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협력’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단어에서 풍기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깊어질 일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보면 끈끈한 관계가 되어 완전한 내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아름답게 흐르는 연대의 결실을 꿈꾸었지만 매번 실패했다. 겪을 때마다 마음이 어렵고 외로웠다.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그랬다.
일상에서 처음으로 ‘연대와 협력’을 실험해 본 것은 경력단절 여성들의 이야기를 팟캐스트로 만들 때였다. 나를 포함 당사자 셋이 모여 육아와 돌봄때문에 경력을 이어갈 수 없었던 여성들이 다시 사회로 나와 자신의 위치성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사이드 프로젝트였다. 수년 동안 경력이 끊어진 채 지냈지만 다시 일하게 된 우리 셋의 열정은 활활 불타올랐다. 그러나 일과 가정을 병행해가며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해가 거듭될수록 일의 난이도가 깊어지고 해내야하는 수준과 강도가 세지면서 시간 쪼개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곧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틈도 없이 해내야하니 기계적으로 일을 쳐내고 있었다. 보수만 없을 뿐 회사 일 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그러다보니 시들해지고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어졌다.
두 번째로 엄마들이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키면 좋겠다는 마음에 뜻을 함께한 동료와 레퍼런스를 모아 발행하는 뉴스레터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초반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때마다 기쁨과 희열로 가득했다. 서로 바라만 보아도 기분 좋은 웃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관계가 건조해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신경전도 생겼고 소통도 점점 막혀갔다. 누구 하나 손을 먼저 내밀지 못하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점점 더 각개전투가 되었다. 결국 동료가 장문의 이별 메시지를 보내왔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황한 것도 잠시, 몇 번을 읽으며 상대가 느낀 부족한 나를 직면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 순간 질문 하나가 나를 때렸다. ‘연대와 협력’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잘해보고 싶다며 공부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왜 매 번 사람이 떠나니?’ 동시에 ‘연대와 협력’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왜 나는 번번이 실패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돌아보니 살아오면서 ‘연대와 협력’을 배울 기회나 경험해 볼 기회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반장, 부반장, 서기와 같은 직책으로 서열 속 권력을 먼저 배웠다. 집에서는 가부장적 사회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아버지는 하늘 어머니는 땅이라며, 그래야 가정이 잘 돌아간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직책에 따라 피라미드 계층 구조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다. 다시 말해 오늘의 동지는 내일의 적이 될 수 있고, 오늘의 동료는 내일의 상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편적으로 생각하던 때를 지나왔다. 이러한 환경에 오래도록 노출되어 자랐기 때문일까? 나는 자연스레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기득권 또는 주도권을 쟁취해야 내가 무리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자리 잡혀 있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다.
배려도 그렇다. 나는 항상 배려를 우선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서열/권위에 무감각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오만이었다. 생활 습관, 삶의 방식, 태도 등 살아온 문화와 생각이 다른데 그 배려가 상대방에게도 내가 원했던 그 배려로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꼬장꼬장한 꼰대가 나이스한 척 한들 그 거죽을 벗어낼 수 있었겠나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물질적인 보상 없이 열정 하나로 선한 영향력을 위해 걸어가는데 성과중심적인 사고로 똘똘 뭉쳐 있는 나를 해체하지 않고 ‘내가 맞네, 네가 맞네’하며 최고의 정답만 끌어내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 배를 타고 함께 간다면 배가 흔들렸을 때 중심 잡는 법을 고민하고 각각의 역할을 스스로 충분히 잘해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서로 믿어주며 가야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 무한 경쟁 시장에 휘둘린 사람의 끝을 보는 듯 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경험이 없었기에 생긴 값진 실패라고 에두르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단시간 내 터득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어려서부터 ‘연대와 협력’의 문화를 배우고 익혀야만 내 안에, 내 삶에 체화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러려면 나의 생활방식과 사고하는 습관을 바꾸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먼저 우리 사회 시스템이 ‘연대와 협력’의 구조로 바뀌어야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