다고 한다. 사랑이 아닌 동정으로 결혼을 할 수는 있겠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을 거라는 말들... 이러한 말들은 그에게 점점 더 평범한 가정을 갈망하도록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는 그는 그의 갈망을 모두 이루었다.
최근 읽은 책 론다 번의 <시크릿>이 떠오른다. 열망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는 성공의 열쇠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대목이다. 알렉산더 피라의 <체인저블>의 주인공처럼 이 책의 주인공 또한 <시크릿>의 끌어당김의 법칙을 실천함으로써 기적을 만들어 냈다.
책 속에는 그가 시각장애인으로서 사회에서 많은 차별과 상처를 받았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일화가 등장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라는 말이었다.
왜 우리는 상대가 상처 받을 수도 있는 말들을 충고랍시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까? 나 또한 그런 시답지 않은 충고를 하는 사람 중에 속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마도 내가 기억하지 못해서 그렇지 나 또한 충고랍시고 생각한답시고 상대에게 상처되는 말들을 아무 생각 없이 했었을 것이다.
시각 장애인 애널리스트라는 타이틀에 처음에 내가 가졌던 무지와 편견과 오만함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난 처음으로 내가 장애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정한 장애란 몸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장애라는 말처럼 내가 그런 사람처럼 여겨진 것이다.
이 책 속의 주인공은 여러모로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다. 하지만 다행히 난 기분이 좋다. 이제는 진짜 장애가 무엇인지 깨달았으니 말이다.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삶이 몇 분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삶을 돌아보며 후회를 하지 않는 이는 드물 것이다. 랍비님은 언젠가 하게 될 후회를 오늘 하라고 말했다. 남은 삶이 5분이든 5일이든 5년이든 50년이든 다를 바가 없다면서, "그걸 알았더라면 이렇게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바로 오늘 하고, 오늘부터 생각한 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신기한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단 생각이 나를 두려워하거나 우울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살다 보니 하루하루가 더 알차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이들과 같이 보낼 수 있는, 행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오늘이 소중한 선물인데, 이것은 쓰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는 이슬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오늘에 충실한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죽음이란 마지막 챕터가 펼쳐질 때 찾아올 후회도 줄어들지는 않을까.
그는 뉴욕에서 일어난 폭탄 사건, 기차 탈선 사고, 아는 분의 차 사고, 랍비님에 대한 기사와 그가 30년 전에 쓴 설교 원고를 접한 후 오늘이란 날이, 지금이란 시간이 더욱더 소중해졌다고 한다. 예전에 그는 "오늘이 나의 나머지 삶에 있어 첫날이다."라는 말을 자주 기억하곤 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죽음과 연관된 사건을 겪게 되면서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고 한다.
만약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면... 난 후회되는 게 너무 많다. 그러니 난 인생을 그리 잘 살아오지 못한 게 분명하다. 가장 후회되는 건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너무 안정된 삶을 추구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나의 인생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기억하자!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에세이 서평을 마무리하며,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평범한 미국의 중산층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거기다가 나의 관심 분야인 주식 애널리스트라는 점은 내가 이 책을 읽는 이유로 충분했지만 난 이 책을 통해 주식투자를 하는 것과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중 한 가지 공통점은 주식 투자나 인생이나 둘 다 인내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참고 인내하는 시간이 없다면 투자도 인생도 성공과는 멀어진다.
"성공에 행운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행운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을 알지는 못했다. 끈기를 갖고 포기하지 않는 것, 주의 사람들의 조언이나 참견에 흔들리지 않는 것, 다른 이들의 쓰지 않는 방법을 과감하게 쓰는 것, 최고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는 것. 이런 노력을 한 이에게 찾아온 행운을 보면서, 행운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자신이 받은 사랑과 보살핌을 잊지 않고 다른 이에게 전파하는 주인공의 삶은 숭고하고 아름답다. 입양과 봉사를 통해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그와 뜻을 함께해 준 사랑하는 아내 덕분이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건, 장애는 삶을 살아가면서 불편한 요소가 될 수는 있지만 결코 한 사람의 성공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꿈을 크게 꾸는 것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끈기를 갖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장애는 장애를 장애라고 인식하는 우리들의 사고방식이 진정한 장애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포기했느냐 포기하지 않았느냐이고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끈기와 인내가 필수적이다. 포기하지 않고 끈기와 인내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그의 멋진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
월가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가 전하는 견고한 삶의 가치
지은이 신순규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아홉 살에 시력을 완전히 잃은 뒤, 눈으로 보는 대신 듣고 느끼고 경험하고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며 살았다. 어머니의 권유로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열세 살에 떠난 미국 순회공연 중 오버브룩행학교의 초청을 받아 열다섯 살이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 뒤 일반 고등학교로 진로를 바꿔 하버드, 프린스턴, MIT, 펜실베이니아 등 세계적인 명문 대학에 동시 합격했다. 하버드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MIT에서는 경영학과 조직학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장애인에게는 진입 장벽이 있는 직업을 연구하다가 시작장애인 애널리스트가 없다는 사실에 "내가 첫 성공사례가 되자." 결심하고는 월가 투자은행 JP 모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금융 분야의 최종 자격증"이라 불리는 CFA (공인재무분석사)를 취득했고, 현재는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에서 증권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