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 인터내셔널 스토리텔링 디렉터 정김경숙 님
일만 하기도 힘든데, 집에 가도 끝나지 않는 육아 퇴근.
"엉엉~ 일하기도 어려운데 엄마 노릇도 잘하라고?” vs “엄마 일 하는 거 보이지? 저 쪽 가서 놀고 있어~!”
당신은 워킹맘인가요, 맘워킹인가요?
구글 인터내셔널 프레스 총괄 로이스(정김경숙) 님이 20여년 간 아이를 키우며 일하며, 경험으로 길어 올린 꿀팁 4가지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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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으로 살면서 그야말로 “피가 꺼꾸로 솟는다”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냥 지금 10초만 생각해도 에피소드 세 개가 바로 떠오르네요.
에피소드 1.
아이가 성적표를 갖고 왔다. 초등 1학년일때라 석차가 나오지는 않고 퍼센트로 분포도로만 표시된다. 다만 학급 학생 수가 스무명 남짓이라, 정규분포 가장 높은 꼭지에 있지 않는 한 대충 안다. 워낙 뒤쪽이라 아무 말 안 하고 속으로 꾹 참고 있는데 아이가 천진하게 말한다. “엄마 내 뒤에 두 명이나 있어!” ���
에피소드 2.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야근을 마치고 힘든 집으로 향한다. 하루종일 이모할머니랑 시간을 보낸 아이에게 미안해하면서 오늘은 가서 놀아줘야지, 하고 생각하며 집에 왔는데, 알림장을 확인하는 순간! 뭐라고? 내일 아침까지 갖고 갈 준비물이 있다고? 지금 시간엔 문방구는 다 문닫았는데... 엄마한테 낮에 전화를 했어야지!!! ���
에피소드 3.
아이 방문을 열었다. 바지, 후드티는 뒤집어서 훌렁훌렁 방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책상 위에는 언제 먹었던 건지 아이스크림 종이 껍질이 일부는 찐득찐득하고 일부는 책상 바닥에 착 들러붙어 판박이 스티커가 되고 있다. 책상 옆 쓰레기통에는 ‘엽떡’에서 시켜먹다 남은 떡볶이 통이 있고, 고추 양념 잔뜩 묻은 오뎅 몇 조각이 말라 비틀어져 있다. ���
이런 종류의 ‘폭발’은 전혀 면역이 안 되는 게 특징이지요^^. 저도 엄마는 처음 해 봤고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동안 ‘워킹맘’과 ‘맘워킹’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아 이런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경험들을 모아보았습니다.
“엉엉~ 일하기도 어려운데 엄마노릇도 잘하라고?” 하는 워킹맘과 “엄마 일 하는 거 보이지? 저 쪽 가서 놀고 있어~!” 하는 맘워킹의 사이에서 얻은 팁 네 가지!
팁 1. 마음가짐입니다.
평소 속칭 ‘알파맘'은 없다, 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 일도 잘하고, 육아 혹은 집안일도 잘하는 엄마. 지난 육아 과정을 돌이켜보면 그냥 내 수준에서 아이에게 잘하자, 행복한 아이를 만들어주자, 라는 생각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는 제가 아이를 '방목'했다고 말합니다. 가능하면 타이트한 컨트롤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직급이 올라가는 것과 비례해서 업무량과 책임은 많아져서 힘들고, 또 집에서는 어린이에서 저학년으로, 또 진학을 앞둔 고학년으로 아이가 자라나며 엄마로서의 부담이 커져만 갑니다.
이 상황이 힘든 건 당연합니다. 회사에서도 100점, 집에서도 100점을 하려고 욕심 내지 않았고, 그에 따른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팁 2. 가족여행 말고, 아이랑 1:1 여행을 다녀봅시다.
평일엔 회사 일 마무리하고 급하게 집에 오면, 저녁 밥 챙겨먹고 간간히 집안일도 해가며 애 숙제 봐 주고, 그러다가 몇 번 다그치고 나면 하루가 지납니다. 주말도 미리 계획을 하지 않으면 미뤄놨던 집안 일, 툭툭 생겨나는 집안 행사들 챙기고, 애도 이런저런 시험을 치면서, 아이랑 깊은 대화를 못하고 한 달 두 달이 훌쩍 지나가게 됩니다. 아이랑 소통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말보다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벽에 전국 지도 한 장 붙여 주고 늘 가고 싶은 곳을 찍으라고 했습니다. 어떨 땐 부산, 전주, 광주 같은 큰 도시를 찍지만 금산, 여주, 동해 같은 작은 소도시도 정말 랜덤하게 선택합니다.
그 곳으로 아이랑 1:1로 여행을 떠납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1박 2일이 원칙입니다. 꼭 가족이 운영하는 민박을 선택했고, 슬로우 여행이 원칙으로 삼아, 항상 버스나 기차를 타고 지방에 가서 하루에 네댓 번 운행하는 시내버스 혹은 마을버스를 기다리면서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많이 걷습니다. 시장에 들려서 이런저런 나물을 사고, 시장 국수 한 그릇 사 먹습니다.
불편한 여행이지만 따뜻한 구들장에서 두런두런 얘기하고, 친절한 민박 주인집이 주시는 옥수수를 먹으면서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사실 어떨 때는 아이랑 엄마랑만 다니니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싱글맘인가 싶어 더 친절하게 잘해주시기도 합니다.
버스에서, 시장에서, 거리에서, 민박집에서 여러사람들을 만나면서 아이는 사람이 사는 모습을 알게 됩니다. 제가 본 것을 아이가 봅니다. 제가 느낀 것을 아이도 경험합니다. 이런 공통점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자녀와의 관계가 힘들다고 하는 엄마들에게 지금도 아이와의 단둘이 여행하기를 권합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할 수 있겠지만, 둘이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나누게 됩니다. 단, 여행지는 아이에게 고르도록 합니다.
물론 아이가 사춘기일때는 함께 여행하는 것에 위기도 있었습니다. 하루에서 기분이 수시로 바뀌는 호르몬 왕성한 '중2' 아이랑 24시간 있는 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아이는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한나절 내내 말 한 마디 안합니다. 내가 왜 얘랑 여행을 왔나... 내 발등을 찍고 싶을 때가 하루에도 수십 번 있었지만 (겉으로는) 그러려니 하고 다녔고 (속으로는) 엄청 상처받으면서 여행을 계속 했습니다.
아이가 크면서 농활도 함께 가고, 지역에서 하는 음악회나 영화제도 함께 갑니다. 이런 공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22살 청년은 엄마가 길거리에서 손 붙잡고 걸으려 치면 싫은 척 안하고 손 붙잡아주고 항상 전화 끊을 땐 “사랑해~”라고 말하는 모자 관계가 된 것이 아닐까 ‘아전인수' 해석합니다. ^^
팁 3. 아이가 배우겠다고 할 때는 다 하게 했습니다.
다만 중요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최소 2년을 해야한다.
저의 아이가 6살쯤 됐을 때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마 유치원에서 바이올린 켜는 친구를 알게 됐나 봅니다. 오케이, 좋은데, 한 번 시작하면 2년은 해야 한다고 말했고, 아이는 그렇게 했습니다.
모든 것을 할 때마다 최소 2년을 채웠습니다. 아이가 영어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할 때도,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할 때도, 축구교실을 다니고 싶다고 할 때도, 아이스 스케이팅을 배우고 싶다고 할 때도 그랬습니다. 아이에게도 자기 의사 결정에 대한 책임을 주고 싶었고, 또 최소 2년 정도는 해야 본인이 좋아하는지 혹은 잘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실하게 2년을 채우는 건 중요하지만,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전혀 주지 않습니다. 동네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점심 먹은 다음부터 밤 10시 학원 문 닫을 때까지 학원에서 살더라고요. 학교나 집에서는 한 가지 일에 10분 이상 집중을 못하는 아이였는데, 피아노 원장 선생님이 “필립은 피아노방에 들어가면 나오질 않아요, 이렇게 집중하는 애는 처음 봤어요”라고 칭찬합니다. ‘아, 아이가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이렇게 다르구나’를 느끼면서 감사했습니다. 암튼 운좋게도 아이는 피아노를 치면서 진심으로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고 또 소질도 찾게 되었습니다.
팁 4. 가족일기를 씁니다.
모두가 바쁩니다. 남편도 바쁘고, 나도 바쁘고, 아이도 바쁩니다.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 볼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마주쳐도 얘기다운 얘기를 할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얘기할라치면 금세 훈계조가 되거나 말싸움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가족일기를 썼습니다. 구글 닥스(문서)를 열어서 매일매일 본인의 하루를 아주 짧게라도 정리합니다. 구글닥스는 함께 공유한 구성원이 함께 쓰고 볼 수 있는 온라인 문서입니다. 별 것 없는 날은 안 쓰고 넘기지만, 대부분 아주 짧게라도 씁니다. 매일매일 얼굴 보고 얘기를 못 해도 항상 같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한 해 동안 일기장을 쓰면 거의 백 페이지가 넘어갑니다. 한 해 일기가 끝나면 새 파일을 열어서 새해를 시작합니다. 물론 지금 물어 보면 아이는 그 당시 그 일기에 안 쓰는 내용도 많았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연말에는 1년치 일기장을 주루룩 보면서 '아, 올해 이런 일이 있었구나' 라고 얘기를 나눕니다. 최근에도 아이가 학교 숙제로 음악에 관련된 글을 써야했는데, 예전 일기장을 들춰 보고 스페인 여행 갔던 부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십여년 전 얘기가 아직도 아이 가슴에 살아있는 게 기뻤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니 한 편으론 자식 자랑 같이 들릴 것 같아 죄송하네요. ^^ 아직도 저는 워킹맘과 맘워킹 사이에서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지금도 가끔 아이에게 묻습니다.
행복해? 점수로 치면 몇 점 같아?
90점은 넘어.
이 정도면 다가 아닐까요? 이 편지에는 본인 흉 보는 내용이 꽤 들어 있어서, 아이에게 원고를 보여주며 프라이버시에 해당되는 것 있으면 빼겠다고 했는데 다 괜찮다고 합니다. 쿨한 녀석! 엄마의 양육 방식에 대해 한 마디 해달라고 하니 이렇게 말하네요.
음... 좋았어. 그 중에서도 내가 배우고 싶은 걸 배우게 해 준 거.
매일 저녁 6시 30분에는 아이랑 행아웃으로 화상 통화를 합니다. 언제부턴가 저보다 먼저 화상 통화방에 들어와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 ‘불확실한 미래의 성공’보다 ‘지금 이 순간의 작은 행복’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다음주에는 <죽을 때까지 괴롭힐 것 같은 영어 인생>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한 주 건강하시구요.
2020년 4월 12일
로이스 올림
loiskim2020@gmail.com
*새로 듣기 시작한 팟캐스트 : Carin Rockind님의 Purpose Girl (제목은 진부하지만 듣고 있다보면 중간중간 허를 찌릅니다. 그리고 영어를 또박또박 말해서 산책하면서 들으면 영어공부 삼아 듣기 좋습니다.)
*4월에 읽고 있는 영어책 : The Debt (구글플레이에서 무료여서 다운 받아서 읽고 있는데 완전 하이틴 로맨스네요. 중학교때 느꼈던 가슴 설렘은 아직도!? 호불호가 갈릴 것 같아서 '강추'는 아닙니다!)
*’집콕’ 하면서 열심히 따라하는 운동 : 써니님의 피트니스 댄스 (‘마음은 박남정인데 몸은 조영남’인 사람들도 따라하기 쉬운 동작. 30분 열심히 따라 하다보면 5천보 기록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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