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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거나 Nov 07. 2021

보이지 않는다고 들리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 나는 한 정치인의 행보에 촉을 세우고 있다. 그가 가는 발자취, 그의 페이스 북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린다. 오늘 그의 페북 메시지에는 한 기사가 링크되어 있었다.

사 먹게 2만 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이라는 기사였다. 56세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22세의 강도영은(가명)

비싸지만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수술을 선택할 것이냐 비용은 덜 들지만 생명을 장담하기 힘든 어려운 시술을 선택할 것이냐? 에서 첫 번째를 선택했다. 가난하고 어린 강도영에게 그 후유증은 매우 컸다. 의식을 찾은 아버지의 몸은 예전의 몸상태가 아니었다. 코에는 호스가 연결되었고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화시키는 능력도 잃어서 호스로 음식물을 주입해야 했다.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2시간마다 채위도 바꿔줘야 했다. 병원은 강도영에게 중증 환자 간병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 아버지의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돈과 쌀은 줄어들고 처리해야 되는 통신비, 인터넷 비, 월세 등이 연체되기 시작했다.  2020년 9월 13일부터 올해 1월까지 입원 치료를 받은 아버지의 병원비는 약 1500만 원이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집을 떠난 강도영에게 주변에 남아있는 친척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와 14살 차이 나는 막내 삼촌에게 어렵사리 돈을  부탁했다. 막내 삼촌도 넉넉한 형편의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나마 돈이 덜 드는 요양병원으로 옮겼지만 한국의 요양급여는 65세부터 적용되어서 56세의 아버지는 국가로부터 요양비를 지원받을 수 없었다. 간병비와 요양 병원비는 꼬박꼬박 삼촌이 내줬다. 하지만 삼촌도 열 살도 안된 아이들이 두 명 있는 힘든 한국의 가장이었다. 도저히 삼촌도 강도영을 도와줄 수는 없었다. 쌓여가는 병원비를 견딜 수 없어 강도영은 퇴원 이후의 일을 병원 측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퇴원하는 날도 대중교통으로 옮길 수 없는 아버지를 집으로 옮기기 위해 사설 응급차를 빌려 8만 원을 지불해야 했다. 또 2000만 원의 병원비 빚을 남긴 채 말이다. 이 또한 어려운 삼촌이 다시 도와줬다.

4월 23일부터 아버지의 동거는 자기든 아버지든 한 명 죽어야만 끝나는 문제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강도영에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다. 5월 3일 강도영은 아버지가 걱정되어 아버지의 방에 들어갔다. 피해자(아버지)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피고인(강도영)에게 영양식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피고인은 이를 지켜보면서 울다가 그대로 방문을 닫고 나온 뒤 피해자가 사망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강도영에게 재판부는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4년 형을 선고했다.

  내가 강도영이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도 그와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리 없는 서러운 삶을 방치한 사회의 살인이라고 생각한다. 50억을 퇴직금으로 받고도 아직 처벌받지 않고 있는 고위직의 아들과 존속살인이라는 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은 강도영을 심판하는 우리 사회의 법 기준은 공정한가?

이 기사를 읽는 동안 나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소리 없이 고통받는 이들이 많은 것일까?

  이종철 작가님의 '까대기'를 읽으면서도 나는 택배 상자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일하고 있구나를 알게 되었다. 아마존은 더운 여름날 실내에서 사원들이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창고 주차장에 앰뷸런스를 항상 대기시켜 놓는다고 한다. 에어컨을 틀어주는 것보다 사람이 쓰러졌을 때 앰뷸런스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비용이 더 싸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들리지 않는다고 사람을 부품으로 취급하는 사회에 아직도  살고 있다.

  내가 듣는 유튜버가 한국에 오기 전에 자신의 직업에 대해 말해줬다. 그는 핀란드에서 사회복지사와 같은 일을 했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 와서 놀라웠던 것이 장애인들이 길거리에 잘 안보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장애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없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길거리에 장애인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나라는 핀란드에 비해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아서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집 밖의 문턱을 넘기도 힘든 그들이라 집에서 시설에서 우리가 보이지 않게 존재했던 것이었다.

  특수 교육이  필요한 아이가 일반 학교에 오려고 하면 나는 그 아이를 위해서 특수학교에 가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수학교에 비해 시설이 편하지 않은  일반 학교에서 이해가지 않는 말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것은 그 아이에게도, 교사에게도 서로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가 하는 생각이 장애인의 사회 진출을  막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그 생각을 멈췄다.  특수학교로 그들을 몰수록 일반인들은 장애인들을 만날 수가 없다. 서로 성인이 될 때까지 만날 수가 없다가 어느 날  준비 없이 사회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공기처럼 서로 존재했는데 화성인과 지구인이 만난 것처럼 어색하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움직일 수 없는 아비를 간병하다가 존속살인 형을 선고받은 가난한 젊은이 강도영(가명),  '택배' 박스 하나에 얽혀 있는 수많은 직업군, 그리고 장애인!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뉴스에서 떠들어댄다.

같은 사람이다. 사람 값은 똑같다. 누군가는 식용 개가 따로 있는 것처럼 이분법처럼 보지만 생명의 값은 모두 똑같다.

  마음만 아파하지 나는 홍은 작가, 은유 작가처럼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서 쓰지도 못하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돕지는 못한다.  글로만 말로만 떠들어대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외면하는 사람은 아니고 싶다. '천장의 무늬' 이다올 작가의 책에서 언급한 '느슨한 공동체'에 살고 싶다.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고 다양한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따뜻하게 사람답게 사는 사회에 살고 싶다. 내가 이 글과 다른 행동을 하지 않도록 곱씹어서 읽고 읽고 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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