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교과서 같은 책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시대의 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 김훈, 『연필로 글쓰기』
작가에게 무기는 연필임이 분명하다. 흰 종이에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글쓰기에 심취된다. 그 심취는 참빗으로 빗은 듯한 좋은 문장을 나에게 선물해 준다. "아 이 맛에 글을 쓰지~" 괜히 한번 유명 작가 행세를 해본다. 하지만 강압적인 환경에스는 글이 안 나온다. 맞춰본 적은 없지만 나에게 글을 발행해야 하는 마감기한이 있다고 한다면 심취한 글보다는 살기 위한 조급한 글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작가님은 김훈 작가님의 문구를 들고 와 쉼도 중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다. 매번 길 위에 놓인 평범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의 기억을 매개하는 도서관인 동시에 표지판, 폐허, 기념물 등이 베풀어주는 집단적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이다. 이렇게 볼 때 걷는 것은 여러 가지 풍경과 말속을 통과하는 것이다.
- 다비드 르 브르퐁, 『걷기 예찬』
나는 머릿속이 어지러우면 공원으로 달리러 나간다. 초보 러너이기에 뛰면 너무 힘들다. 나의 모습을 볼 순 없지만 아마도 나 혼자 산다에 나온 기안 84처럼 공원에서 허우적대며 뛰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힘들다 보니 그 어떠한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뛰는 동안은 온전히 주변 풍경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귀여운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사랑을 키워가는 커플, 나와 같이 운동을 위해 나온 사람들, 지금의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와 풀들, 격렬하게 뛰고 있는 나의 심과는 별개로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이 나를 덮쳐온다. 현대의 바쁜 삶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 달리기에 푹 빠져든다. 오늘은 어떤 풍경의 길과 장면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부푼 맘을 안고 신발 끈을 조여 본다. 그 모든 장면과 풍경은 다 글쓰기 양분이 될 것이 분명하다.
산책은 육체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정신을 잠시나마 해방시켜 준다.
- 김선영,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한 신체와 건강은 필수이다. 운동을 하는 동안 복잡한 생각은 사라지고 얽혀있던 생각들이 하나씩 풀려간다. 집에 돌아와 씻고 다시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으면 놀랍게도 아이디어들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우물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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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다 영감을 받아 쓰기 시작한 '초보 러너가 보는 풍경' 매주 월요일 연재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사람들은 그저 눈으로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러나 책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통로가 어찌 눈뿐이겠는가? 나는 책 속에서 소리를 듣는다. 머나먼 북쪽 변방의 매서운 겨울바람 소리, 먼 옛날 가을 귀뚜라미 소리가 책에서 들린다.
- 안소영, 『책만 보는 바보』
책은 그냥 읽는 용도가 아니다. 책은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 주제에 국한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이다. 작가님의 노하우를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나의 머릿속 사색의 공간은 넓어지고 온전히 그 주제에 대해서만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작가님의 생각에 공감하며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 과정이 눈처럼 수북이 쌓이면 작가님은 나의 멘토가 되고 나의 글에 작가님의 노하우가 은은하게 스며든다.
공감할 줄 아는 사람만이 공감 가는 글을 쓴다.
- 김선영,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이 책의 저자 김선영 작가님은 말했다. 공감 가는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글이 많은 독자와 대화를 나누고 살아 쉼 쉰다는 의미라고. 이건 모든 작가님과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설레는 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 쓰는 에너지를 회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글을 쓰는 것. 몸의 감각이 쓰기 모드로 활성화되고 도움닫기를 할 수 있는 밑 원고가 다져진다. 모터가 돌아가고 원고가 불어나 있으면 그 불어난 힘이 글의 소용돌이로 나를 데려간다.
- 은유, 『쓰기의 말들』
매일 글을 써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한 문장을 쓰는 것도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서 글쓰기 근육이 붙기 시작하면 숨 쉬듯 글을 쓰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 궁금할 수 있다. 모두 공감할 테지만, 글을 쓸 때는 분량과 완성도를 신경 쓰지 않는다. 짧아도 좋으니 매일 느낀 점이나 보았던 풍경, 다짐 등을 써본다. 그런 기록이 쌓이고 쌓여 퇴고를 거치면 한 편의 글이 되더라. 얼마 전 과거의 나 자신을 후회했다. 나는 왜 어릴 적 일기를 쓰지 않았고, 나의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는가. 그 이야기가 나에게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풍성하고 볼륨 있는 글을 쓸 수 있었을 텐데. 그런 후회가 양분이 되어 나는 오늘도 이야기를 남긴다.
에고이스트가 아니면 글을 못써. 글을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서 쓰는 거야. 자기 생각에 열을 내는 거지. 어쩌면 독재자 하고 비슷해. 지독하게 에고를 견지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만인의 글이 되기 때문이라네. 남을 위해 에고이스트로 사는 거지.
- 김선영,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글을 써서 블로그나 SNS 그 어디든 올려보면 안다. 사람들은 지나치게 나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글을 발행하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나의 글을 세상에 내보내지만 내 글에 오타가 있어도 이 세상 사람들은 모를게 분명하다. 그러니 상처받지 말고 계속 글을 쓰자. 쓰다 보면 감이 생기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겠지. 그런 생각으로 계속 글을 쓰자.
글을 쓰다 보면 '이런 것까지 글로 써야 되나' 싶을 만큼 개인적이라 고민에 빠질 때가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내용이 아니라면 써도 된다고, 아니, 써야 한다고 믿는다.
- 김선영,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글이 착하면 재미가 없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고통을 즐긴다는 말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도 용기 내어 써보자. 그 글이 당신에게 레드 카펫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나는 원하지 않으면서도 정말로 원하지 않는 대로 될까 봐 불안해하고, 원하면서도 정말로 원하는 대로 될까 봐 마음 졸이고 있는 것 같았다. 카오스, 땅은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
- 이승우, 『한낯의 시선』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모순적인 감정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그 미묘함 속에 숨어있는 진짜 감정을 캐치하고 알아보는 섬세함은 글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질이다. 꼭 글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친구관계에서도, 연인 관계에서도 필요한 스킬이다. 항상 연애를 하면 대화를 충분히 하지 않아 나의 반쪽의 마음을 오해하곤 했다. 오해가 오해를 부르고 진짜 마음과는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 내가 지금 진짜 감정을 캐치하라고 말하는 것이 모순이다. 이런 '정서적인 복잡성'은 성공한 스토리텔링의 핵심이 이기도 하다. 행복한 순간에 훅 들어오는 아주 작은 슬픔까지도 놓치지 않고 표현해야 한다. 그 시작은 내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 작가님은 말한다.
나무는 추운 겨울에 옷을 벗는다. 훌훌 옷을 벗어 언 땅을 덮어준다. 땅속엔 그 뿌리가 살고 있다.
당신은 한 번이라도 뿌리를 덮어준 적이 있나요?
옷을 벗어 아버지를 덮어준 적 있나요?
- 정철, 『영감 달력』11월 4일
작가님은 이 글에서 서늘함을 느꼈다. 뻔한 전개와 결말이 아닌,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숨긴 글을 독자는 잊지 못한다. 저 글에서는 나무를 감성적으로 묘사하는 글로 우리를 무장해제 시키더니, 갑자기 효심이라는 무기를 들고 훅 치고 들어온다. 진짜 서늘하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언제 드렸는지 생각하며 전화를 들어본다. 비록 이불은 못 덮어드리지만, 따뜻한 한마디라도 건네야겠다 생각한다. 정말 충격과 깨달음이 몰려오고 자아성찰을 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이런 글이 진정한 반전의 대가가 쓰는 글이다. 보통 영화에 나오는 추리 가능한 뻔한 반전보다는 이런 서늘한 글이 좋다. 묵직한 반전이 나에게 충격을 주고 그 충격은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정말 좋은 글이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나를, 혹은 누군가를, 또는 무언인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책을 쓴다. 책 쓰는 고통을 온전히 홀로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의 결과로 책이라는 자식을 낳게 된다. 자식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를 걱정해서 자식을 안 낳는다. 모든 자식이 유명인이 되고 효자 효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식은 그 자체로 기쁨이고 축복이다.
- 강원국, 『강원국의 글쓰기』
작가님이 남긴 명언부터 조심스레 소개해 본다.
"책을 세상에 낸다는 건 존재의 흔적을 남기려는 애씀이다."
- 김선영,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글쓰기와 책을 내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글을 쓰는 건 일상과 같다. 숨을 쉬고, 좋아하는 영상을 보며 밥을 먹고, 여유를 만끽하며 낮잠을 잔다. 글이란 무릇 강압적인 스트레스가 없으면 술술 잘 써지는 법. 그런 환경에서 쓰는 글에는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책을 내는 건 다르다. 에피소드 하나하나마다 의미를 찾아야 한다.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나만의 감상이 아닌 서로 향유할 만한 메시지를 실어야 한다. 편안함과 여유로움 아래에서 탄생했던 글은 교육이라는 메시지를 입고 퇴고의 과정을 거친다. 마감 기한이 있는 이런 과정은 강압적이고 자유롭지 못한 환경임에 분명하다. 글쓰기를 즐기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코 해낼 수 없는 과정이다. 지금의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그때를 위한 근육을 키우는 과정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