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주인이 2년이 다 되어 간다고 집을 빼주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부동산 3 법으로 34평 아파트, 월 60을 소유하기에는 우리 집이 계륵이었나 보다. 집주인에게는 버리자니 아깝지만 갖고 있기는 더 싫은 존재 같은 우리 집, 썩 마음에 안 들어도 귀찮아서 더 살려고 했는데 주인이 나가라고 하니 나갈 수밖에! 주인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나는 혼란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그 이유는 우리 집 위층이 너무 쿵쿵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는 비어 있었던 것인지 줄넘기를 해도 마음씨 좋은 사람이 살았는지 아파트 거실에서 줄넘기 소리를 하는 소리가 들리질 않나, 거실에 책상이 있는지 의자를 끄는 소리와 그들은 잠시도 걷질 않는다. 이리 쿵! 저리 쿵! 인내심이 제법 있고 까칠하지 않은 나에게도 한계가 찾아와서 경비실에 민원을 넣었다. 처음보다 나아졌지만 그들은 여전히 쿵쿵된다. 그래도 조금은 괴로웠지만 지금 나의 월세집은 딸아이의 학교와도 매우 가깝고 내 직장도 도보로 해결할 수 있어 나가라고 하지 않으면 꿋꿋이 살 생각이었다. but 주인이 나가라고 했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12월 전으로 살 집을 알아봐야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학원가와 상권도 가깝고 인근에 초중고가 있고 작년에 들어선 시립도서관이 있는 꽤 살기 좋은 동네이다. 아파트가 2003년에 지어진 것 빼고는 흠잡을 때가 없는 동네인지라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웬만하면 붙박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 동네는 전세는 더 희귀하고 월세집도 잘 없다.
새 아파트를 가기 위한 사람들의 매매는 넘쳐나지만 내가 살아야 할 월세는 잘 없었다. 그래도 12월 전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부동산 문을 두드렸다. 우리 집보다 평수가 작은 아파트 월세를 보여주었다. 사실 우리 세 식구는 여름에는 에어컨 나오는 거실에서 잠을 자고, 아이방으로 마련해준 방은 혼자 자기 무섭다고 쓰질 않으며 방 하나는 창고방이라 34평 중에 실제로 사용하는 공간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평수를 줄여가도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24평 아파트의 부엌을 보니 썩 내키지 않았다. 요리하는 것을 즐기지는 않으나 그래도 요리할 공간이 넉넉한 주방이 당겼기에 첫 번째 아파트는 불합격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똑같은 평수의 아파트를 보게 되었다. 그 집은 화장실, 부엌 모두 리모델링이 되어 있었다. 평수도 똑같고 최적의 조건이었다. 단 하나 걸리는 것은 딸아이가 전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학교로 걸어갈 수도 있지만 전학을 하면 짧은 횡단보도만 건너면 바로 학교가 있었다. 마음에 드나 딸아이의 전학이 하나 걸리는 두 번째 아파트는 보류였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따르릉 부동산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마지막으로 본 집은 딸아이 학교 바로 뒤, 평수가 똑같은 아파트였다. 리모델링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으나 깨끗했다. 여기로 이사 오면 딸아이는 전학을 할 필요가 없고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도 더 가까워졌다. 우리 집과 똑같은 구조로 고민 없이 가구도 그대로 배치하면 되었다. 8층이라 시야를 가리는 건물도 없고 해도 잘 들어올 것 같았다. 세 번째 아파트는 합격이었다.
그렇게 다음날 그 집을 바로 계약했다. 계약서를 다 쓰고 집이 조용하냐고 물어보는 나의 허술함에 살짝 부끄러웠다. 다행히도 주인이 아랫집 윗집 아이들을 다 키운 집이라 조용하다고 말했다.
나는 옷을 산 것도 화장품을 산 것도 아니다. 다음번에 내가 살 집을 계약했다. 그것도 단 세 번을 보고 말이다. 며칠 만에 집을 계약한 것도 가야 할 다음 집이 생기는 이 모든 것이 홀가분하다. 내가 내 집을 샀다면 조금 더 큰 금액이 걸린 전셋집을 골라야 했다면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계약할 수 있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월세살이가 서럽다고 생각하는듯하다. '월세살이의 서러움' 월세가 이런 수식어랑 잘 붙어 다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대부분 내 친구들은 30평대의 아파트에 자기 집을 사서 안정되게 사는데 너는 왜 그러냐 할 때 나도 살짝 서글프다. 하지만 그 감정은 찰나다.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역마살을 품은 마음과 깊이 고민하기 싫은 내게는 적당한 월세가 편한 것 같다. 나갈 때도 들어갈 때도 옷을 쇼핑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집을 계약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방에 집 하나 물려주는 게 딸아이에게는 또 하나의 짐일 수도 있을 수도 있다고 오늘도 월세 사는 나를 스스로 위로하고 타당성을 부여해 본다. 월세 밀리는 세입자가 될 수 없기에, 그래도 내 딸에게 빚을 물려줄 수 없기에, 명품은 없지만 작은 쇼핑을 멈출 수 없기에 나는 오늘도 직장에 돈을 벌러 가야 한다. 내 딸이 사는 시대에는 원하는 집을 적당한 금액을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건 내 딸 세대들이 살아갈 땅이 물에 잠기지는 않을까이다. 타일러 라쉬의 책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읽는 중인 나는 내 딸이 살아갈 환경이 무섭다. 다음 세대들을 위해 우리 선에서 최소한의 노력은 하면서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