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지금까지 오랫동안 정화 없이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그의 상태는 전례 없는 오염, 양심의 요구와 현재 생활 사이의 전례 없는 괴리에 이르렀고, 그 간극을 느끼자 소름이 돋았다.
그 간극이 너무 크고 오염이 너무 심각해서 처음에는 정화의 가능성에 대해 절망했다. '완성을 위해,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번번이 노력했지만, 결국 아무 결과도 얻지 못했다.' 그의 마음속에서 유혹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런데 왜 또 시도하려 하는가? 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그 목소리가 끊임없이 말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진실하고 힘 있고 영원한, 자유로운 정신적 존재가 이미 네흘류도프의 마음속에서 깨어났다. 그는 그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그의 모습과 앞으로 되고자 하는 그의 모습의 차이가 아무리 클지라도 마음속에서 깨어난 정신적 존재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다.』
-톨스토이 < 부활 > 중에서.
톨스토이의 <부활>의 남자 주인공 네흘류도프가 타락한 자신을 인지하고 자신의 정신적 존재(내면)를 통해 다시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하는 내용이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인간도 인간 사회에 들어가 살다 보면 자연스레 오염된다. 사회에 깊이 참여할수록 자신을 잃어버린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며 스스로의 믿음을 상실한다. 자신의 고유함을 잃어버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으로 물들어 간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 톨스토이가 말한 정화의 시간이 요구된다.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고독의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 바쁜 일상과 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은 스스로 돌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본래의 나, 순수한 나는 잃어버린지 오래됐다. 네흘류도프처럼 사회에 오염된 자신을 인지하고 스스로 정화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잠시 멀리하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괴로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분신과 같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기도 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내면을 돌보며 자신을 찾아가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다. 사회에 물들어 모두가 똑같은 색을 내는데 유일하게 그 사람만 고유한 색을 띤다. 회색 물결 속에서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다. 어디에도 섞이지 않는 본연의 자신으로 빛난다. 물론 사회 속으로 오랜 시간 있으면 다시 회색으로 물든다. 하지만 괜찮다. 다시 물로 씻어내면 된다. 반복적으로 자신을 되돌아 보고 자신을 찾으면 된다. 온통 회색으로 물들 때 온전한 나로 홀로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