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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그림자 찾기!

꼭꼭 숨어도 보이긴 하더라

by 물비늘

나는 안 좋은 버릇이 있다. 세상 착한 사람, 누구라도 인정하는 천사표의 인간을 보면 의심의 먹구름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아니, 의심이라기보다 상상을 해본다. 저 순진한 얼굴 뒤에 어떤 악마를 숨겨 놓았을까나?

뒤돌아서 비열하게 킥킥거릴까? 동물을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일까? 이중인격? 혹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스릴러,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이야기 중독자의 소소한 취미일 뿐이다.…라고 생각하지만, 내 의심이 현실이 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그리고 그것이 나의 인류애가 작아지는 이유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황우*이다. 국민적 영웅에서 국민 빌런이 된 황*석 박사.

*우석 박사는 완벽했다. 세계 최고로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모든 난치병이 없어지는 새로운 세상이 대한민국의 과학자를 통해 열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온 국민을 감동시킨 멘트, 국뽕이 가슴 깊이 차오르게 만든 그 멘트,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가히 화룡정점이었다. 온 국민이 *우석 박사에게 열광했으며, 눈치 빠른 출판사에서는 위인전까지 만들었다.

그는 실력과 인격, 애국심을 장착한 완벽한 인간이었다. 이런 위인이 대한민국에 있다니!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흐름을 잘 타던 그가 분위기에 취해 실수한 사건이 있으니, 하체마비인강원래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 사건이다. 그는 열린 음악회에 출연한 강원래에게 "강원래를 벌떡 일으켜 과거의 화려한 몸놀림을 다음 '열린음악회'에서는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저 완벽한 얼굴 뒤에 뭐가 숨겨져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적당한 먹이가 내 앞에 떨어진 것이다. 강원래를 벌떡 일으키겠다고? 잡았다 요놈!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스스로 메시아임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는 시점은 클라이맥스의 단계다.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지만, 더 많은 의심이 씨앗이 퍼지는 단계. 클라이맥스는 강렬하지만 짧게 끝나는 법인데 이 사람, 결말이 어떠려나? 이때만 해도 혼자만의 상상놀이가 그렇게 마무리될 줄은 몰랐다.

우리 모두가 알듯이, 그의 논문은 조작되었고, 난자 불법 매매에 연구비를 횡령한 것으로 밝혀졌다. 화룡정점은 해명이 아니라 초췌한 몰골을 하고 응급실에 누워버렸을 때인데, 코스프레는 완벽했지만 지인들의 증언으로 금방 뽀록이 났다.

전 세계의 메시아처럼 굴던 개구리는 자기 몸을 끝없이 부풀리다가 터져버린 것이다.


두 번째 사례. 오래전 직장에서 팀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팀장의 이야기.
“저 멜빵 청바지 안에 아무것도 안 입은 거 아냐? 변태. 으하하하하!”

회사 MT 때 그 팀장이 나에게 했던 소리다. 내가 어떤 이상한 행동을 했다거나 했던 것도 아니고, 오래된 작업복의 한 종류인 멜빵 청바지를 입었을 뿐이다.

팀장의 농담에 주변에 많은 동료들이 함께 웃었고, 나도 함께 웃고 넘어갔다.

사람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그 팀장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역시 이상했다. 나는 멜빵 청바지를 변태로 연결 짓는 비약이 납득 가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생각하면 멜빵 청바지를 입은 모습을 보며 아래에 아무것도 안 입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을 하며, 현실이 아닌 추측을 사실로 단정 지어서 ‘변태’라는 결론을 내린 걸까.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떤 연상 작용이 있기에 멜빵 청바지(정상적 의류) → 하의는 알몸(상상) → 변태(상상을 기반으로 단정)로 이어질까? 그저 사람들을 웃기기 위한 개그 욕심이었을 뿐일까? 아니면, 자신의 변태성을 타인에게 투영하고 싶었던 걸까? 또다시 의심과 상상의 구름이 뭉글뭉글... 결국 정답은 후자였다.

몇 달 뒤 사람 좋은 그 팀장은 함께 놀러 간 한 여성을 강제 추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잡았다 요놈!


세 번째 사례. 지금은 손절한 지인의 이야기.

제주에 오기 전, 커플끼리 친하게 지내던 남녀가 있었다. 그중 누나뻘인 그녀는 스스럼없고, 순진하고 착했고, 남자는 성실하고 유머러스했다. 2년 동안 가까이 지내며 서로 함께 음식을 해 먹고, 함께 놀러 다니며 서로 의지가 되는 사이가 됐다. 주변에도 평판이 좋은 커플이었지만, 어느 순간 싸~~ 한 느낌이 왔다.

그건 너무 사소해서 누구한테 이야기하더라고 내가 과민하다고 했을 것이다.

나한테 은근슬쩍 일을 미룬다던지, 같이 하기로 한 일에 슬쩍 발을 뺀다던지 정도. 그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기 일을 좀 미루는 성격이구나.’

그런데, 길거리에 둔 표지판이나 보도블록을 트럭에 실어 훔쳐오면서 그냥 길거리에서 주워왔다고 한다던지 하는 일이 반복되었을 때 확실히 느낌이 왔다. 그 커플 손절해야 한다. 아니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관계를 손절하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우리와 친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욕을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자리를 비웠을 때는 우리한테 그들의 욕을 그렇게 하더니. 그것도 같은 자리에서.

이런 건 시트콤에서만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인 줄 알았는데! 역시 현실은 드라마를 따라갈 수 없다.

잡기 싫다. 그냥 버리자.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사람을 평판 그대로 믿지 않는다. 말로 떠드는 가치만큼 실제로 행동하는가, 사람을 대할 때의 표정과 아무도 안 볼 때의 표정이 어떻게 다른가, 약자와 동물에게 어떻게 대하는가를 본다.

자기 반려견을 애지중지하며 사랑한다는 사람이 마당에 개를 묶어 놓은 채 며칠 동안 여행을 간다던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폭력은 당연시한다던지 하는 경우 좀 더 추가 증거를 모은 후 그들의 악행이 내가 받아들일 정도를 넘어서면 관계를 손절한다. 당장 나에게 꼭 손해를 끼치지 않아도 상관없다.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똥이 안 묻어도 냄새가 배고, 모닥불 옆에 오래 있으면 불똥이 튄다.


누구나 그림자가 있지만, 그 그림자가 칼을 품고 공격하거나, 인간을 집어삼키거나하면 곤란하다.

앞뒤가 다른 사람을 대응하기에는 내 내공이 따라가지를 못하니, 관계를 손절해서 에너지 낭비를 예방하고 좋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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