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매일 꿈을 꾼다. 아주 어려서부터 줄곧 그래 왔다.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대통령을 만나 악수도 하고, 만화 주인공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 곳을 거닐며 깔깔 웃기도 한다. 마치 잠이 들기 전의 세상이 끝나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 또 다른 삶을 사는 사람처럼.
나를 닮았는지 내 아이들도 꿈을 자주 꾸는 것 같다. 가끔 자다가 웃기도 하고, 슬퍼 흐느끼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따라 웃고, 따라 슬퍼진다.
#1. 엄마의 즐거운 꿈
어렸을 적에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라는 만화를 무척 좋아했었다. 특히 강물 속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대범함을 가진 태권도 소년 마루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어느 날, 그토록 좋아했던 마루치를 꿈에서 만났다. 아라치를 물리치고 내가 마루치의 단짝이 되어 마루치가 물고기를 잡으며 놀던 그 강에서 함께 놀았다. 그곳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어 고요했다. 졸졸거리는 물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고,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살랑 흔들릴 때 들릴 법한 소리 하나 없었다. 오로지 마루치와 강물에 발을 담그고 뜰채로 물고기를 잡으며, 알콩달콩 노는 것에만 집중했다. 얼마나 좋았는지 ‘깔깔깔’, ‘호호호’ 웃음소리만 끊이지 않고 계속 들렸다.
‘얘야, 일어나라 쪼오오옴! 해가 중천에 떴어!’
꿈에서 한창 놀고 있는데 엄마의 쩌렁쩌렁한 소리가 날아와 내 귀에 떨어진다.
‘안돼. 안돼. 지금 안되는데..’
눈을 뜨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마루치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다시 잠이 들면 만날 수 있으려나 잠을 억지로 청해봤다. 너무 늦으면 마루치가 기다리다가 집에 가버릴까 숫자를 급하게 세어보기도 했다. 하나. 둘. 셋. 넷.... 그러나 소용 없었다. 잘 가라는 인사도 못 했는데 이렇게 아쉽게 헤어지다니.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그 후로 매일 밤 기도했다.
‘오늘도 마루치를 만나게 해 주세요. 한 번만 더 마루치와 놀게 해 주세요.’
그러나 난, 더 이상 꿈에서 마루치를 만날 수가 없었다.
#1-1. 아들의 꿈
잠을 자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소리 내며 크게 웃는다. 뭐가 저리 좋을까 나도 따라 웃게 된다. 내가 어릴 적 꿈을 꾸며 또 다른 세상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던 것처럼, 아들도 그러겠지. 참 다행이다 싶다. 온종일 맘껏 놀지 못해 심심한데 엄마는 TV도 못 보게 하고,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게만 한다고 외쳐대는 통에, 크게 꾸지람 날려 마음이 찜찜했었는데. 꿈에서라도 재밌고 웃을 일이 있다니, 엄마와의 일도 곧 잊을 수 있겠다 싶은 것이 좋지 않던 마음이 싹 걷힌다.
#2. 엄마의 슬픈 꿈
어릴 적 우리 집은 주말만 되면 가족 모두가 거실에서 함께 잤다. 9시 뉴스가 끝나고 나면, 엄마가 안방에서 5명 식구가 누울 수 있는 양의 요와 이불을 가지고 나와 가지런히 깔아놓았다. 우리 3형제는 누가 엄마 아빠 옆에 누울 것인지 투닥투닥 대며, 요 위를 휘젓고 다니다가 각자의 자리를 잡고 스르륵 잠들곤 하였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 자는 그 시간을 나는 무척 좋아했다.
여느 때와 같이 가족들과 함께 자던 어느 토요일 밤, 첫 악몽을 꾸었다. 아빠와 함께 기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고 있었던 것 같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리려고 일어섰는데, 아빠가 누군가에게 끌려갔는지, 사라졌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빠가 나에게서 멀어졌다. 웃음기 하나 없던 어두운 표정의 아빠, 온통 검은 빛이었던 주변, 지하철에 무표정으로 앉아있던 몇몇 안 되는 사람들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아빠! 아빠!’ 수없이 외쳤지만, 아빠와 접촉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꿈의 장면이 바뀌어 나의 집 파란 대문 앞.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제야 아빠가 더 이상 나와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밀려오면서 가슴이 무너졌다. 꿈이었지만, 심장이 도려 나가는 것 같은 참혹한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공간에서 ‘아빠!’, ‘아빠’를 부르짖으며 꺼이꺼이 통곡하는 소리만 남았다.
그 비통의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는지, 엄마가 괜찮냐며 안아 주었다. 꽤 오래 진정이 되지 않아 엄마 품에 안겨서도 한참을 더 울었다. 그러다 옆을 돌아보니 아빠가 주무시고 계셨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꼭 진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몸과 마음이 저릿저릿했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그 꿈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아빠를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서 혼자 가슴속에 꽁꽁 숨겨 놓았다.
#2-1. 딸의 꿈
딸아이가 옆에서 자고 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는지 너무나도 서럽게 운다. 그 옛날 엄마가 나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괜찮다, 괜찮다 하며 안아주었다.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지 계속 구슬프게 운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눈을 뜨며 나를 쳐다본다. 눈물을 닦아주며 딸에게 물어본다.
‘무슨 나쁜 꿈을 꾸었니?’
‘엄마를 잃어버렸어. 놀이터에서 놀고 나서 엄마를 찾았는데 엄마가 없었어.’
그 옛날 내가 아빠를 잃어버린 꿈을 꾼 것처럼, 지금 내 아이는 나를 잃어버리는 꿈을 꾼다. 아이에게 어떤 안심의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한마디를 꺼낸다.
‘엄마는 네 옆을 오래오래 떠나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