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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조이스 Mar 31. 2022

커리어 목표가 없어도, 전혀 불안하지 않은 이유

가수 겸 미국 변호사 이소은 님 인터뷰



이소은 님 | 가수 겸 미국 변호사

- 전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 (뉴욕지부 부의장)

- 전 뉴욕 소재 로펌 소송 및 중재 전문 변호사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저자




Q. 지금은 뉴욕 법조계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계시지만 ‘이소은' 하면 아직 가수의 모습으로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 같아요.


헤이조이스에 20대, 30대 분들이 많이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그분들이 제 첫 커리어를 기억하실지 사실 자신이 없네요. (웃음) 중학교 때 가요제 무대에 선 저를 윤상 씨가 스카우트해 8년 정도 가수 활동을 했어요.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셨고, 운이 좋게도 주목받는 삶을 살았어요.



Q. 보통 한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면 그 속에서 성장을 꿈꿀 텐데, 다른 길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음악을 너무 사랑하고 무대 위에서 행복했어요.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하지만 8년 정도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다 보니 ‘내 인생에 더 많은 가능성이 숨어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었어요. 지금 이곳에서의 성공에만 머물러 있다면 삶을 더 확장시킬 수 없을 것 같았죠. 제 가능성을 스스로 저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Q. 많은 학문 중에서 ‘법'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한데요.


대단한 사건을 통해 변호사가 되어야지 다짐한 건 아니었고,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적용했어요. 음악을 깊게 공부하기도 했고, 스스로도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대되는 학문을 배워보고 싶었죠. 또 아버지가 정치학 교수를 하셨던 독재 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부당 해고를 당하시고 몇 년간 소송으로 이어진 그 사건이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한 얘기를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이때 법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고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의 가장 바탕이 되는 학문이란 걸 깨달았죠. 이러한 이유들이 저를 로스쿨로 이끌었고 3년간 정말 죽어라 고생했어요. (웃음)


당연한 얘기겠지만 막상 로스쿨에 가보니 저처럼 어중간한 마음으로 입학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어요. 95% 이상이 법조인이 되려는 명확한 꿈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한 학기가 3개월 정도 되는데, 다들 한 학기를 마치고 취업 준비를 하더라고요. 이때 또 한 번의 혼란이 왔어요. 다들 5년 플랜, 10년 플랜을 명확히 세우고 있는데 나는 뭐하고 있나 싶었거든요.





Q. 하지만 결국 변호사가 되셨어요.


주위에는 명확한 목표를 가진 사람이 가득하니, 이 분위기에 왠지 휩쓸려 나도 그들처럼 행동해야 할 것 같았던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당시의 저는 제가 가장 많이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선택을 하자는 마음이었어요. 남의 인정보다 나의 인정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마케터님도 어떤 뚜렷한 계기를 통해 ‘나는 꼭 마케터가 되어야지!’ 하고 생각하셨나요? 네, 저도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힘이 닿는 한 많은 문을 두드리다 보니 길이 열린 것뿐이에요. 올해 제 두 번째 책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가 세상에 나왔는데요. 거기에서 한 문단을 옮겨오고 싶어요.


현대인은 한 방향을 보며 나아가는 사고방식, 즉 ‘선형적 사고(Linear thinking)’에 익숙해져 있다. 시작점을 찍고, 그 점을 기준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직선을 그리며 우리 삶과 커리어의 방향을 잡는다. 이 패턴에서 벗어나면 바로 마음이 불편해지고, 왠지 모르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고, 실패할 것 같은 불안감이 찾아온다. 하지만 꼭 직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 때론 둥글게, 때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때론 새로운 점을 찍고, 때론 대각선을 그리며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일 텐데 말이다.



Q. ‘이소은'하면 따라붙는 수식어가 ‘엄친딸'이에요. 하지만 보수적인 뉴욕 법조계에서 여성, 동양인 변호사로서 일하는 게 사람들의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맞아요. 소수자의 정체성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것을 더블 마이너리티(Double minority)라고 하는데요. 뉴욕 법조계가 개방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백인 남성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죠. 특히 매니저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그 성향이 뚜렷해져요. 비즈니스 스쿨이나 로스쿨 졸업생의 성비를 보면 남녀가 비슷한데 리더 자리까지 가는 여성은 드문 거죠. 저는 지금 리더 자리에 있는 백인 남성들이 유독 차별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일부러 편견을 가지지 않아도 나와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을 보면 거부감이 덜 하고 유대감이 생긴다는 거죠. 그래서 더더욱 여성, 소수인종이 리더의 자리에 올라야 무의식적으로 편중된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거죠.


뉴욕 법조계에 있으면서 이러한 ‘무의식적 편견'을 자주 느꼈고 좌절도 했어요. 하지만 좌절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알았죠. 그래서 무너져내리는 대신 어떻게 하면 내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일을 하면서 동양 여성이 저 혼자인 경우를 만나면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지금은 동양인 여성이 나 하나뿐이지만 앞으로 3명, 6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좌절감과 치열한 고민 그 자체를 동력으로 삼았던 거 같아요. 



Q. 이 시기의 소은 님에게 힘을 가져다 주었던 문장이 있다면?


어느 곳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모든 곳에 속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알 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뉴욕에서 일을 하면서 소속감에 대한 의문이 늘 따라다녔어요. 재미교포도 아니고, 유학생도 아닌 정체성과 제가 가진 너무 강렬한 두 개의 직업 사이에서 혼란을 경험하기도 했죠. 제 책에 소속감에 대한 여러 생각이 공유되어 있는데요, 제 책에 인용한 마야 안젤루 시인의 말을 제 삶에 적용하려 노력했어요.




이소은 님이 10년의 간격을 두고 출간한 2권의 책



Q. 이번 강연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제가 일을 하면서 마주한 도전과 어려움을 저에게 충실한 방식으로 풀어낸 경험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나다운 삶이 어떤 건지에 대한 생각, 자신을 제한하는 틀을 없애려 노력한 이야기, 사내 정치를 항해하면서 정립하게 된 마인드 컨트롤의 방법.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가장 좋은 조력자가 될 수 있는 팁과 가장 자연스럽고 당당하고 나에게 맞는 프로페셔널의 모습을 만들어가려 노력했던 과정을 여러분과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싶네요. 친한 언니, 친구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이소은 님 강연이 궁금하다면! 


https://bit.ly/3IRvyS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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