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 끝났다. 전에 살던 곳과 걸음으로 5분 내외지만 아파트 단지가 달라졌다. 동생은 아파트 이름이 같아서 관리사무소도 똑같은 줄 알았다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 카드도 관리 사무소도 차 앞에 붙여야 할 스티커도 달라졌다. 지금의 집은 내 직장과는 도보로 7분 정도 멀어졌고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가 되었다. 학교가 가까우면 늦잠도 잘 수 있고 좋을터인데 9살 딸아이는 이사 온 것이 마음에 내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이유는 코로나 때문에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게 금지라서 하교 시간에 맘껏 수다를 떠는데 안녕 다음에 몇 마디만 더 보태면 벌써 집에 도착하기 때문이란다. 집에 오면 쉴 새 없이 떠드는 수다 본능을 학교에서 잘 누르고 있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범생이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도 9살 수다쟁이다웠다. 그래도 녀석은 바뀐 침대방에서 햇살을 받으며 침대에 뒹굴거리며 책을 잘 읽으러 들어간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저도 햇살이 잘 들어오는 침대방은 마음에는 드는 모양이다.
동네 이름과 아파트 이름도 똑같고 똑같은 평수에 구조까지 똑같아서 이사 온 것이 맞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내 텅장에선 이사비용으로 140만 원이 빠져나갔고 낮에 햇살이 쫙 들어오고 앞을 막고 있는 다른 아파트가 보이지 않는 거실에 앉아 있으니 이사 온 것이 실감 났다. 하루키 책은 하루키대로, 김영하 작가 책은 김영하 작가 책 대로 나름 뿌듯하게 정리한 책장은 이사하면서 엉킨 채로 꽂혀 있고, 아직 위생장갑과 잘 쓰는 냄비의 위치가 손에 익숙지 않은 위치에 있어 조금 낯설기도 하다. 부지런한 내 동생 덕분에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이사 오면서 참 많은 것을 정리했다. 딸아이가 어릴 때 읽던 전집 세트는 20킬로로 5박스를 다 채워서 딸내미 사촌동생에게 보내졌고, 이 집 저 집에서 주셨던 그릇세트도 마대자루에 넣어서 버렸다. 산뜻했지만 무거운 하늘색 코트도 선뜻 손이 안 가는 10년 전 거금 주고 산 빨간색 코트도 헌 옷 수거함에 버렸다. 그땐 옳았지만 지금은 내 취향이 아닌 작가의 소설책도 에세이 집도 버렸고, 고장 나지 않았지만 벗겨진 가죽시트를 갈기 싫어 폼롤러, 요가매트 등 잡동사니를 올려놓았던 거대한 안마의자도 2만 4천 원에 버리고 왔다. 이것들을 사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을 터인데 왜 이렇게 속 시원한지 모르겠다.
많이 버리고 왔던 덕분일까? 아니면 부지런히 정리해준 동생 덕분일까? 똑같은 평수에 똑같은 구조지만 우리 집은 훨씬 넓어졌고 모든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빽빽해서 책을 꽂아둔 위에 책을 또 쌓아야만 했던 책꽂이는 헐거워졌고, 부엌 찬장에 몇 개만 가지런히 놓여 있는 그릇들, 한결 가벼워진 나의 옷장들 모든 것이 여유롭다.
더 이상 위층의 층간소음으로부터 방해받을 일도 없고, 발가벗고 다녀도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할 앞동도 없다. 그리고 거실 왼쪽 한켠에서는 높은 지대의 25층 H 아파트에서 불빛들이 예쁘게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묵은 짐은 덜어짐으로 , 낮에는 햇살 부자 밤에는 예쁜 야경이 있는 거실과 충분한 수납공간은 더해짐으로 나에게 행복을 주는 나의 월세집!
묵은 짐은 덜어짐으로써 내 마음은 채워졌는데 오늘 나란 인간은 윤동주 시인이 시구가 적힌 텀블러가 탐이 나서 책을 또 8만 원 치나 담았다. 올해만 100만 원 치의 책을 샀다. 버린 코트 두벌만큼 겨울 외투를 두벌을 샀다. 미니멀리스트의 길은 정말 험난하다. 나란 인간에게는 말이다. ㅠㅠ 이사를 하면서 묵은 짐을 비우고 새롭게 태어났는데 또 나의 소유욕에 의해서 묵은 짐이 늘어날까 걱정이 된다. 안마의자가 버려져 늘어난 흐뭇한 공간을 보면서 나의 물욕을 다 잡아야겠다. 그리고 더 깨끗하게 살아서 다음번 이사를 갈 때에는 머문 자리의 삶도 옮기는 짐도 아름다운 삶을 우리 딸과 행복하게 살아가야겠다.
햇살이 들어오는 침실과 거실이 너무 좋다. 햇살만큼 부자가 되길 소망하는 건 너무 과한 욕심이겠지? 신도 모든 이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과할 것이다. 나 같은 무신론자의 부탁을 들어줄 여력은 없으실 것이다. 그래도 부자가 안되어도 좋으니 지금만큼만 살아가게 해 주세요. 24한 집에서도 앞으로의 삶에서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