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비늘 Mar 01. 2023

숨은 그림자 찾기!

꼭꼭 숨어도 보이긴 하더라

나는 안 좋은 버릇이 있다. 세상 착한 사람, 누구라도 인정하는 천사표를 보면 의심의 먹구름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아니, 의심이라기보다 상상을 해본다. 저 순진한 얼굴 뒤에 어떤 악마를 숨겨 놓았을까나?

뒤돌아서 비열하게 킥킥거릴까? 동물을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일까? 이중인격? 혹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스릴러, 공포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야기 중독자의 소소한 취미일 뿐인데, 어랏? 내 의심이 현실이 되는 일이 종종 생기네? 이렇게 나의 인류애는 소소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황우*이다. 국민적 영웅에서 국민 빌런이 된 황*석 박사. 

*우석 박사는 완벽했다. 세계 최고로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모든 난치병이 없어지는 새로운 세상이 대한민국의 과학자를 통해 열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온 국민을 감동시킨 멘트, 국뽕이 가슴 깊이 차오르게 만든 그 멘트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가히 화룡정점이었다. 눈치 빠른 출판사에서는 위인전까지 만들었다.

그는 실력과 인격, 애국심을 장착한 완벽한 인간이었다. 이런 위인이 대한민국에 있다니!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흐름을 잘 타던 그가 분위기에 취해 실수한 사건이 있으니, 휠체어는 탄 강원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암시를 준 사건이다. 그는 열린 음악회에 출연한 강원래에게 "강원래를 벌떡 일으켜 과거의 화려한 몸놀림을 다음 '열린음악회'에서는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저 완벽한 얼굴 뒤에 뭐가 숨겨져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적당한 먹이가 내 앞에 떨어진 것이다. 강원래를 벌떡 일으키겠다고? 잡았다 요놈!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스스로 메시아임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는 시점은 클라이맥스의 단계다.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지만, 더 많은 의심이 씨앗이 퍼지는 단계. 클라이맥스는 강렬하지만 짧게 끝나는 법인데 이 사람, 결말이 어떠려나? 이때만 해도 혼자만의 상상놀이가  그렇게 마무리될 줄은 몰랐다. 그가 장담했던 모든 것이 허구로 밝혀지며 많은 국민이 실망을 넘어 절망했다.


두 번째 사례. 오래전 직장에서 팀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팀장의 이야기.
“저 멜빵 청바지 안에 아무것도 안 입은 거 아냐? 변태. 으하하하하!”

회사 MT 때 그 팀장이 나에게 했던 소리다. 주변에 많은 동료들이 함께 웃었고, 나도 함께 웃고 넘어갔다. 

사람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그 팀장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역시 이상했다. 나는 멜빵 청바지를 변태로 연결 짓는 비약이 납득 가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생각하면 멜빵 청바지를 입은 모습을 보며 아래에 아무것도 안 입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을 하며, 현실이 아닌 추측을 사실로 단정 지어서 ‘변태’라는 결론을 내린 걸까.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떤 연상 작용이 있기에 멜빵 청바지(정상적 의류) → 하의는 알몸(상상) → 변태(상상을 기반으로 단정)로 이어질까? 그저 사람들을 웃기기 위한 개그 욕심이었을 뿐일까? 아니면, 자신의 변태성을 타인에게 투영하고 싶었던 걸까? 또다시 의심과 상상의 구름이 뭉글뭉글... 결국 정답은 후자였다.

몇 달 뒤 사람 좋은 그 팀장은 함께 놀러 간 한 여성을 강제 성추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잡았다 요놈! 


세 번째 사례. 지금은 손절한 지인의 이야기. 

제주에 오기 전, 커플끼리 친하게 지내던 남녀가 있었다. 그중 누나뻘인 그녀는 스스럼없고, 순진하고 착했고, 남자는 성실하고 유머러스했다. 2년 동안 가까이 지내며 서로 함께 음식을 해 먹고, 함께 놀러 다니며 서로 의지가 되는 사이가 됐다. 주변에도 평판이 좋은 커플이었지만, 어느 순간 싸~~한 느낌이 왔다.

그건 너무 사소해서 누구한테 이야기하더라고 내가 과민하다고 했을 것이다. 

나한테 은근슬쩍 일을 미룬다던지, 같이 하기로 한 일에 슬쩍 발을 뺀다던지 정도. 나의 착각이겠거니... 한 일에서부터 시작했다.

공사 중이라 길거리에 둔 표지판이나 보도블록을 트럭에 실어 집으로 훔쳐오면서 그냥 길거리에서 주워왔다고 한다 던 지 하는 일이 반복되었을 때 확실히 느낌이 왔다. 그 커플 손절해야 한다. 아니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관계를 손절하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우리와 친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욕을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자리를 비웠을 때는 우리한테 그들의 욕을 그렇게 하더니. 그것도 같은 자리에서. 이런 건 시트콤에서만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인 줄 알았는데! 역시 현실은 드라마를 따라갈 수 없다. 

잡기 싫다. 그냥 버리자.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사람을 평판 그대로 믿지 않는다. 말로 떠드는 가치만큼 실제로 행동하는가, 사람을 대할 때의 표정과 아무도 안 볼 때의 표정이 어떻게 다른가, 약자와 동물에게 어떻게 대하는가를 본다.

자기 반려견을 애지중지하며 사랑한다는 사람이 마당에 개를 묶어 놓은 채 며칠 동안 여행을 간다던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폭력은 당연시한다던지, 동료의 진급 소식에 눈에서 불이 난다던지(이거 정말정말로 직접 봤다. 눈에서 질투의 불빛이 번쩍이는 것을!)하는 경우 좀 더 추가 증거를 모은 후 그들의 악행이 내가 받아들일 정도를 넘어서면 관계를 손절한다. 당장 나에게 꼭 손해를 끼치지 않아도 상관없다.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똥이 안 묻어도 냄새가 배고, 모닥불 옆에 오래 있으면 불똥이 튄다. 


누구나 그림자가 있지만, 그 그림자가 지나치게 큰 사람이 있다. 심지어 움직이기도 한다! 그림자가 사람 모양이어야지, 늑대 모습에 칼을 품고 있거나 베놈 같이 자유변형하며 인간을 집어삼키거나하면 곤란하다.

앞뒤가 다른 사람을 대응하기에는 내 내공이 따라가지를 못하니, 관계를 손절해서 에너지 낭비를 예방하고 좋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낫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동료여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