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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진 Mar 29. 2024

Merry me, 뭐라니, 멍하니.


결혼은 미래의 안정과 행복을 상징하는 중요한 이벤드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결혼이 그만큼 중요하지 않거나, 온전히 누리기 힘든 이벤트일 수 있다. 물론 나에게 결혼은 아주 중요한 이벤트였다. 인생을 살면서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아닌 인생의 전성기를 함께 보내고, 황혼에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갈 동반자를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이벤트를 포기하기로 했다.


어떤 결정이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늘 따라다닌다. 나의 경우에는 결혼을 포기한 것에 대해 많은 후회가 따랐다. 이 후회의 시작은 회사 내 비밀연애였다. 사회 초년생이던 나는 사회의 때가 묻어있지 않았고, 회사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이름이 뭐예요~ 전화번호 뭐예요~" 노래 가사와 같이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궁금해했고, 그럴 때마다 나의 사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졌고, 나의 첫 월급날 함께 술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비밀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회사 내 비밀연애는 짜릿했다. 정수기 앞에서 몰래 만나 꽁냥 대었고, 회식 자리에서 서로만의 신호를 주고받으며 이쁘게 사랑을 키워갔다. 그리고 서로가 회사 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그래서 더 많이 보듬어 줄 수 있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상사 욕을 한가득 쏟아내고는 후련한 듯이 깔깔 웃곤 했다. 그러곤 나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매일 이렇게 함께하면 좋겠다."  


하지만 연애에는 수많은 위기가 난무한다. 나보다 3살이나 많았던 누나는 나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기를 꺼려했다. 누나는 어린 내가 부끄러운 듯 나와의 연애를 철저하게 비밀로 붙였다. 나는 그런 누나에게 내심 서운운한 감정을 키워갔다. 그리고 이 서운한 감정에 기름을 붓는 일이 있었다. 회사 내에서 공식적으론 솔로였던 혈기왕성한 나에게는 끊임없이 소개팅이 들어왔다. 거절에 거절에 거절을 거듭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에 부딪쳤다. "너는 왜 연애 안 해?", "소개 계속 안 받는데 내가 싫니?" 등 변경거리를 만드는 것도 힘들었고 인간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누나에게 모든 고민을 털어놓았고, 우리의 연애 사실을 공개하길 요청했다. 하지만 누나는 단호히 외쳤다. "No"


그 당시 나는 누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당시 누나의 나이를 뛰어넘은 나는 이제 어렴풋이 그녀를 이해하고 있다. 나는 정말 철없고 어렸었다. 모두가 알 것이다. 사내연애의 끝은 결혼 or 퇴사인 것을. 그 당시 나는 그걸 몰랐다. 그리고 나는 내심 누나와의 결혼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누나의 단호한 외침에 나의 서운함은 폭발해 흘러넘쳤다. 그리고 그 화살은 온전히 누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누나는 그 화살을 다 받아주었고 진정이 된 나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서운하겠지만 나는 비밀을 유지하고 싶어." 누나가 말했다. 

"혹시 내가 부끄러워?"라고 받아치니 누나가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넌 계약직이고 몇 달 뒤면 이 회사를 떠나잖아. 나는 계속 남아있을 사람인데 나는 주목받는 건 싫어."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띵함이 찾아왔다. 하지만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그럼 내가 떠나면 우리 사이를 밝힐 생각이야?"

"아니? 왜 밝혀? 너 나랑 결혼할 거야?"

"그럼 안 해?"

"너 집에 돈 많아? 직장 자리부터 잡아. 난 너 먹여 살릴 생각 없어."


그녀의 마지막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 당시 나는 돈 없고 가난한 사회 초년생이었고 직장 또한 불안한 계약직이었다. 그런 나와 2년간 연애한 그녀는 나와는 완전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진정한 사랑을 꿈꿨지만 그녀는 안정을 원했다. 우리는 뜨거웠지만 서로가 추구하는 방향은 달랐다. 그렇게 나는 그날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2년 뒤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뭔가 씁쓸한 감정과 함께 한 가지 생각이 나의 머리에 각인되었다. '남자는 경제력'


내 연재북을 처음부터 봐주신 구독자님께서는 알겠지만,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잃었었다. 잘 살기 위해 악착같이 뛰어다녔지만 결과가 꽤 좋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경제력이 없는 남자가 되었고, 결혼은 자연스레 포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혀 그럴 필요가 없지만 나도 모르게 움츠려드는 어깨에 자신감이 없어졌고 연애조차도 하지 않게 되었다. 아직 돈 벌날이 더 많은 내가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결혼과 연애를 포기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좀 더 훌훌 털고 일어나지 못한 나 자신을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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