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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백조 May 17. 2022

새벽 감성

우리 집 아이들은 간혹 일찍 잔다. 그런 날이면 함께 잠이 들었다가 새벽 3~4시쯤에 스르륵 눈이 떠진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기에 칠흑 같은 어둠 속 소음 하나 섞이지 않은 고요함, 적막함을 붙잡으려 반사적으로 이불을 걷어차며 몸을 일으킨다.


거실 불은 켜지 않는다. 대신 책상 스탠드로 새벽의 무드를, 나만의 낭만을 만든다. 그리고 뜨거운 믹스커피를 만들어 한 모금을 넘기면 나의 새벽, 나의 첫 시작은 완벽하게 채워지고 내 몸 안에 남아있는 잠 기운도 달아나 버린다.    


그다음 책상 앞에 앉아서 못다 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노트북을 켠다. 다른 문서를 꺼내기 전 유튜브부터 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일할 때는 분위기를 만져줄 음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그날의 나의 리듬에 맞는 음악을 찾아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것에 어느 정도 시간을 할애한다. 특히 적막한 새벽에 홀로 있을 때 음악은 너무나 중요하다. 주어진 몇 시간을 제대로 쓸 수 있게 하기도 하고, 버리게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벽 음악을 고를 때에는 나의 마음 상태를 빠르게 감지한 후 이에 맞는 음악을 찾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얼마 전 새벽에도 열심히 오늘의 음악을 찾고 있었다. 가장 먼저 유튜브 메인 페이지에 주르륵 펼쳐진 오늘의 추천 영상을 먼저 살펴보았다. 나의 지난 서칭 스타일을 자체적으로 분석하여 추천한다고 하니 신뢰를 안 할 이유가 없다. 혹자는 이 알고리즘으로 내 영혼도 상업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음악만큼은 내 취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이상의 것을 앞에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도 유튜브 알고리즘이 선사한 음악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몇 개를 골라 앞 소절만 들어보고 스르륵 스크롤하며 내려가던 중 어느 가수 이름에 멈춰 섰다. ‘Cigarette after sex’. 언젠가 회사 동료를 차에 태우고 집에 가던 길에 동료가 틀어준 노래였다. 처음 듣자마자 촉촉하게 젖어드는 마성의 목소리에 홀렸던 기억이 살아나 플레이를 눌렀다.


Cigarete after sex의 노래 중 ‘Apocalypse’는 딱 내 취향이다. 이 그룹의 다른 노래들은 어떨까 싶어 전체 플레이 리스트를 계속해서 듣는데 마음이 쉼 없이 계속 말랑말랑해졌다. 이런 날은 일을 하면 안 된다. 아니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고 잠시 어린 시절 내가 머무르던 자리들로 여행을 떠났다. 홀로 베일리스를 마시며 밤을 보내고 있는 기숙사 방. 안개 낀 아침에 축축한 땅을 밟으며 학교 가던 길. 어느 재즈 바에서 끈적거리는 중저음의 ‘Temptation’을 처음 듣고는 반해 마비가 올 것만 같았던 느낌. 함박눈이 내려 순백색이 된 세상에 첫 발자국을 찍고 세상에 나의 흔적을 남겼다며 행복해하던 모습. 횡단보도 건너편에 보이는 친구를 보고 기뻐서 손을 흔들며 뛰어가는 장면 등등. 꼭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공간, 시간, 감정, 표정 모두가 스냅샷처럼 떠오르며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이렇게 잘 만난 음악 하나는 잊고 지냈던 나를 다시 만나게 해 준다.


음악 하나에도 작은 추억들이 주르륵 소환되다니 다행이다 싶다.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 없는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작은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어 참 다행이다 싶다.


한참을 옛 시절의 나를 만나고 나니 새벽이 걷히는 느낌이 들어 창문을 열어보는데, 아침 햇살이 눈이 부시게 쏟아져 거실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사이를 시원한 바람이 비집고 들어와 나를 치고 간다. 그 느낌이 좋아 밖을 내다보니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 나뭇잎도 바람에 찬란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 짧은 순간의 풍경이 나의 기분을 설레게 한다. 이 순간이 또 하나의 작은 추억으로 남겠지. 한 참 후 나의 귀에 머물게 될 노래가 이 순간을 기억해주겠지 싶은 것이 아주 잠시지만 온전히 내가 되고, 하루를 살아갈 이유가 된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삶이 뭐 별거인가, 주어진 것을 잘 느끼고, 누리며, 작은 추억들을 하나하나 쌓아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 삶이지. 내 삶은 이렇게 또 작은 추억들로 풍성해지고 있으니 충분하다.



새벽부터 이어진 적막과 혼자만의 시간을 깬 것은 방에서 ‘엄마’를 외치는 아이의 목소리이다. 함께 자던 엄마가 없어졌다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려는 것이거나, 더 자고 싶어 엄마 품을 애타게 찾는 것이거나 하는 의식이다. 곧이어 또 다른 아이의 소리도 들린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은 현실의 나로 돌아갈 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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