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월요일, 1교시 시작 시간. “자, 연필 지우개 빼고 모두 집어넣으세요.”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이 말, ‘설마!’ 바로 시험 보기 전의 선생님 말씀이다. ‘아, 진짜 시험 보는 거였어?’ 나는 수업 준비물을 모두 책상 서랍 안으로 집어넣고, 연필과 지우개를 준비했다. 그러자 여섯째 줄부터 시험지를 받고 있었다. 내가 있는 줄은 두 번째 줄. 시험지가 내 줄로 올 때까지 네 줄 남았다. ‘아직 시험지가 오려면 좀 멀었네. 휴, 다행이다.’ 이미 똑같이 시험을 보고, 또 시험지 늦게 받아서 달라질 것도 없지만 시험지가 늦게 오면 나는 그것을 보고 안심한다. 얼마 후, ‘앗! 어느새!’ 시험지가 내 옆줄 아이들에게까지 갔다. ‘곧 있으면 우리 차례잖아!’ 시험지가 우리 줄 아이들에게도 도착했다. 나도 시험지를 받았다. ‘수학 길이와 시간 수학 시험? 아, 나 자신 없는데, 할 수 있으면 최대까지 점수 높게 받고 싶다.’
그렇게 시험이 시작되었다. ‘진지함 최대치로 높이고, 평소보다 훨씬 더 신중해야 해. 찍는 것도 신중해야 1점이라도 더 올릴 수 있어! 찍는 것도 대충 해선 안 돼.’ 1번 문제는 계산 문제였다. 1번 문제부터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아니야! 의외로 쉬운 문제일 수도 있어. 일단은 풀고 보자!’ 몇 초에 걸쳐 풀기는 풀었는데, 맞출 자신이 없는 상태는 여전하다. 중간 자신감 강화의 효과를 볼 수 없었다. 전보다 나아지긴 한 것 같지만. 2번 문제는 문제의 내용을 읽고 푸는 문제였다. ‘이게 뭐야, 어제는 줄넘기를 몇 시간 동안 했고 오늘은 몇 시간 동안 했는데 어제오늘 한 줄넘기 시간은 몇 시간일까요? 이거 보니 1번 문제는 난이도 1점도 아니었네? 이거 너무 어려운데? 자신감이 벌써 그냥 찍자고 하네. 이것도 일단 계산하고 보자!’ 2번 문제를 읽고 벌써부터 그냥 운 좋게 찍어나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 계산이 겨우 끝난 후, 다음 문제. 이번 문제는 주어진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활동을 쓰는 거였다. ‘이거 진짜 헷갈리네. 이거랑 이거도 맞는 것 같고, 이거랑 이거도 맞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자신감뿐만 아니라 내 판단력도 그냥 찍자고 한다. 나는 헷갈리는 두 개 중에 아무거나 썼다. 시험이 끝난 후에는 ‘이번 시험은 백 점은커녕 구십 점도 못 맞겠는데’ 하며 반 포기 상태였다. 나는 속으로 웃는 것밖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으하하하하! 이번 시험은 안 돼!’ 아침 시험은 이래서 위험하다.
네 수필을 보고 도대체 몇 점을 받아올지 살짝 걱정했다. 확실한 문과 성향 딸은 수학을 제일 싫어한다. 학교 공부를 예습하거나 복습하지 않는다. 백지상태인 1학기 문제집을 여름 방학 때 풀자고 하니 방학을 뺏는 잔인한 엄마라고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공부를 안 하는 대신 선생님 수업 시간에는 잘 듣는다고 했다. 수업마저 안 들으면 중위권이 목표인데 하위권이 될 것 같다고 하는 녀석을 말을 듣고 나는 웃음이 피식 나왔다. 기가 차서 나오는 웃음인지, 기특해서 나오는 웃음인지 그 중간쯤의 감정이 섞인 웃음인지 모르겠다. 며칠 뒤 물어보니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왔다. 2개밖에 안 틀려서 딸의 수학 시험지는 92점이었다.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홍은전 작가 , '그냥 사람'을 읽었다. 비장애인인 우리의 삶이 얼마나 혜택 받은 삶인지 다시 한번 깊이 감사하고 생각하게 된 하루다. 건강하게 자라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자! 아픈 사람이 지나갈 때 질끈 눈을 감고 잠든 척하지 말자! 2000년도에 내가 느낀 문명의 이기와 2021년도에 내가 느낀 문명의 이기는 지구 반대편 너머의 삶처럼 다르다. 과연 장애인들에게 2000년과 2021년은 얼마큼 다를까? 아직도 그들에게는 넘어야 할 문턱이 많은 사회 같다. 책을 읽은 뒤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나도 그들의 삶을 무시한 방관자 중 하나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