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음성인 세상=아름다운 세상

by 아무거나

직장에서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가 나왔다. 밀접 접촉자의 결과를 알지 못한 채로 퇴근을 했다. 립리무버가 다 떨어져 가는 길에 I 화장품 가게에 들릴까 했지만 참았다. 나도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기에 곧장 집으로 향했다. 가자마자 딸아이와 동생에게 확진자의 밀접접촉자가 나왔다고 말했다. 결과는 오늘 밤 중으로 나온다고 얼핏 들었다고 말했다. 동생과 딸아이는 선별 진료소를 가보라고 난리를 쳤지만 또 다른 지인에게 물어보니 위에서 지침이 내려올 때까지 집에서 기다려 보라고 했다. 그리고 6시까지 선별 진료소를 가기에는 시각이 5시 30분! 나의 운전 실력으로는 중간쯤 가다가 선별 진료소가 종료될 것 같아서 오늘 밤은 집안에서 자가격리를 하기로 했다. 즉시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빨래할 것들은 20리터 봉투에 일단 싸놓았다. 그리고 집에서 마스크를 썼다. 딸아이와 동생에게도 쓰라고 했다. 딸아이는 엄마 코로나 양성이면 어쩌냐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혹시 모르니까 엄마한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니 엄마를 안고 싶다고 대성통곡을 하고 저녁 시간 내내 난리도 아니었다. 식사도 따로 하고 밤 12시 결과를 기다렸다. 혹시 단톡 방에 뭐라고 떴을지 궁금해서 핸드폰만 들여다보아도 말이 없다. 이렇게 늦은 시각에 결과 나왔나요? 묻기에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스스로 격리된 방에서 책을 읽고 브런치를 탐방하고 넷플릭스도 봤다. 내가 어떻게 될까 봐 울고불고한 딸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방해받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가진 시간이 참 달았다. 잘 시간이 지났는데도 딸아이는 내가 있는 방을 빼꼼히 열며 "엄마 결과 나왔어?"하고 물었다. 아니 "검사 결과가 내일 나올껀가봐 들어가서 자"라고 하니 입을 삐죽이고 울먹이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자가 격리된 방에서 유튜브를 듣고 잠이 들었다.


출근 준비를 하려고 하니 직장에서 금요일까지 재택을 신청하라고 했다.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결과를 물었다. 딸아이만큼 나도 궁금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오전 9시... 결과는... 뜨악.. 양성! 이제 나의 직장과 직장 동료들은 나처럼 멘붕이었다. 잘 버텨왔고 이제껏 큰 규모의 직장에서 나오지 않은 것에 감사했는데 이제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단톡 방에서는 위에서 지침을 기다릴 것인가 치고 나갈 것인가 고민했지만 P가 우리 먼저 검사를 맡으러 가자고 해서 나도 가까운 드라이브 스루가 있는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은 지 겨우 4년이지만 이 순간 내가 미숙하게나마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감사하며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의료진이 준 차트에 내 신상을 적고 30분 정도 기다리니 체온을 재고 코 깊숙이 키트가 들어왔다. 기다리는 시간은 30분인데 검사는 몇 초안에서 끝났다. 결과는 밤늦게 나온다고 말씀해주셨다. 체온이 38도가 나온 것이 심히 찝찝했지만 그래도 짐 하나는 덜어낸 느낌이었다. 도착한 집에서는 직장에서 전달한 일을 하고 문의 전화를 받았다. 동선의 일부분이 겹쳐서 의도치 않게 격리를 해야 하는 아이와 돌봄 공백으로 인한 걱정들, 직장에 가야 하냐 말아야 하나 문의 ,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문의들..... 끝이 없는 문의에 나 자신도 확신에 찬 대답을 해줄 수 없어 답답했지만 나는 마음을 다해서 그들을 안심시켜주고 위로해주었다. 계속 방에서 격리된 상태에서 오후를 저녁을 보냈다. 그리고 밤 11시쯤 음성이란 문자를 받았다. 합격자 통지서를 받는 만큼 떨렸다. "음성"이란 통보를 받자마자 끼고 있던 마스크를 벗고 딸아이를 껴안았다. 선별 진료소에서 내가 38도가 나왔다고 하니 더 울고 걱정하던 딸이었다. 세상 시름을 다 안고 있던 딸아이는 음성이란 문자에 춤을 추고 코로나 음성 판정 기념으로 같이 안방에서 자자고 하여 나는 잠을 청했다.


다음날 나는 재택근무 중이고 딸아이는 일기를 쓰고 있다. 그리고 난대 없이 아름다운 세상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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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녀에게는 온 우주였으니 그 우주가 건강하다니 그녀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일 것이다. 그리고 학부모들로부터 검사를 했고 음성이라는 문자가 계속 왔다. 마스크의 효과인지 다행히 양성이라고 나온 사람은 이제껏 없다.

늦은 밤 11시 음성 판정 문자, 누군가의 수고로움 덕분에 나는 어젯밤부터 마스크를 벗고 딸아이의 부드러운 볼을 부비부비 하며 잠드는 행복을 맞을 수 있었다. 내가 구독하는 시사잡지에서 "재난 앞에서 소리 없이 꽃잎들이 진다"라는 기사 제목이 다시 생각났다. 나는 이 재난 앞에서 화장실이 2개 있고 방도 3개나 되고 차를 운전할 수 있어서 집에서도 자가 격리가 되었다. 나의 남편은 요즘 제일 못 나가는 자영업자이지만 안정적인 내 직업 덕분에 내 월급으로만 여차저차 삶을 꾸려가고 있다. 하지만 옹기종기 식구들이 화장실 하나만 딸린 방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재난이 닥쳤을 때 집에서 자가 격리 수칙을 지킬 수 있을까? 자차가 없어서 대중교통을 타고 선별 진료소를 가는 이들을 우리는 탓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벌이가 중요한데 재난 탓에 나가서 벌 수 없는 이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나는 상대적으로 자가격리를 하기에 적합한 환경에 살고 눈치 보지 않고 근무할 수 있는 직장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누리고 있음에 괜히 타인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는 요즘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효과가 있어서 더 이상 재난 앞에서 소리 없이 꽃잎들이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딸아이가 흥얼거리는 노랫말처럼 2021년은 2020년보다 아름다운 세상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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