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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백조 Mar 28. 2023

애도의 시작

오래 묵혀둔 상처의 흔적들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소중한 것이 ‘느닷’, ‘갑자기’, ‘홀연히’ 떠나면 상실의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것이 무섭다. 



18살, 어느 일요일 아침, 외갓집에 다녀오겠다던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24살, 영국에서 지내던 어느 날, 아빠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빠를 뵈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실오라기 같은 한 줄기의 희망을 놓고 애원했다. 그러나 아빠는 도착한 딸의 손을 잡자마자 숨을 거두셨다. 

나의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이 ‘느닷’, ‘갑자기’, ‘홀연히’ 내 곁을 떠났다. 


첫 아이를 낳아 기르고, 사랑이 커질수록 ‘잃어버림’에 대한 두려움이 거세게 다시 밀려왔다. 


아이가 80일이 되었을 때, 시누이 손에 잠시 맡기고 외출했다가 사고가 생겨 병원에 일주일 입원했었다.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이 다가올 때쯤에는 TV 장식대에 올려놓은 뜨거운 커피잔을 잡아당겨 화상을 크게 입었다. 2주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듯했다. 감사하게도 무탈하게 퇴원했지만, 그 후로도 오래 치료받았어야 했다. 그뿐인가 이곳저곳 꿰맨 상처도 여럿이다. 


나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생기니 또 빼앗으려는 건지, ‘느닷’, ‘갑자기’, ‘홀연히’ 내 곁에서 사라질까 무서웠다. 순간순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그랬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씩씩하게 잘 이겨낸 것처럼 웃으며 지냈다. 그러다 누군가 톡 건드리기만 하면 이유 없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꽁꽁 묶어 감춰둔 무서움과 두려움, 그리고 서러움이 한 번씩 크게 폭발했다. 


‘우리가 삶의 여행의 진정성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뿐이다.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아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대로의 오래된 두려움이 그 적이다.’
- 나를 숙고하는 삶(제임스 홀리스) 중에서 -


지금 아이는 잘 크고 있다. 자신의 꿈도 갖고 하루하루 삶의 크기도 키워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소중한 것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에서 벗어났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내 삶 챙기는 것이 바빠지고, 어려워지니 생각이 그리고 시선이 다른 곳으로 점점 이동해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위험한 상상에서 조금씩 풀어지는 것 같다. 문득 오래도록 나를 지배해 온 두려움이 튀어나오긴 해도 예전과 같은 강도가 아닌 것을 보면 그런 것 같다. 


아직 어려서부터 키워온 두려움에서 온전히 회복되는 방법을 모르겠다. 그냥 바랄 뿐이다. 고통을 경험하지 않고 살고 싶다고. 그러나 나의 선택은 결국 회피하는 것이다. 소중한 것을 만들지 않고 사는 것. 그래야 상실도, 슬픔도 없을 테니. 선량한 척 하지만 지독한 개인주의이고 비겁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똑같다. 외롭게 버려지는 것. 


*아이의 경우, 소중하지 않다고 취급하는 것은 어렵다. 평생 풀 수 없는 숙제일 것이다. 심리적인 거리를 두어 아이에 대해 무뎌지는 것을 소중하게 만들지 않는 것과 동일선상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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