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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백조 Apr 03. 2023

꿈을 다시 보다.  

“엄마, 나 축구선수 될래. 엄마가 원하는 서울대는 못 가더라도 FC서울은 들어갈게.” 


12살이 된 아들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생각해 본 적 없던 단어가 툭 튀어나온다. ‘축구선수' , '국가대표‘. 못 들은 척하였지만, 실은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 운명이 다가오는 것인가 싶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발에 걸리는 물건은 모조리 다 차고 다니던 아이였다. 발도 워낙 빠른지라 밖에만 나가면 내 시야에서 쌩 사라지기 일쑤였다. 숨을 헐떡거리며 쫓아가려 해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나도 어릴 적에 달리기라면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았는데, 이 어린 꼬맹이 하나 어찌하지 못하다니 세월이 야속할 뿐이었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뛰는 아이를 뒤에서 바라보며 죽어라 목청 높여 소리 질러대는 일뿐이었다. 


“거기 서~! 당장 서지 못해!”




클럽을 보내면 진짜 축구선수가 될까 두려워 보내지 못했다. 운동삼아 집에서만 놀게 하자라는 마음으로 사준 공은 거죽이 벗겨지거나 찢어지거나 했다. 아이에게 맞는 길인지 아니면 아이가 그냥 공을 좋아하는 것인지 재차 확인하고 싶어 농구공과 야구공도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완강했다. 발에 닿는 공의 느낌만 좋다고 했다.   




어릴 적에 나도 그리 소원하던 꿈이 있었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나만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표가 되고 싶었다. 유난히 침대에서 늑장 피우며 꼼지락거리는 것을 좋아했기에 주말이 되면 오후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뒹굴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햇살이 창문을 타고 침대에 부서지면 이불속을 파고 들어가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주로 30대가 된 나를 주인공 삼았고, 주 무대는 밝은 빛이 넘실대는 사무실이었다. 그곳에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상들이 즐비해 있었고, 자유로운 복장의 사람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여러 책상이 있는 공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는 작은 집무실이 있었다. 그곳에는 세련된 슈트를 입은 여성이 다리를 꼬며 책상에 앉은 채 테이블 위에 늘어져 있는 여러 잡지책을 보고 있었다. 가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길 때는 긴 웨이브의 머리가 찰랑찰랑 흔들리기도 했다. 진하지 않은 화장을 한 하얀 얼굴은 깐깐해 보이면서도 멋스러웠다. 딱히 온화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랑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지적인 여성처럼 보였다. 내가 만들어낸 미래의 나였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바람 때문에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나의 엄마도 지금의 내가 아들에게 한 것처럼, 처음에는 나의 꿈을 거부하였다. 미술로 중학교를 가보는 것은 어떨지 이야기 건넨 미술학원 원장님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고, 이후 미술학원 근처를 다시는 가보지 못했다. 고등학생이 되니 디자이너의 꿈이 더욱 커졌다. 매일 그림 그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엄마, 난 그림을 그리고 싶어. 미술학원 보내줘. 진짜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공부도 잘해볼게. 꼭 해볼래."


오랜 시간 설득하였다. 어느 날, 끈질긴 나를 이길 수 없다는 듯이 엄마가 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해봐. 그런데 엄마는 미술학원만 보내줄 수 있어. 남들처럼 과외까지 곁들이면서 공부 뒷바라지 못해. 근데 공부 못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될 것 같아. 그러니까 이번 시험에서 성적 떨어지지 마. 그게 너의 평균 성적이라 생각하고 미술학원 보낼지 고민할게.”


세상을 다 가진 듯 신나서 야호, 야호가 절로 나왔고, 함박웃음이 몇 날 며칠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꿈에 다가가나 싶었다. 


엄마의 허락이 떨어진 후 일주일 뒤, 할머니가 보고 싶어 외갓집에 다녀오겠다던 엄마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순식간에 나락으로 빠졌고, 모든 것을 잃었다. 나의 꿈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과거의 나와 엄마의 모습이 계속 떠오르며 꽁꽁 잠가두었던 마음의 빗장이 한 번에 스르륵 풀리는 것 같았다. 아들 소원대로 꿈을 향해 함께 가보기로 했다. 


이제는 아들의 꿈을 듣고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나의 엄마도 딸이 꿈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시큰거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안이 찾아올 때도 있다. 나처럼 아이의 꿈도 불현듯 사라지게 될까 봐 무서워진다. 그래서 기도한다. 적어도 아이의 꿈이 나로 인해 갑자기 사라지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언제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꿈꾼 대로 걸어가 보았기에 후회하지 않노라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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