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건 장편소설
정대건 작가님은 영화감독이자 소설가다. 그래서일까, 그는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능하다.
그의 언어는 인물의 심리를 꿰뚫고, 묘사는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급류』라는 작품이 그랬다. 한 소녀와 소년의 선택에 따라 행복과 상처가 반복되며,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급류』 p.32
이 한 문장으로도 소년과 소녀가 겪을 아픔의 깊이,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내려가야 했던 이유, 그리고 그 끝에는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하게 한다. 아마 이 설렘 때문이었을까. 나는 끝내 책장을 덮지 못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소년과 소녀는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때로는 설렘을, 때로는 답답함과 고통을 안겨준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시간이 흘러갈수록 나의 감정도 급류처럼 시시각각 요동쳤다.
"너랑 만나려고 진평에 오게 된 것 같아."
어둠 속에서 시간도 공간도 사라지고 오로지 둘의 심장만 같은 속도로 뛰고 있었다.
"나도 네가 진평세 와서 좋아"
『급류』p.46
우린 애인이 아니라 채무관계 같아. 서로 빚진 사람들 같다고.
『급류』p.168
이들은 같이 살기 위해 밑바닥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늘 엇갈리고, 흔들리고, 급류처럼 휘몰아친다. 소녀는 아픔을 자기 혼자 삼키려 하고, 소년은 그런 소녀를 붙잡고 늘어진다. 그럴수록 그들은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가라앉는다. 이것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도담은 방문을 걸어 잠갔다. 커터 칼로 팔 안쪽과 허벅지를 그었다. 처음 해 보는 자해였지만 어떤 사람들이, 왜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는지 알 수 있었다.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는 순간세는 모든 고통스러운 생각을 잊었다.
『급류』p.82
해솔은 도담을 잊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생각을 삼켰다. 지난 몇 년간 해솔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계속 떠내려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선화가 손을 내미는 것처럼 느껴졌다. 해솔은 구명환 같은 그 손을 잡았다.
『급류』p.186
소녀는 혼자 모든 고통을 삼키려 한다. 하지만 소년은 끝내 그런 소녀를 놓아주고는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내려간다. 소녀는 다시 떠오르니만, 소년은 가라앉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웠던 그들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한번 깨진 관계는 다시 붙일 수 없다고 하는 건 비유일 뿐이야. 이렇게 생각해 봐. 우리는 깨진 게 아니라 조금 복잡하게 헝클어진 거야. 헝클어진 건 다시 풀 수 있어.
『급류』p.252
사랑한다는 말은 과거형은 힘이 없고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걸
『급류』p.290
급류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듯, 밑바닥을 찍은 소년과 소녀는 결국 다시 만나 사랑을 키워간다. 아픔은 인간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잠시 헝클어뜨릴 뿐이라는 믿음과 함께,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시간을 살아간다. 그리고 휘몰아치던 나의 감정도 더 이상 급류가 아닌 은빛이 도도는 시냇물처럼 잔잔하다.
엄마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만큼, 자신이 고아가 됐다는 사실만큼, 도담을 아프게 만든 사실이 괴로웠다.
『급류』p.76
가만히 있으면 그게 식물이지. 나무가 되는 건 나 죽으면 하라 그래라. 살아있으면 움직여야지
『급류』p.91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급류』p.100
도담과 해솔 사이에는 잘못 디디면 휩쓸리는 소용돌이가 도사리고 있었다.
(중략) 도담은 창석과 미영의 이야기를 덮어 두려 했고 해솔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급류』p.144~153
화상 흉터로 가득했던 창석의 등이 떠올랐다. 숨이 막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른 소방관들이 주저하고 있을 때 불길 속으로 뛰어든 해솔의 모습.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걸까.
『급류』p.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