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지음
한강 작가님은 한국 문학에서 독보적인 목소리를 가진 작가다. 그녀의 작품은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녀는 시인이자 소설가답게 인물의 독백 등 심리를 시적으로 표한한다. 특히 이번에 소개할『소년이 온다』라는 책은 그녀가 역사적 비극을 대하는 태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광주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그날을 기억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집필했다고 한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그날의 광주를 살아낸 이들이 남긴 깊은 상처를 마주하는 작품이다. 국가 폭력의 잔혹한 현실 속에서 한 개인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담담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의 고통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1980년 5월, 광주의 거리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정대와 너는 처음부터. 손을 맞잡고 선두로, 선두의 열기 쬐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소년이 온다』 p.31
한강 작가님은 ‘너’라는 2인칭 시점을 사용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시선을 그대로 느끼게 만든다. 독자는 '너'의 눈으로 학살의 참상을 목격하고, 공포를 체험하며, 슬픔을 느낀다. '너'는 한 소년이지만, 동시에 나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혼이란 건 가까이 있는 혼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면서, 누군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만은 온 힘으로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거였어. (중략) 누나는 죽었어. 나보다 먼저 죽었어. 혀도 목소리도 없이 신음하려고 하자, 눈물대신 피와 진물이 새어 나와 통증이 느껴졌어. 눈이 없는데 어디서 피가 흐르는 걸까, 어디서 통증이 느껴지는 걸까.
『소년이 온다』 p.50
소설 속 인물들은 죽음과 가까이 맞닿아 있다. 위 문장에서 느끼듯, 생과 사의 경계가 무너진 세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살아남음’이 무력감으로 다가오는 현실이 펼쳐진다. 또 죽어서도 소중한 사람들과 만나지 못하고 혼자 떠돌게 되는 완전한 단절을 묘사한다. 이런 모종의 사건들이 진행됨에 따라 등장인물들은 하나, 둘씩 잊혀져간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 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 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소년이 온다』 p.117
이 문장에서 숫자로만 기록된 학살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느꼈다. 총알이 사람의 수보다 두 배 많았다는 사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넘길 수 없었다. 『소년이 온다』는 단순히 광주의 비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폭력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증언하는 듯하다. 또 고문의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폭력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각진 각목이 어깻죽지와 등허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곧은 물성대로 활짝 펴지며 내 몸을 비틀 때,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헐떡이는 일초와 일초 사이, 손톱과 발톱 속으로 그들이 송곳을 꽂아 넣을 때 숨, 들이쉬고, 뱉고, 제갈, 그만, 잘못했습니다, 신음, 일초와 일초 사이, 다시 비명, 몸이 사라져 주기를, 지금 제발, 지금 내 몸이 지워지기를.
『소년이 온다』 p.121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철저히 짓밟히고, 인간의 존엄을 부정당하는 순간이 이어진다. 이런 묘사는 폭력이 인간의 몸과 정신에 남긴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보여준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죽어 사라진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 중 누가 더 불행한가. 몸이 없어지길 바라는 산자인가. 죽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영원히 혼자가 된 자인가.
동생이 운이 좋았다고, 총을 맞고 바로 숨이 끊어졌으니 얼마나 다행히냐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소년이 온다』p.215
깜박 잠드는 순간, 잠에서 막 깨어나는 순간마다 그 얼굴들을 봅니다. 창백한 피부, 다문 입술, 반듯이 현수막을 덮고 누워 있던 그 모습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도려날 수도 없는 내 눈꺼풀 안쪽에 박혀서.
『소년이 온다』 p.145
『소년이 온다』는 생존자들의 기억이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보여준다. 잔인한 죽음을 목격한 자들은 결코 평생 그 순간을 안고 살아간다. 시간은 흘러도 고통의 기억은 남고, 그 기억은 마치 몸속에 깊이 박힌 가시처럼 아프게 존재한다.
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지만, 『소년이 온다』의 인물들에게는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눈을 감아도 지워지지 않는 얼굴들,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악몽 속에서 그들은 평생 고통받는다. 그것이 1980년 5월, 광주를 겪은 이들이 감내해야 할 현실이었다.
한강 작가님은 이 소설을 통해 묻는다. 우리는 이 고통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기억할 것인가. 기억하는 것은 곧 증언하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폭력을 막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