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대금 동아리는 큰 연주회가 끝나고 설렁설렁 연습을 하다가 다음 연주회는 무엇을 할까 의논을 하다가 10개월 넘게 멈췄다. 코로나 19가 터졌기 때문이다. 3개월 동안 만나질 못했을 때 곧 코로나 19가 종식될 줄 알았다. 그러나 코로나 19는 언제 종식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체온도 재고 손소독제도 철저하게 하고 다른 팀과 시간차를 투고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요?라는 회장님의 조심스러운 제안이 있었다. 1월 이후로 창고방에 처박혀있던 내 대금이 걱정되기도 했고 동아리 사람들도 보고 싶기도 해서 나는 회장님의 제안을 수락했다. 모두들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출석률도 좋았다.
사부님이 수연장지곡을 불어보자고 했다. 몇 개월째 방치된 내 대금은 삑삑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난리도 아니었다. 울림을 도와주는 청도 쭈글 해져 있고 평소에 나던 음도 잘 나지 않았다. 그래도 30분 넘게 부니 비로소 내 대금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동아리에서 대금을 불다가 문득 나는 어쩌다가 이 악기를 아직도 연주하고 있는 것일까? 10년 전 접한 악기지만 아직도 도랑물 깊이의 소리를 내냐고 남편이 자주 놀린다. 그렇게 핀잔을 받음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부는 내 우직함이 바보 같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여 대금부는 중간에 피식 웃음이 났다.
10년 전 나는 국악 동아리를 모집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친구에게 우리 가야금 동아리를 들자고 말했다. 그런데 다음날 동아리 운영진이 가야금 동아리는 인원수가 다 찼는데 다른 동아리로 갈 생각이 없냐고 여쭤보셨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대금이었다. 소금, 피리보다는 커서 소위 말하는 뽀대가 난다는 단순하고 무식한 이유에서이다. 그 당시 대금 소리 자체도 몰랐으니 말이다. 출산과 육아로 전보로 대금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해도 꽤 있지만 아직도 나는 대금을 불고 있다. 사부님의 대금 소리는 사랑하나 내 대금 소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다가 대금을 만나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합주로 좋은 소리를 만드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10년째 삑삑 대는 내 대금 소리를 사랑하지 않지만 대금 악기 자체는 사랑한다.
10년째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는 실력에도 꿋꿋이 불고 있는 내 성격은 돌을 닮았다. 돌 같은 나의 "어쩌다가"리스트에 걸린 작가, 기부단체, 주간 시사잡지는 어쩌면 나 같은 평생 고객을 확보한 셈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패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내가 구독하는 잡지가 일베류의 기사를 쏟아내지 않는 이상, 내가 기부하는 단체가 불법적으로 기부금을 쓰지 않는 이상 나는 우직하게 그것들에 대해 돈을 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어쩌다가 결혼을 하고 어쩌다가 아이를 낳고 부모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또 어쩌다가 비혼 주의로 딩크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가 혼혈인으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은 어쩌다가 단어의 연결 모음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이유와 사연들로 어쩌다가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어쩌다가 태어난 우리네 삶이 어쩌다가 삶의 종착력에 이르렀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되길, 나만이 알더라도 작은 빛으로 마무리되는 삶이 되길 바란다.
"엄마 심심해, 내가 지어낸 그림 게임하자"하며 어쩌다가 내 딸로 태어난 딸이 말을 건다.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싶다. 그래도 어쩌다가 내 딸로 태어났으니 귀찮긴 하지만 최선을 다해 놀아줘야겠다. 어쩌다가 나랑 하나도 안 닮은 외모로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그런 딸에게 하나 바란다. 취미와 내 생활을 중시하는 이기적인 엄마를 어쩌다가 엄마로 맞았으니 희생적인 엄마를 기대하지 말길 바래.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해.
어쩌다가 브런치 작가가 된 나의 요즘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