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헤이조이스 인터뷰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 권인숙 님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

by 헤이조이스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
2월 헤이조이스 Con.Joyce 연사 - 권인숙 님


헤이조이스 인스파이러 권인숙 님 인터뷰 1편 (최종) (1).png


권인숙 님

– 헤이조이스 인스파이러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 명지대 교수
– 前 (사)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 소장 및 이사

– #미투 의 선구자. 20대 시절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한 획을 그었다. 여성학을 전공한 페미니스트로서 삶과 신념을 합치시키는 길을 용감하게 걸어왔으며, 현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헤이조이스 인스파이러 권인숙 님 인터뷰 1편 (최종) (2).png



저는 명분형 인간이에요. 명분을 너무 좇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이 세상에 2년 이상 가는 명분은 없다."라는 말을 되뇌며 사는데요. 그렇게 주문을 걸어도, 스스로 설득되는 게 그런 것 밖에 없나 봐요.


제 삶에 전환점이 정말 많았지만,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고발하고 폭로했던 것이 아무래도 제일 큰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그 때 제 가치관에 '나를 위해 살겠다'는 생각이 하나도 없었던 것도 한몫했죠. 이 행동을 했을 때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내가 받을 타격에 대해 계산하지 않았어요.


정조 관념이 굉장히 강했을 때인데 저에겐 그런 것보다 '이건 당연히, 꼭 해야 되는 일이다'라는 명분이 더 중요했죠. 정말 옳다고 생각하면 겁이 안 나는 게 제 특성인 것 같아요.



여성학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난 것도 비슷해요. 1980년대만 해도 국가나 민족을 위한다는 '대의'에 의해서 개인을 압박하는 문화가 많았어요. 굉장히 남성 중심적이고 서열을 많이 따지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머릿속이 상당히 시끄러웠어요.


그리고 그 때 당시에도 여성학을 하거나 여성 문제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작지 않았어요. 우리 사회에 개인주의자에 대한 혐오,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던 거죠. 시대적 불의가 컸고 거기에 집단이 대항해야 한다는 요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으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노동운동하는 사람 중에 페미니스트들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하도 미워해서 어느 날은 제가 "여성학 하는 사람을 알아? 본 적이 있어?"라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한 번도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페미니스트를 미워할까?' '별로 많지도 않고, 개인의 삶에 구체적인 불편을 주지도 않는 실체에 대한 혐오가 왜 이미 형성되어 버렸을까?' 이 화두가 이후 석박사로 여성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헤이조이스 인스파이러 인터뷰 권인숙 님 2편 (최종) (1).png



미투 운동에 대한 역풍이 많은 건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주류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이제 개인의 삶에 영향과 불편을 주고 있죠. *백래시(Backlash)가 심했는데도 생각보다 운동에 대한 지지율이 굉장히 높아요.


이런 현상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서열적, 권위주의적, 성차별적인 질서로는 나아갈 수 없다'고 동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예요.



권위주의적 문화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 중에 남자들도 꽤 돼요. 20-30대 남성들 중에 말을 못 해서 그렇지 굉장히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육아 휴직 이슈도 그렇고 서열적인 문화로 인해 윗 사람들한테 말 한 마디 못 하는 것도 그렇고요.


작년에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장으로 있을 때 만난 남성 검사들이 그러더라고요. "남자 검사가 선호되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우리는 인권 침해를 참기 때문이죠."


남성들도 권위적이고 성차별적인 질서가 무엇인지 알고,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질서로 인해 혜택을 누리는 사람보다 못 누리는 사람이 더 많은 거죠. 지금 그 큰 질서에 대해 변화를 일으켜 나가는 중이고, 과정 중에 생기는 백래시는 불가피하다고 봐요.



제가 보기에 삶은 '세상을 이해하는 틀들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자 '자기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이슈인 것 같아요. 페미니즘도 하나의 틀이에요.


지금 세상을 이해하는 큰 틀 하나를 발견해냈다면, 나 자신을 둘러싼 여러 이슈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도구를 하나 마련한 거고요. 그런 차원에선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든든한 선택을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백래시 (Backlash) : 어떠한 아이디어, 행동 또는 물체에 대한 강한 반발을 뜻하는 단어로, 성평등 및 젠더 운동 등의 흐름에 반대하는 운동 및 세력을 "백래시"라 부른다.)




헤이조이스에서는 매달 프리미엄 컨퍼런스 Con.Joye가 열립니다. 헤이조이스 인스파이러와 직접 대화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홈페이지에서 투어 신청을 해주세요!


▼ 투어 신청하러 가기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헤이조이스 인터뷰 - 이머징리더십인터벤션즈 장은지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